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6년 6월 24일

여자가 검을 쓰는 방법

호금전의 <대취협>

 

<대취협(Come Drink With Me)>, 1965

감독: 호금전

제작: Weinstein Co., 2008

러닝타임: 91분

청구기호: DV 688.2 18107

김용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한 호금전 감독의 1966년 작 ‘대취협(大醉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영화가 가진 여러 개의 제목부터 정리를 해봐야 할 것이다. 큰 ‘대’ 자에, 취할 ‘취’, 의기로울 ‘협’, 이 세 글자를 쓴 ‘대취협’을 직역한 제목은 ‘크게 취한 영웅’, 혹은 ‘큰 취한 영웅’이란 뜻의 ‘Big Drunk Hero’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의 개봉 제목은 ‘방랑의 결투’였다. 그리고 월드 와이드 영어 제목은 ‘나와 함께 마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Come Drink With Me’다. 지난 2008년, Weinstein Company에서 출시한 이 영화의 DVD는 ‘Come Drink With Me’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영화가 시작되면, 먼저 유서 깊은 홍콩의 영화사 쇼브라더스(Shaw Brothers Limited) 로고가 뜬다. 그리고 붉은 글씨의 타이틀이 나온다. 도적들이 장군의 아들인 한 젊은 지방 관리 장푸칭을 납치하고, 그의 누이인,  ‘금연자’라고 불리는 검객 장시엔은 남장을 한 채 장푸징을 구하는 길에 나선다. 금연자는 마을의 한 객잔과 사찰에서 도적들을 만나 뛰어난 무술 실력을 자랑하며 그들과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금연자가 혼자 상대해서 곧바로 이기기엔 그들의 실력 역시 만만치 않다. 이때, 적절한 순간마다 그녀를 도와주는 걸인이 있는데, 그가 바로 대취협이다. 걸인의 행색을 하고 있지만 대취협은 다름 아닌 무공을 세운 고수다. 사찰에서 한창 칼싸움이 벌어지던 중, 금연자는 절의 지붕 위에 있다가 가슴 쪽에 독화살을 맞게 된다. 화살을 맞은 채, 숲 속에서 도망을 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금연자는 낯선 곳에 누워 있다. 그림 같은 폭포가 흐르는 풍경이 보이고, 곧이어 대취협은 금연자를 간호한다. 손수 독을 빨아서 내뱉는 정성까지 보이는 대취협이 금연자를 보살피던 찰나, 도적들은 다시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다. 혼자서 다수의 도적을 주검으로 만들어버리는 대취협을 보며, 금연자는 그가 강호의 고수라는 걸 알게 된다. 한 편, 대취협은 오랫동안 헤어졌던 형이자 수련 동료였던 중과 마지막 결투를 벌인다.

금연자 역을 맡은 정패패(鄭佩佩 / 郑佩佩)는 첫 등장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강한 매력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정패패가 홍콩에서 인기 있는 배우로 급부상하는 데에 이 작품은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각각 액션 시퀀스에서, 서로 팽팽한 긴장감을 보이는 도적 무리와 금연자의 칼싸움으로 인해 서스펜스는 살아있다. 이 영화에서 호금전은 연출 뿐만 아니라 미술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모두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산사의 내부 장면에서 드러나는 프로덕션 디자인은 정교하다.

<대취협> DVD의 서플먼트로는, 홍콩영화 전문 평론가이자 각본가인 베이 로건(Bey Logan)과 정패패의 코멘터리 오디오가 수록되어 있다. 정패패는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말하며, 최근에만 <대취협>을 열 번 이상 봤다는 이야기로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당시 만 19세였던 그녀는 이전에는 오디션을 보지 않고 열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었지만, 이 영화를 위해선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오디션에 합격한 그녀는 특별히 쿵후 교육도 받았기에 대역을 많이 쓰지 않고도 액션 연기를 펼칠 수 있었다. 베이 로건은 이 영화의 화면이 당시 다른 쇼브라더스 영화와 조금 다른데, 그 이유가 촬영감독이 일본인(타다시 니시모토)인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한다. 로건은 폭포 같은 풍경에 대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배경 그림이 오히려 동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60대가 된 정패패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대취협>이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금연자는 싸울 줄 아는 여자다. 그녀는 남장을 해서라도 자신을 지키고, 혈육을 구하기 위해 칼을 쓴다. 코멘터리 오디오에서 정패패는 <대취협>이 제작되던 당시, 홍콩의 많은 무협 영화 속의 여성 인물들이 남성보다 강한 투사나 검객의 모습을 했던 이유가, 여자 배우들이 관객을 극장으로 이끄는 요소였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대취협>의 금연자는 단순히 예쁘고 싸움도 잘하는 ‘여전사’나 ‘여검객’이 아닌, 자신의 실력과 신념에 기반해 매일 싸워나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대취협>이 만들어진 지 50년이 지난 지금, 2016년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속 여자들 중, 금연자만큼 주체성을 가진 인물을 보는 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무협 액션극의 히로인까진 아니더라도, 한 남자의 아내 혹은 연인이 아닌, 자신의 이름과 역할이 분명한 여성 캐릭터를 만나고 싶은 관객으로서의 욕망은 좀처럼 충족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대취협>을 개봉 당시 새로운 스타일의 무협영화였다는 평가를 넘어, 뚜렷한 성격과 자아를 표출하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로 재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홍콩 극장 포스터 ©Shaw Brothers Studio

<대취협> 홍콩 극장 포스터 ©Shaw Brothers Studio

 

신성현 기자

rubysapphire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