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6년 6월 26일

연극과 웃음(2)

 

역사적으로 웃음과 희극성에 관한 논의는 비극이 그러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희극에 대한 간략한 언급을 보여준 이래 이러한 흐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는데, 삶에 밀접해 있으면서도 그동안 좀 더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웃음과 희극성에 대해 이번 기회에 짧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의 코메디 <로칸디에라> 번역·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조태준 필자로부터 3회에 걸쳐 본 화두에 대해 간략히 다루어 보겠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시대상을 드러낸 보마르셰의 코메디 [피가로의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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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하는 웃음

 

사실상 웃음거리는 구조적으로는 모순이다. 그 모순은 이성의 차원에서 보면 공리요, 논리의 결함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도 웃음거리는 장르와의 관계 속에서, 심지어 웃음과의 관계 속에서조차 필연적일 수 없다. 웃음거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체계이면서 또한 기성의 지배적인 체계로부터의 분열을 조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웃음이 장르론에 휘말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웃음이 장르론을 통해 도덕적 범주의 함정에 빠지게 된 것은 잘 알려진 바대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였다. 시기적으로는 철학의 관심사가 개인의 이성으로부터 도덕, 즉, 집단의 이성으로 확대되던 시기였으며, 예술의 범주와 장르론을 거론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치기준 역시 전적으로 윤리적인 데에 있었다.

장르란 역사적인 체계화의 산물이자 개연성과 우연성을 최소화하는 추론적 특성들의 결과로서 그 담론의 속성은 외형상 일반론을 지향한다. 웃음은 그런 일반론과의 관계에서 분열하는 정신구조를 여실히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웃음은 인간형 사이에서 분열한다. 애초에 희극은 일반적이면서 특수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일반적’이라는 말은 관객이 공유할 수 있는 인간보편성의 지점을 말하는 것이고, ‘특수하다’는 것은 ‘낯설다’ 또는 ‘이상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근본적으로 웃음이 그러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요컨대 웃음의 장르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우연성의 예술인 것이다. 누구나가 웃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웃음은 주체 인식의 모순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며 그 자체도 외형상 대상과의 관계 형태로서만 나타난다.

인간성에 기초한 희극의 불안정한 장르 속성은 고전주의의 도래와 함께 웃음이 복권되던 시기에 자연스러움과 환상, 본성과 예술 사이에서, 그리고 연극에 관한 제 이론들과 충돌하면서 재현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자연스러움은 사실다움에 있다. 그러나 자연스러움 속에서 웃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실제적으로 결함과 모순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고전주의 시대에 웃음의 장르가 분화되고 다양한 형태의 웃음을 매개로 한 연극이 성행하게 된 데에는 이러한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전주의 제1미학인 자연스러움과 사실다움의 경계에 환상의 벽을 설정함으로써 모순을 잠정적으로 용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시기에 웃음은 자연스러움을 극단적으로 노출하는 소극 이외에 환상적인 요소와 결부된 익살극, 코미디 발레, 검극, 복잡한 구조의 이탈리아식 코미디, 음모극 등의 형태로 분열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웃음은 현실감의 결여와 무동기성을 담보로 하여 자연스러움이라는 시대미학을 자체 충족할 수가 있었다.

다음으로 웃음은 인간의 본성과 그것의 재현물인 예술 사이에서 분열한다. 희극은 사적인 성격, 풍속과 세태에 대한 충실한 관찰을 통해 고유의 장르적 특수성을 구축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희극은 비극과 공유하게 되는 예술적 특성으로 인해, 특히 단순한 관찰을 교훈으로, 인간의 결함을 도덕교육의 원칙으로 변형시키는 철학적 궁극성에 의해 비로소 예술로 인정받게 된다. 즉, 인간과 삶의 모순과 결함을 포착하는 힘이 웃음인 반면, 웃음은 그것의 현존을 통해 개선과 교정을 유도해야 하는 숙명을 부여받는 것이다.

웃음의 연극이 다른 예술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그것의 기준을 제시하는 제 이론과의 관계는 모호하다. 왜냐하면 웃음의 연극은 이론상 완벽함의 경지에 다다를수록 자체 모순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의 연구에서 설명되다시피 웃음은 일반적으로 기성의 논리체계가 깨지는 순간 생성된다. 그런데 웃음의 현존성과 관련하여 그러한 웃음을 지배하는 또 다른 일반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엄밀히 말해서 웃음의 논리를 지배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생성기재로 삼으며, 그것의 굴절과 파괴를 거쳐 사물과 그것의 이면 속에 잠재해 있는 본질을 드러낸다.

 

조태준

극작가 겸 연출가, 배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