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6년 6월 24일

우주의 사과, 사과의 우주

다니카와 슌타로 <사과에 대한 고집>

 

<사과에 대한 고집 : 다니카와 순타로 시와 산문 1952-2015>, 2015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

출판사 : 비채

청구기호:

830.81 다219ㅅ    석관동도서관/5층 일반자료실

 

다니카와슌타로_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슌타로_사과에 대한 고집

 

여기 ‘힙’한 할아버지가 있다. 다니카와 슌타로. 올해로 85세인 그는 <철완 아톰>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곡 가사를 쓴 장본인이다. ‘다니카와(계곡에 흐르는 강물)’ 라는 앱이 있다. 말 그대로 계곡에 흐르는 강물에 낚싯대를 넣고 다니카와의 시를 낚는 게임이다. 스누피가 등장하는 만화 <피너츠>의 일본어 번역가이기도 한 그는 시를 쓸 때는 아이패드를 즐겨 사용한다. 아, 맞다. 그는 사실 시인이다. 시인일 뿐이랴. 셀러브리티이기도 하다. 도고 온천에는 그가 일을 한다는 컨셉으로 연출된 방이 존재한다. 제목에 자기 이름이 들어간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일본에 시로 돈을 벌어 먹고사는 직업 시인이 딱 한 명 있다는데 그게 바로 1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시집이 몇 권이나 되는 바로 이 사람이다. 그의 독자층은 동화를 읽는 어린이부터 양로원의 90세가 넘는 노인들까지 아우른다. 문학 평론가 김응교는 「하늘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에서 “이 글에서 수십 권이 넘는 그의 시와 200여종이 넘는 그의 작품을 다 소개할 수는 없다. 시집, 시나리오, 라디오 드라마 대본, 희곡, 동화, 가요, 르포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쓰고 있는 그의 세계를 제한된 지면에 소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 말했다.

<사과에 대한 고집>은 이 늙고 젊은 시인의 시력 63년을 기념해 1952년부터 2015년 최근작까지 그의 시와 산문 60여편을 모은 시선집이다. 시만 수천 여 편에 달하고 그 외 온갖 장르에 걸쳐져 있는 그의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이 얇은 책 한 권이 그의 시 세계를 전부 담고 있으며 유머러스하고 이해하기 쉬운 시들로 가득 차 있으니 꼭 사 읽으시라는 대형 서점 페이스북 관리자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물론 페북 지기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시는 읽기 쉽고 재미있다는 평을 이끌어낸다. 게다가 이 시선집이 그를 다 담고있는 것은 불가능할 망정 가장 닮아있다는 것은 틀림이 없다.

앞서 다니카와를 ‘힙’한 할아버지이자 시인이라 칭했다. ‘힙’이란 무엇인가. 힙의 정의가 모호한 것은 어려워서가 아니라 힙이 정의하기에는 너무 빠른 어떤 움직임에 가깝기 때문이다. 힙은 동적인 단어이며 그 에너지는 시간성에서 발현된다. 힙은 사적인 유니크와 모두의 유행을 활보하는 모순 그 자체다. ‘당황해서 뿌 / 우리 같이 뽕.’ 하는 어린이를 위한 동시인 ‘방귀 노래’와 갓 태어나던 아이가 “아버지 생명보험은 얼마짜리 들었어?” 묻더니 답을 듣고 태어나지 말아야겠다 하는 ‘탄생’ 같은 시가 함께 있다. 연시인 ‘부탁’은 ‘내 아픔은 나만의 것 / 당신에게 나눠줄 수 없어요’  말하고, 유명한 살인마인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빌리 더 키드’가 그 곁을 차지한다. ‘어디2 – 교합’이나 ‘미래의 아이’ 같은 철학적 사유가 그대로 드러난 작품은 또 앞과는 다른 정서를 관철한다. 말 그대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향연이다. 자기 이름을 딴 앱을 만드는 85세 노인이나 아이패드로 쓴 시집 같달까. 그의 시 세계는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이 작은 것은 아주 사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 키웠던 개, 생명보험, 미키마우스, 방귀, 사과 같은 것들. 이 작은 것들을 통해 그는 구멍을 뚫는다. 시인은 산문 ‘바람 구멍을 뚫다’에서 “시는 지구에 있는 숱한 언어들의 차이를 초월해서 우리 의식에 바람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 부는 바람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바람일지도 몰라요.”라 썼다. 이 구멍은 세상 온갖 물상을 넘어 우주로, 무려 이승과 저승으로까지 확장될 가능성을 품은 그런 구멍이다. 사적인 존재와 보편의 존재가 합일되는 모순의  순간이다.

다니카와는 구멍을 뚫는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를 유명하게 한 시인 1952년작 ‘20억 광년의 고독’의 마지막 연은 이렇다.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 / 나는 무심코 재채기를 했다.’ 순간 우주까지 확장되었던 우리의 의식은 작기 그지없는 ‘나’에게로 돌아온다. 존재와 우주에 대한 물음이 겨우 한 인간의 재채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버라이어티한 시집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우주적 상상력과 경쾌한 시어, 그리고 유머러스한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웃음기는 경박함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력에서 기인한다. 50여년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견딘 다니카와와 그의 시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생명력 덕분이다. 그렇게 시인의 사과는 애니메이션과 아이패드와 ‘다니카와’를 건너 우주를 지나 나의 재채기로 돌아왔고 지금 여기 살아있는 우리는 무심코 간지러운 코를 쓱 훔친다. 아, 이 얼마나 힙한지.

 

다니카와슌타로(카피라이트마크) 연합뉴스

다니카와슌타로(카피라이트마크) 연합뉴스

 

이원섭

onesu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