자네 내 옆에서 자게나 – 네팔 카트만두에서

사디나가 갑작스럽게 데려온 비부사는 한참 의자를 찾다가 그냥 사디나의 무릎에 앉아버렸다. 자리에 앉으면서부터 봇물 터지듯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실상 그 이후 진행된 우리의 대화는 이름과 나이, 사는 곳으로 시작해서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되었는지, 전에 이곳에 와본 적은 있는지와 같이 마치 내가 처음으로 아르바이트 면접을 봤을 때 했던 대화와 아주 비슷했다. 우리가 있던 곳에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그녀는 결혼식에 대한 지루함을 토로하다가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힌두교의 전통 결혼식은 13개의 의식으로 구성되는데 약 네 시간 가량 진행된다고 한다. 내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두 번째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정말 흔쾌히 비부사의 초대에 응했다.
비부사와는 좋아하는 색, 내 영어 실력이 엄청나게 후지다는 것, 그녀는 춤을 추고 싶지만 부모님은 의사가 되기를 원하기에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는 푸념 등의 얘기를 나눴다. 말과 함께 끊이지 않았던 비부사의 손짓은 매우 부드러워서 마치 손바닥 위에 물이 가득 든 접시를 올려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신기하게도 비부사와의 대화에서 네팔과 한국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여행을 통해 네팔에 대해 안 것도 그리 많지 않다. 그냥 그렇게 오가는 사람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가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이렇게 많이 듣고 보지는 않았지만,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비부사의 사촌오빠가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던 파슈파티나트에서 문뜩 떠오른 생각 때문이다.
갠지스 강의 최상류인 바그마티 강을 가운데에 둔 파슈파티나트는 죽은 자를 화장해서 강에 띄워 보내는 화장터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실상 카트만두에서 힌두교문화가 가장 농염한 곳이기도 하기에 심심치 않게 여행객들을 볼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곳에서 나를 비롯한 여행객들은 모두 올라갈 곳을 찾았다. 그 사원에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원숭이밖에 없는 그곳에 올라가 바그마티 강을 따라 이어진 파슈파티나트를 사진에 담는다. 그곳에는 오직 여행객밖에 오르지 않았다. 문뜩 든 생각은 사실 사원을 조망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는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높이 오르면, 향냄새도 맡을 수 없고 사람들은 콩 알만해지는 등 잘 보기 위해 올라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알 수도, 볼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낮은 곳에서 길을 헤매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네팔에 왔다고 유적지를 부랴부랴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사람과 사원은 어디에나 있으니, 굳이 크고 웅장한 곳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우연히 결혼식에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비부사의 집에 마련된 작은 사원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가 준 사과에 그녀의 동생이 미소를 지으며 요구르트를 부어 주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먹는 것인 줄만 알고 그냥 먹고 있었는데, 비부사가 그걸 보더니 동생의 엉덩이를 때렸다. 그러고는 그녀는 나를 그날 저녁 결혼식 피로연에 초대했다.
그날 저녁에 하리의 오토바이를 타고 찾아간 피로연에서는 한 식구가 된 신부를 환영하는 의미로 가족 모두가 다 함께 춤을 추며 연회를 즐기고 대화를 나눴다. 모두들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하나둘 일어나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더니 결국에는 모두 일어나 춤을 췄다. 나는 얼떨결에 신랑과 함께 춤을 췄는데, 신랑이 팔을 휘두르다가 실수로 내 얼굴에 한 방 먹인 후에야 그냥 추면 된다는 걸 알았다. 내가 내 몸을 움직이는 게 그렇게 어색한 것인지 처음 알았다.
모두가 모여 밥을 먹고 방에 끼어 앉아 늦게까지 웃고 떠들었다. 발치에서는 막내가 그림을 그리고 비부사의 사촌동생들은 내 앞에 나란히 앉아서 노래 좀 불러보라고 나를 부추겼다. 비부사에게는 언니가 다섯이 있는데, 이들 중 누가 가장 미인이냐고 질문을 받은 순간이 여행에서 손에 꼽는 난감한 순간이었다. 결국 나는 눈을 가리고 동전을 던져서 선택해야 했다. 늦은 밤이 되고 내가 침실에 들어가니 침대에 할아버지와 삼촌이 나란히 누워 계셨다. 결혼식 날에는 모두 한 방에 모여 잠을 잔다고 한다. 삼촌이 누우라는 표시로 자기 옆에 빈자리를 툭툭 쳤다. 우리는 “내 생각에 네 녀석 무기는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군”, “그래도 삼촌 것보다는 쓸 만할 걸요”라며 서로 이상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웃다가 잠이 들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서 이 순간들은 그냥 그렇게 남아있을 뿐이다. 신랑이 목에 꽃목걸이를 주렁주렁 매고 방에 들어오면 오늘의 영웅이 들어왔다며 함께 낄낄거리고 쌀통에 발이 빠졌지만 들키지 않게 몰래 꺼낸다든지, 청포도를 먹으며 웃다가 코로 넘어가는 등, 이 즐거운 순간들이 사소한 기억의 편린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그곳에서만큼은 ‘네팔’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네팔에서 네팔을 생각하는 것만큼 나와 그곳 사이에 확실한 선을 긋는 것도 없지 않을까. 난 그냥 그곳에 있었고, 모두들 즐거웠고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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