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 강남역 8번 출구에는 그들이 있다.

솟대와 고무신 화분©백민정
솟대와 고무신 화분©백민정

 

 

삼성반도체 악성 림프종과 폐암 피해자 첫 산재 인정,

그러나 아직 갈 길 멀어

 

 

2014년  2월 대한민국에서 한 영화가 개봉했다. 제목은 <또 하나의 약속>.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병을 얻은 후 처음으로 그 사실을 폭로한 피해자 황유미 씨의 실화를 담고 있는 영화다. 고 황유미 씨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혈액암)’ 진단을 받은 건 2005년 6월. 당시 나이 21세였다. 집안에 암 가족력도 없는데, 건강했던 딸이 갑자기 희귀병에 걸렸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에서 오퍼레이터로 일한 지 1년 8개월 만이었다.

2005년 12월 유미 씨가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회복기에 접어들 무렵, 유미 씨와 같은 공장에서 2인 1조로 일한 고 이숙영(사망 당시 30세) 씨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유미 씨 아버지인 황상기 씨는 산재를 확신했다. 20대는 인구 10만 명당 1년에 4.2명(2010년 국가암등록통계)밖에 안 걸린다는 희귀병인데,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두 명이 백혈병에 걸렸다니 아무래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회사는 산재를 인정하는 대신 사표를 요구했다.

2006년 11월 중순, ‘백지 사표’를 쓴 지 며칠 뒤 유미 씨에게 백혈병이 재발했다. 황 씨는 이때, “사표를 받아간 회사 관리자가 돈 500만 원을 가져와서 ‘이것밖에 없으니 이 돈으로 해결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황 씨는 삼성전자에서 일했다가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수소문 끝에 6명을 찾았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 ‘황유미 씨는 퇴사했으므로 삼성전자와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2007년 3월 6일 황유미 씨는 끝내 숨을 거뒀다. 황상기 씨는 딸의 노동 환경을 알리기 위해 국회의원, 방송사를 찾아 백방으로 뛰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2007년 6월, 유미 씨의 작업 환경과 화학물질에 관한 내용이 적힌 일기장을 토대로 <수원시민신문>에 기사가 나갔다. 같은 달 노동·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산재도 신청했다. 그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2007년 9월 1일 ‘삼성전자 역학조사’가 시행됐지만, 황 씨는 그마저 엉터리였다고 주장했다. 평상시 공장의 상태를 불시에 측정해야 하지만, 미리 날짜를 통보해 회사 측이 역학조사에 대비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다. 황 씨는 “칸막이 없이 일하고 환기가 잘 안됐다는 딸의 증언과 달리, 역학조사 당일 공장은 서늘할 정도로 환기가 잘됐고 칸막이가 다 설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가 끝난 날 황 씨는 삼성전자 관리자에게 “10억쯤 해드릴 테니까 다른 사회단체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도 말고, 아무한테도 (산재) 얘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황 씨의 노력 끝에 2007년 11월 20일 노동·시민단체 20여 곳이 모여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 대책위원회(이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으로 개명)’가 만들어졌다. 제보자들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와 비슷하게 황 씨가 2007년 6월에 신청했던 산재는 약 2년이 지난 뒤인 2009년 5월에 결론이 났다. 불승인이었다.

2010년 1월 황상기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린 4명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를 인정해달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대형 로펌 변호사 6명을 동원해 ‘피고 보조 참가인’으로 소송에 관여했음에도, 2011년 6월 23일 재판부는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 등 2명의 산재를 인정했다. 산재를 신청한 후 1심에서 이를 승인받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황 씨의 승소에 힘입어 처음에 5명에 불과했던 ‘희귀병’ 제보자도 급속도로 늘었다. ‘반올림’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자산업에 종사했다가 백혈병 등 희귀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노동자와 유가족은 200여 명, 사망자는 8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2014년, 재판부는 다만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5라인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발병으로 2005년 사망한 황모씨를 비롯해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림프종 진단을 받아 투병중인 김모, 송모씨에 대해서는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패소 원고들이) 삼성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유해물질에 일부 노출됐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이로 인해 백혈병이 발병했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반올림 측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관련 심사를 재촉구하는 등의 운동을 계속 해 왔다. 반올림의 농성은 반올림 내의 활동가 뿐만 아니라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올해 6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전자 기흥공장 노동자였던 고 박효순씨(사망 당시 28세)의 악성 림프종은 벤젠 등에 노출돼 발생한 업무상 질병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악성 림프종에 대한 첫 산재 인정 사례다. 악성 림프종은 백혈병과 마찬가지로 벤젠, 전리방사선 등에 노출되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림프조혈계 암이다. 현재까지 근로복지공단·법원으로부터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삼성반도체 노동자 및 유족은 모두 11명이다.

