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6년 6월 26일

섭식장애는 혐오를 먹고 자란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음식에 기이할 정도로 집착하면서도 동시에 음식을 무서워한다. 나는 칼로리를 제한하는 강박증이 무척 심각했던 기간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식비를 엄청나게 썼다. 최고기록은 하루에 21만원이었다. 온갖 음식을 사서 바닥에 늘어놓고 한 입씩 전부 맛을 봤다. 그리고 쓰레기봉투에 뱉었다. 육류와 밥류는 내가 음식을 뱉은 봉투에 그대로 쑤셔넣고, 케이크와 면요리는 변기에 쏟았다. 과자는 잘게 부숴서 버렸다. 그리고 피자 두 판만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족들을 기다렸다. 피자를 먹고 싶어서 샀는데 원플러스원 행사를 하지 뭐야. 다들 드세요! 나는 한 번도 이 괴상한 의식을 남들에게 들킨 적이 없었다.

섭식장애(식이장애,eating disorder)는 먹을 것과 자신의 몸매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정신적 장애를 말한다. 섭식장애는 흔히 심각하게 칼로리 섭취를 제한하거나 음식을 두려워하는 거식증(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자제력을 잃고 단시간에 아주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폭식증(신경성 식욕과항진증)으로 나뉜다. 이 증상들은 각각 깔끔하게 이름이 붙어 있지만 섭식장애 환자들은 보통 두 가지 증상을 돌아가며 겪는다. 심지어 오전에는 과한 운동과 절식을 하고 오후에는 폭식과 토를 반복하기도 한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은 금세 몇달이 된다. 거식증과 폭식증이 뒤섞인 혼돈의 섭식장애가 찾아오는 것이다.

2013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진료통계에 따르면 섭식장애 환자 중 여성의 수가 남성에 비해 약 4배 많았다. 20대에서는 8.8배, 30대에서는 8.4배로 연령에 따라서도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 섭식장애를 다룬 지속적인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고, 이 결과마저도 섭식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의 통계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 특히 여성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위에서도 말했지만 섭식장애 환자들은 숨기는 것에 아주 능하다). 누군가는 이 통계를 보고 ‘여성의 식욕은 남성의 성욕만큼 강하다’는 구식이고 비겁한 문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이 저질 농담은 꽤 의미 있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다. ‘남성의 성욕’이다. 섭식장애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자신의 식욕이 아니다. 타인의 욕구이다. 그리고 이는 젠더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한 때 헐리우드 가십지를 강타했던 신조어가 있다. ‘DIPE(Documented Instance of Public Eating)’, 즉 ‘공개 식사 인증 사례’이다. DIPE는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마른 여성 연예인이 고칼로리 음식을 즐겨먹는다는 인터뷰를 한다. 5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이 회식을 하면 15인분은 거뜬히 먹어치운다는 에피소드가 기사를 장식한다. 실제로 방송에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30kg정도 나갈 것 같은 여성 배우가 580kcal의 패스트푸드를 맛있게 먹는다. 늘 그랬듯이 배역에 관한 생각이나 곡에 담으려고 했던 이야기는 뒤쪽으로 밀려난다. 헐리우드뿐만이 아니다. 한국도 이 DIPE에 병적으로 중독되어 있다. 이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시선과 직결된다. 미디어는 “날씬하고 섹시한 몸매의 여자가 좋다. 하지만 음식도 복스럽게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멍청이들의 꿈같은 생각을 이루어 주느라 정신이 없다. 실제로는 복스럽게 먹으면 복스럽게 살이 찐다. 살이 찌는 건 NG다. 너무 말라도 NG. 체중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문제가 있어도 안 된다. 안젤리나 졸리를 완벽한 몸매라고 찬양하던 언론은 이제 그가 가시같이 변했으며 계속 식사를 하지 않으면 ‘이혼을 하겠다’는 남편의 선전포고가 있었다는 기사를 줄줄이 내놓는다. 문근영을 국민 여동생이라고 부르던 기자들은 그의 침샘이 부은 것을 보고 “폭식하고 토했구나”라고 떠들어댄다. 몸에 점수가 매겨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입에 뭐가 어떤 식으로 들어가는지까지 품평당한다. 음식을 죄책감과 연결짓는 사람이 늘어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상화는 늘 교묘하고 똑똑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는 남들에게 예쁨 받고싶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 효과적인 쪽은 ‘자기관리’라는 명목이었다. 프로페셔널한 여성이라면 몸매 관리가 기본이라는 최면은 금세 먹혀들어갔다. 정확히 누구에게 지고 어떤 것에서 도태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기준 미달이 되기는 싫다는 심리가 칼로리를 확인하고 체중을 재는 습관을 가져다 주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수록 초반에는 제거형 폭식증(구토를 하거나 이뇨제 등을 사용해 음식물을 배출하는 형태의 폭식증)보다 강박이 주가 되는 증상에 빠지기가 쉽다. 이러한 습관은 일반적인 다이어트와 크게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초기에 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지방만 절식하는 것은 모자란 듯 해서 밀가루를 절식하고, 단순당을 전부 절식하고, 탄수화물 양을 제한하고, 하루 칼로리를 권장량에서 점점 낮춰가다보면 이미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다이어트, 즉 어느 정도 식욕을 통제하고 절식하는 것은 평범한 거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완벽주의자들을 거식증의 늪으로 빠지게 한다.

섭식장애를 앓은 지 5년째인 28살 A씨는 하루 식사를 권장 칼로리보다 조금 높게 설정해 섭취하는 정상식 치료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조금만 더 살이 찌면 다 그만둬버릴것 같다”고 말한다. 정상식을 시작하면 갑자기 들어온 영양소와 수분 때문에 몸이 붓고 살이 쪘다가 천천히 평균 체중을 되찾게 된다. 그러나 많은 섭식장애 환자들이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다. 한순간이라도 불어난 몸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A씨는 “두렵다”며 “날씬해지고 나서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는 것을 느꼈다. 살이 다시 찌면 또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뇌는 멸시와 질타를 기억한다. 그리고 섭식장애 환자들은 식욕을 조절하는 회로도 망가진 상태다. 초기에는 쉽지만 장기간동안 앓은 섭식장애는 완치가 거의 불가능하다. 고치더라도 재발 가능성이 50%에 달한다. 완벽한 몸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하나를 만족하면 하나가 부족하다. 내가 체중을 45kg까지 뺀 어느 날 한 남자가 말했다. “얼굴만 동그래서 추파춥스 같다.” 나는 그날 이후 나트륨 강박증도 생겼다(나트륨은 붓기와 관련이 있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바깥으로부터 끊임없이 굶거나 먹으라는 유혹을 받는다.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젠더 문제와 소수자 혐오를 제외한 채 섭식장애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이다. 섭식장애는 더 큰 틀에서 사회적인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영국에는 섭식장애 자선단체 ‘B-EAT’가 존재한다. 영국 정부는 섭식장애 치료의 시급성을 느껴 관련 예산을 점차 늘리고 있다. 미국에는 ‘섭식장애 인식 주간’이 마련되어 있다. 흔하게 하는 말이 있다. ‘섭식장애는 마음의 병’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정신력에 모든 것을 떠맡겨버리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이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은 헛소리로 취급된다. 섭식장애에 관해서도 조금 더 차원 높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믹스

연극원에 다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