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

<할머니의 먼 집> 이소현 감독 인터뷰

 

이소현 감독은 기자의 카메라를 보고 “똑같은 카메라로 할머니를 담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안신호
이소현 감독은 기자의 카메라를 보고 “똑같은 카메라로 할머니를 담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안신호

 

특집: 예술이 기억할 수 있는 것들 (1)
문화부 기획특집 ‘예술이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예술을 통해 각자의 삶과 사회의 이야기를 반추해나가는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을 만나본다. 오랜 시간 한 분야에 집중해 온 이들부터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는 이들까지, 예술을 통해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이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최근 독립영화 진영에서 “영상원 영화”의 개봉이 활발하다. 극영화부터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영화들이 극장에서 소개되고 있다. 지난 29일에는 사적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배급 KT&G 상상마당)이 개봉했다. 영상원 영화과 전문사에서 음향을 전공하던 감독이 카메라로 할머니를 담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감독은 영화로 무엇을 기억하려 할까? <할머니의 먼 집>이 상영되고 있는 홍대 KT&G 상상마당 6층 카페에서 이소현 감독을 만나보았다.

 

이력이 독특하다.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먼 집>은 어떻게 작업하게 됐나?
영상음향을 전공하던 중 남보다 귀가 약한 걸 알게 됐다. 휴학을 하고 치료를 받은 뒤 중동 여행을 하던 중 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여하면서 NGO에 관심을 갖게 됐다. 졸업하고 베트남의 “지구촌난민운동”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국내 취업을 준비하던 중 할머니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었다.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가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잘 몰랐다. 혹시 또 시도하실 수도 있으니까 못 하시도록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려가게 됐다. 어른이 되어서는 할머니랑 찍은 사진이 별로 없어서 개인 소장 겸 단편 영화 촬영을 하다가, 취업이 되어 편집을 안 하고 미뤘다. 그러다 외숙(할머니의 첫째 아들)께서 돌아가셨다. 경황이 없어서 촬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사촌오빠가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을 기록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장례식을 찍었다. 어느 순간 이야기가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면서, 마무리를 짓기 위해 구체적으로 작업하게 됐다.

 

가족들이 카메라를 거의 의식하지 않아 놀랐다. 촬영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집에서 내 존재가 미미하다(웃음). 이게 영화가 될 것 같다고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이라 신경을 안 쓰시나 싶었는데 촬영감독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할머니께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시기가 늦춰져서 할머니가 못 보시게 될까봐 불안했다. 촬영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불안을 늘 갖고 있었다. 어머니가 할머니께 영양제를 맞추지 말라고 전화로 말씀하셨을 때가 특히 힘들었다. 엄마랑 싸워본 적이 없었는데 2주간 펑펑 울었다. 영화 외적으로 엄마를 다시 볼 자신이 없다는 생각도 들다가, 한편으로는 이걸 윤리적으로 촬영하는 게 옳은 선택인지를 고민했다. 인생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우선은 찍고 편집하면서 고민해보라는 조언을 주변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들었다.

 

서울독립영화제 프리미어 상영 때 할머니와 GV에 참여했다. 할머니께선 어떠셨나.
서울의 큰 극장에서 영화를 틀 거라고 말씀을 드리니 안 믿으시더라. 왜 서울 사람들이 그런 걸 보러 오냐고. 그래서 온가족이 할머니를 설득해서 극장으로 모시고 갔다. 사람들이 차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오메, 손주 말이 참말이네”하면서 정말 좋아하셨고, 관람하시면서도 온갖 추임새를 넣으셨다. 특히 외숙의 모습이 나오는 부분을 좋아하셨다. GV를 할 때는 어떤 질문을 하던지 “이런 보잘것 없는 저를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만 대답하셨다. 화순에 돌아가셔서는 서울에 있는 극장에서 당신이 나왔다고 동네분들에게 자랑을 하시더라.

