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6년 6월 24일

퀴어문화축제 슬로건 이슈에 부쳐

 

1969년 6월 28일 이른 아침, 경찰은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게이 커뮤니티가 모였던 그리니치의 동네 주점인 스톤월(Stonewall)을 급습했다.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동성애는 ‘부적절한 성행위’라는 죄목 하에 처벌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톤월 항쟁은 반복되는 급습에 지친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폭력에 대항하면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에 첫 게이 프라이드 행진이 시작됐다.

1973년, 미국임상심리협회는 DSM-2의 질병 분류에서 동성애(homosexuality)를 삭제했고, 프라이드 행진은 미국 전역 주요 도시들로 범위를 넓혔다. 스톤월 항쟁이 일어나고 난 지 10년 후에도, 한 동성애 혐오자가 커밍아웃한 게이이자 동성애자 권리증진에 힘썼던 정치인 하비 밀크(Harvey Milk)를 살해하는 등 일련의 공공연한 위협이 여전히 있었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1979년, 워싱턴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레즈비언과 게이의 권리를 요구하는 첫 대국민적 행진을 했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은 이 행진에서 처음으로 국가적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로부터 얼마 후, 게이 인권 운동은 에이즈(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의 결투가 되었다. 이에 맞춰 에이즈의 공식적인 질병 분류와 문서가 처음으로 작성되었고, 기존의 혐오 세력은 통계 자료를  왜곡해 의료적인 차원에서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을 형성시켰다.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여겨져 강제 입원 치료를 받는 등, 동성애자들이 사회에서 매장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계속되었다. 이것은 인권 단체들의 로비력, 활동가들의 기획력과 함께 거리로 나선 수 많은 개인들의 용기 있는 선택이 빚어낸 결과였다.

2015년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역사적인 해다. 이로 인해 전지구적으로 수십년간 이어져온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수확기에 접어들었음을 모두가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국제사회의 흐름에서 뒤처져 동성혼 법제화도 성취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된 2015년에야 비로소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가 처음으로 국가를 상대로 동성혼 인정을 위한 소송을 시작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국내 최대 규모의 성소수자 집회인 퀴어문화축제는 어떤 지점에 서있을까. 어떤 지점에 서있어야할까.

퀴어문화축제는 여전히 혐오 세력과의 갈등 등으로 개최에 어려움이 있지만, 서울과 대구에서 매해 열리고 있다. 2014년 서울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Love Conquers Hate)”였다. 해당 문구는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인권 캠페인 재단(HRC, Human Rights Campaign Foundation)이 판매하고 있는 티셔츠에 쓰인 문구이기도 하다. 이 구호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내용의 해석이자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Amor omnia vincit)”[1]라는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시구를 활용한 것이다. 이어 2015년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사랑하라, 저항하라, 퀴어레볼루션”이었다. 이 슬로건은 46년 전 맨해튼 중심부에서 처음 울려퍼졌던 구호인 “분명히 말하라, 크게 소리쳐라, 게이는 좋다, 게이는 자랑스럽다(Say it clear, Say it loud. Gay is good, Gay is Proud)”의 명맥을 잇는 것이다.“

최근, 곧 다가오는 2016년 퀴어문화축제 슬로건은 퀴어문화축제위원회가 공모를 통하여 채택한 “QUEER I AM, 우리 존재 파이팅!”이다. 그런데 슬로건이 발표되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불만이 제기되었다. 몇몇 이들이 선정 근거에 대한 변론을 요구하자 위원회 측에서는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는 2014년과 2015년의 슬로건은 “동성애자 이외의 성소수자를 소외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답했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SNS을 통해 “해당 슬로건은 전선의 후퇴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요구라고 생각”한다는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4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여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치계 인사들의 이해순위에서  ‘동성혼 법제화’는 한참 밀려나 있었다. 그들에게 성소수자는 일단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어떤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혐오 세력은 성소수자보다 가시적이다. 우리에겐 기독자유당의 폭력적인 발언을 제지할 방도 역시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막막히 그런 혐오 발언을 목격해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016년 퀴어문화축제 슬로건에 대해 “이러한 억압과 혐오에도 굽히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미가 담긴, 짧고 강한 메세지를 이용하여 우리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불어넣고자 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하기 힘든 분위기다. 심지어 성소수자 집단 내에서도 오픈리 게이(openly gay)에 대한 은근한 배척이 있다. 또한,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는 커밍아웃을 두려워하여 일반스타일[2]과만 데이트한다고 명시하는 것이 흔하다. 나는 어느 날, 한 시스젠더 레즈비언 여성과 처음 만난 날, “당신이 바이섹슈얼이란 사실을 ‘이쪽’ 사람들을 만날 땐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게 좋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성소수자들이 직접 사회의 여러 가지 권리들을 쟁취하기 위해선, 성소수자의 가시화가 우선순위에 있다. 커밍아웃을 하자!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서로 “어, 너도 그때 눈치 보고 있었어?”라고 얘기 나누고 있을지도 모른다.

 

[1] 이 문장은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에 의해 “Love conquers all”로 처음으로 번역, 인용되었다.

[2] 이성애자처럼 보이는 스타일을 지칭하는 은어

 

손승희

무용원 무용이론과 예술경영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