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비디오게임은 가능할까?

※게임 <스펙옵스: 더 라인>과 <언더테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조셉 드라페(Joseph DeLappe)는 2006년 ‘dead-in-iraq’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드라페는 밀리터리 FPS게임(1인칭 슈팅 게임)인 <아메리카스 아미>(America’s Amry)에 ‘dead-in-iraq’라는 이름으로 접속한 뒤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죽을 때마다 실제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이름과 사망일자를 채팅창에 입력했다. 드라페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추모이자 항의라고 설명했다. 전쟁 게임 속에서의 디지털 죽음을 실제 이라크전에서의 죽음과 연결시키려 시도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드라페와 함께 게임을 하던 플레이어들은 영문모를 글귀들을 채팅 창에 끊임없이 입력하던 트라페를 ‘트롤’로 인식하고 방에서 강제 퇴장시켰다.
<아메리카스 아미>는 플레이어들이 실제 군과 전쟁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그 경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게임이다. 미 육군이 모병 홍보 목적으로 제작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TV드라마인 <제너레이션 킬>의 등장인물 트럼블리의 경우처럼, 비디오게임을 통해 군에 흥미를 느낀 젊은이들이 입대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미 육군이 젊은이들의 입대를 권유하기 위해 과거처럼 애국심에 호소하는 대신 전쟁 게임을 통해 흥미를 자극하는 전략을 택한 것은 징후적이다. 영화나 비디오게임에서 재현되는 전쟁의 스펙타클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전쟁은 참혹함보다는 FPS 게임처럼 흥미롭고 스릴 넘치는 것으로 다가온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미디어의 영향으로 돌리는 것만큼이나 미디어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확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할 무책임한 태도다. 미디어는 분명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인식과 감각에 영향을 준다. 우리가 재현의 윤리 같은 것들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비디오게임도 마찬가지다. 특히 비디오게임은 많은 장르들이 ‘폭력’에 의존할 뿐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구조적으로 유도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게임에는 명시적이던 그렇지 않던 승패나 점수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어떤 행위에는 보상을 하고, 어떤 행위에는 벌점을 주는 규칙이 존재한다. 게임 속에서 적을 죽이면 점수를 얻고, 승리를 할 수 있는 규칙이 존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그런 행위를 유도 하는 것이다. <콜 오브 듀티>와 같은 게임들은 꾸준히 전쟁의 참혹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만, 전쟁의 이미지를 스펙터클로 묘사하고 성공적인 전쟁 수행의 보상으로 승리의 희열을 제공하는 한 그저 모순적 제스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대부분의 비디오게임들이 철저히 상업적인 맥락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유희를 제공하는 상품이라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자장으로부터 다소 벗어나 있는 작품들도 존재한다. <스펙옵스: 더 라인>이 좋은 사례다. 이 게임은 처음에는 기존 전쟁 게임과 전쟁 영화들의 관습을 고스란히 따라가지만 이내 그것을 뒤집어 엎는다. 플레이어는 모래 폭풍으로 황폐화된 두바이에 파견된 특수부대원으로서 연락이 두절된 반역 부대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게임이 진행되면서 반역 부대가 오히려 시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음이 밝혀지며 주인공의 행위는 명분 없는 학살로 변모한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주인공은 PTSD로 미쳐가고, 개발자들은 제4의 벽을 넘어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걸며 당신의 행위와 선택에 따른 결과라고 비난한다. <스펙옵스: 더 라인>에서 플레이어들은 전쟁의 스펙터클, 승리의 희열 대신 끔찍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작년 9월 발매되어 한국 인터넷 상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인디게임 <언더테일>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나타난다. <언더테일>은 인간과 괴물이 대립한다는 전형적인 RPG(롤플레잉 게임)의 배경에서 출발한다. 플레이어는 기존 게임들처럼 괴물들을 죽이면서 진행할 수도 있지만, 자비를 베풀면서 진행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가 기존 게임들의 관습에 따라 괴물들을 죽이면서 진행하면 게임의 종반부에 등장인물 중 하나가 플레이어의 행동에 대한 윤리적 심판을 한다. 이 때 이 게임에서의 LV와 EXP는 레벨과 경험치가 아니라 폭력수치(Level of Violence )와 처형점수(Execution Point)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이와 같은 <언더테일>의 재해석은 기존 게임들의 관습에 익숙해져 폭력에 둔감해진 플레이어들에게 불편함을 준다.
간혹 이러한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행동을 구조적으로 유도했으면서 플레이어의 행동을 윤리적으로 단죄하려 들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정당성 없을 뿐 아니라 기만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스펙옵스: 더 라인>은 기존 전쟁 게임의 관습, <언더테일>은 기존 RPG의 관습이라는 메타-장르적 층위들을 참조하고 그것을 드러냄으로써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즉, 플레이어 개개인의 행위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기존 게임의 관습들이 어떻게 플레이어가 폭력에 무감각 해지도록 만들었는지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플레이어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니라, 장르와 매체 그 자체에 던지는 비판인 것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되는 RPG를 표방한 게임 _언더테일_
아무도 죽이지 않아도 되는 RPG를 표방한 게임 _언더테일_

 
김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