박씨는 2002년 4월 전남 화순의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그 뒤 3년 7개월간 6라인, 8~9라인 포토(감광)공정에서 오퍼레이터로 근무하며 여러 유해물질에 노출됐다. 생체 리듬을 교란시키는 주야간 교대근무를 한 점도 심각한 유해요인이었다. 결국 얼굴에 심한 홍반(피부질환)이 생기는 등 건강이 악화돼 2006년 1월 퇴사했다. 이후 2010년 11월 만 26세의 나이에 악성 림프종(4기) 진단을 받았고, 2012년 8월19일 사망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은 “이번 결정은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자의 업무환경을 조사할 때 회사의 자료제출이나 답변에만 수동적으로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박씨의 업무환경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취급물질 중에 발암물질이 없었고 업무공간에서 확인된 유해물질 노출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사기관(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제출한 자료에 화학제품의 주요 성분이 ‘영업비밀’로 감추어져 있고, 고인이 근무할 당시 공장에 화학물질 유출을 감지하는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점을 지적했다. 이후 박씨가 취급한 설비와 업무 공간을 직접 조사해 발암물질 노출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지난 9월 1일에는 “근로복지공단은 8월 29일과 30일, 삼성반도체 노동자였던 고 이경희, 고 송유경씨의 ‘폐암’ 사망을 산업재해로 최종 인정했다”고 밝혔다.

반올림은 또 “이는 반도체 노동자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첫 사례”라고 강조한 뒤 “이로써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 의해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은 총 열 네 명이고 그 질병은 여덟 종(백혈병,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유방암, 다발성신경병증, 뇌종양, 난소암, 폐암)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이는 고무할만한 성과지만 다만 박씨의 유족이 2012년 10월에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 접수를 한 뒤 이번 결정이 나오기까지 무려 3년 8개월이 걸렸다는 점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재보상보험법 제1조에 명시된 ‘신속·공정한 보상’의 원칙을 근로복지공단이 명백하게 어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산재 신청자가 산재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되었다. 지난 8월,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삼성반도체 전 노동자 김은경 씨와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민웅(2005년 사망)씨의 부인 정모 씨 등 3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30일 확정했다.

함께 소송을 제기한 다섯 명의 원고 중 두 명의 산재는 인정했다. 대법원은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 화학물질과 미약한 전리 방사선에 지속해서 노출돼 발병했거나 적어도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며 백혈병 발병과 업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반올림은 법원이 ‘질병의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책임을 재해자 측에 부과하는 산재보험법의 문제점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이 ‘근로자들의 업무 내용에 따른 개별적 심리’를 강조하면서도 이들 ‘개별적’심리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입증 곤란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삼성의 관리 부실이나 자료 은폐,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잘못으로 인해 업무환경의 유해성을 알 수 없게 된 상황에 대해서 법원이 규범적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라며 입증 곤란의 상황을 재해노동자 측에 전가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입증 곤란의 상황은 회사나 근로복지공단의 잘못인데, 불이익은 재해노동자 측에 전가한 판결”이라며 “직업병 피해 가족들의 치료와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산재보험제도의 존재 의의를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의 판결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했다. 국제암연구소가 1급 발암물질(‘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충분한 물질’)로 지정하고 원고가 업무 중 수시로 취급하였던 ‘트리클로로에틸렌(TCE)’을, ‘인간에게 암을 일으킨다고 할 수 없는 것’으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법원에 자료제출을 거부한 삼성전자의 태도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안전보건 관리 실태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노동부의 진단 보고서를 ‘영업비밀’이라고 감추었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삼성은 지난해 ‘반도체 산업은 어떤 업종보다 안전하며, 특히 우리 반도체 생산라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산재소송에서조차 재해자의 업무환경에 관한 법원의 자료제출 요청을 계속 거부하며 ‘삼성은 요구되는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법원과 근로복지공단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약하게나마 삼성 반도체의 잘못이 드러나고 있는 요즈음, 한 명의 지지자의 힘이 절실하다고 반올림 측은 전했다. 거대 재벌에 맞서는 사람들이 모두 일반 시민인 만큼 많은 이들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죽음이 많이 남았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권라임 기자

kwonlime@kart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