 

영화 <할머니의 먼 집> 스틸컷. ⓒKT&G 상상마당
영화 <할머니의 먼 집> 스틸컷. ⓒKT&G 상상마당

 

할머니의 삶을 포착하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부분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자연히 독거노인이나 존엄사 논쟁, 노부모 부양 등의 문제를 떠올리게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영화가 세상을 곧바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광부들이 지하에 내려갈 때 카나리아를 함께 데리고 들어가서, 카나리아가 죽는 걸 보고 가스가 찬 걸 알아채고는 위로 올라간다고 하지 않나. 카나리아처럼 사태를 직면하게 하는 것이 영화의 역할이라고 본다. 실제로 문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정책과 여론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젊어서 잘 몰랐지만, 할머니께서 다쳐도 병원에 혼자서 갈 수 없고, 귀가 잘 안 들려서 전화를 할 수도 없어 소통이 차단되는 상황에 처해지더라. 나라에서 애쓰고 있지만 세세한 부분의 디테일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영화의 엔딩이 인상깊다. 할머니께서 저수지에서 산책을 하시며 “징그럽게 좋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끝을 맺는데 어떻게 엔딩을 정했나.
원래 엔딩이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몇몇 있었다. 맨 처음 엔딩이라 생각한 건 할머니께서 꽃을 꺼내 물을 주는 장면이었는데, 편집감독이 약하다고 해서 그 이후로도 계속 촬영을 하게 됐다. 또 제가 할머니께 영양제를 맞춰드리면서 할머니께 제 이름과 할머니 성함을 이름을 물어보는 장면을 찍으면서는 이 장면이 너무 좋고 엔딩인가 보다 싶었다. 실제 엔딩에 나오는 저수지는 할머니께서 항상 외숙과 산책하시던 곳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여름에 거길 가셔서 “구경 잘 했다”고 하시는데, 할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당신의 삶을 생각하는 모습이 소풍 온 것처럼 구경 잘 했다고 말씀하는 그런 삶이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에 대한 소회가 이 지점에서 끝나면 좋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가 엔딩이겠구나 싶어서 그 때부터는 촬영을 하지 않았다.

 

근래 영상원 출신 감독들의 독립영화가 활발히 개봉되고 있다. 배급사 KT&G 상상마당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상상마당 프로그래머가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때 영화를 보았고, 마침 PD와 아는 사이여서 미팅 제의가 들어왔다. 또 후배였던 음악감독의 남편이 <족구왕> 우문기 감독인데, <족구왕>이 상상마당을 통해 배급을 했다고 강력 추천하더라. <족구왕>이 상상마당을 통해 배급을 해서 강력 추천하더라. 기회가 되면 꼭 상상마당을 통해 개봉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가장 먼저 제의를 해주어서 수락했다.

 

개봉 이후 바뀐 부분이 있나? 배급사 측에서의 터치는 없었나?
일기장 인서트에 원래 없었던 내레이션을 넣게 된 건, 4-50대 관객들에게 일기장이 잘 안 보이니까 읽어보면 어떻겠냐는 친구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촬영을 하면서 엄마의 캐릭터가 별로 살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도 있어서 그 부분도 수정했다. 어머니가 64세이셔서 점점 할머니 나이에 가까워지는데, 할머니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 삶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시지 않았을까. 배급사 측에서 편집에 대한 터치는 없었다. 굿즈 제작은 사운드 제작 선배가 배지(분홍색 스웨터 배지)를 만들어 달라는 아이디어를 내게 보내줘서 그런 의견을 반영했다.

 

사적 다큐멘터리는 최근 “영상원 영화”의 큰 흐름이기도 하다. 연출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있나.
엄마가 악역으로 보일까 봐 고민이 됐다. 엄마께 보시고 빼야 할 부분을 이야기해달라고 제안했더니, 할머니께서 자살시도를 하신 것과 엄마께서 우리 엄마(할머니)가 죽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는 두 개를 빼달라고 하셨다. 그걸 빼면 영화가 안 된다고 말씀드렸다. 엄마가 할머니를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이유와 할머니가 빨리 죽음을 바라는 이유, 내가 할머니와 오래오래 살고 싶은 이유는 결국은 서로 다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빼겠다고 했더니 의도에 동의해 주셨다. 엄마의 인터뷰를 삽입하면서, 엄마가 “잘 설명한 부분이 있지 않느냐”, “이 부분에 내 마음이 더 담겨있다”고 하신 것들을 참고했더니 더 좋아졌다.
또 누군가의 자살시도를 공개한다는 게 제일 많이 고민이 됐다. 할머니는 맘대로 찍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나에 대한 사랑 때문인 것 같고. 내게는 굉장히 충격적이고 감추고 싶은 비밀인데, 이걸 내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상처를 극복하고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신기한 건 GV를 다닐 때마다 할머니께서 자살시도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하는 손녀 분들이 계속 오시는 거다. 자료로만 보았다가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싶어서 많이 놀랐다.

 

영화 <할머니의 먼 집> 티저 포스터. ⓒKT&G 상상마당
영화 <할머니의 먼 집> 티저 포스터. ⓒKT&G 상상마당

 

감독이자 주인공인 자신의 역할이 혼란스럽지는 않았나?
내가 게을러서 좋은 장면을 많이 놓쳤다. 그래서 일주일간 내려와 있으면 못해도 이틀은 카메라를 놓지 않으려고 했다. 스탭들의 도움도 있었다. 영화에서 내 얼굴이 나오는 게 싫더라. 나와 편집감독이 편집을 번갈아서 했는데, 내 얼굴이 나오는 장면을 다 빼면 편집감독이 다시 넣어서 빼고 넣고를 반복했다. “이걸 왜 넣냐, 싫다”고 하니 편집감독이 “감독님은 현재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는 걸 부끄러워한다. 감정이 많이 드러나는 이 장면을 왜 안 넣냐”고 하셨다. 그래서 수긍하고 넣은 게 할머니와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다.

 

한예종 재학 중 특별히 배웠던 것이나 기억나는 경험이 있다면?
팔레스타인에서 찍은 다큐멘터리를 믹싱해서 수업에 가지고 갔더니 선생님들께서 너는 사운드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어떻게 녹음실에 앉아서 일할 수 있겠냐고(웃음). 저희 전공은 숫자가 적어서 오붓하고 끈끈하다. 선생님들께서 전공을 통해 다른 걸 하는 데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아하셨고 관심사를 지지해주셨다. 영화를 맨 먼저 보여드렸던 분도 이규석 선생님이셨다. 귀에 이상이 생겨서 일적으로 사운드를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때 선생님께서 “네가 앞으로 사운드를 못하게 될 걸 알고 있지만, 학교 공부를 절대 소홀히 하지 말아라. 여기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느냐가 졸업 후 네 삶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 태도를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그래서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난 게 가장 큰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있나?
지금은 없다. 쭉 분쟁 지역의 NGO 영상팀에 들어가서 후원 요청 영상이나 뉴스릴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웃음). 이후의 작업은 ‘지금이 안 되면 안 될 것 같다’ 하는 순간이 되면 찍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배급사를 만나 운 좋게 개봉하게 됐는데, 배급사에서 채택하는 영화들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으면 명분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작은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영화사들이 사라져버리면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올 상반기 봤던 영화 중에 <100엔의 사랑>이라는 일본 영화가 정말 좋았는데, 관객이 5천명을 못 넘겼더라. 안타깝다. 손해를 보는 일이 반복되면 재미있는 영화들이 들어올 기회가 많이 차단되고 사라지지 않을까. 극장에 많이 와 달라. 가족과 함께 보면 더 좋은 다큐멘터리다.

 

안신호 기자
mat3ch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