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웃음(1)

 

역사적으로 웃음과 희극성에 관한 논의는 비극이 그러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희극에 대한 간략한 언급을 보여준 이래 이러한 흐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는데, 삶에 밀접해 있으면서도 그동안 좀 더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웃음과 희극성에 대해 이번 기회에 짧게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이탈리아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의 코메디 <로칸디에라> 번역·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조태준 필자로부터 3회에 걸쳐 본 화두에 대해 간략히 다루어 보겠다.

바야흐로 웃음의 시대다. 거의 모든 사회매체가 웃음의 생산과 유포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대중은 마치 웃음의 거대한 포식자와 같다. 역(逆)대중화 시대에 웃음은 그야말로 현대성의 가장 뚜렷한 징표로서 그 자체가 정치행위이며 경제구조이고 사회징후이다. 욕망을 추구하는 대중은 언제든지 웃음을 소비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런 만큼 남을 웃기는 능력은 지극히 왕성한 생산력을 상징한다. 또한 웃음은 정서적 자유의 표상임과 동시에 핍박과 저항의 은유적 실체이다. 웃음의 정서적 효력은 현세적이지만,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는 데에는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웃음의 사회적 속성은 언제나 아방가르드적이며, 한층 본질적이다. 더 이상 사적일 수 없는 웃음의 행사가 억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은 불행하게도(?) 웃음을 잃어버린 적이 없으며 내내 그것의 망령에 시달려야 했다.

 

웃음과 웃음거리

 

우리는 연극과 웃음이라는 인식의 영역에서 일찌감치 ‘장르’라고 하는 추론 체계와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전형적인 민속극이나 흔히 대중극의 범주에서 거론되는 희극(comedy), 소극(farce), 광대극(parade), 장터극, 불르바르 연극, 보드빌 등과 같은 이른바 ‘웃기(또는 웃기기)위한 연극’들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은 장르에 관한 것이지 개념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연극의 웃음은 결코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웃음을 장르라는 제한적 범주에 한정시킨다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에 자주 등장하는 코믹 릴리프(comic relief)나 디드로 D. Diderot의 이른바 심각한 희극(comédie sérieuse), 또는 희비극(tragi-comedy)과 같은 절충주의 장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적어도 웃음은 장르에 우선하는 삶의 어떤 국면이며, 그것의 행사는 삶의 목적성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웃음의 행사에는 단지 두 개의 주체, 즉, 웃음을 자아내는 사람과 웃음거리를 발견하는 사람만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웃음의 발현은 이 두 주체의 정신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우리가 흔히 웃음거리라고 지칭하는 것은 골계(滑稽), 다시 말해 희극적인 것(comic)에 해당된다. 이는 정서적이고 지적인 정신구조까지를 두루 포함한 개념으로서 웃음을 자아내는 또 다른 요소인 우스꽝스러움(risible), 공상(romanesque), 환상(fantasy) 등과 구별된다. 현상하는 것들은 그 모순 때문에, 즉 본질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스스로 지양되고 목적은 실현되지 못한다. 이에 반해 골계는 보다 심오한 전망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현실세계에서 덕을 갖춘 인간과 그렇지 못한 패륜아의 현란한 대조(풍자)라든가, 거대한 기만과 위선을 조롱하는 지적인 힘(아이러니)이 그 예이다. 여기서 부덕과 기만, 위선은 인간성의 또 다른 본질이기 때문에 그것은 현상 내지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즉 골계는 본질의 영역이라는 얘기다.

일상적으로 웃음거리가 즐거움과 쾌락의 원천이 되는 데에는 비교와 대조에서 오는 우월감이 작용한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원칙적으로 그러한 종류의 우월감은 형성되지 않는다. 배우의 실수나 공연 진행상의 뜻하지 않은 오류 따위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비교와 대조가 고도로 조작된 웃음거리를 통해 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웃음거리를 대면한 자의 즐거움은 우월감보다는 경탄스러움의 영역에서 만들어진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웃음거리의 조작은 과장과 축소라는 웃음의 경제성에 의해 구축된다고 한다. 천진난만함은 소박성이라는 경제적 인식에, 그리고 과장된 인물의 몸짓은 과대한 비용지출의 관념에, 등장인물이 희극적 상황에 빠진다든가, 흉내 내기, 캐리커처, 패러디, 변장 등은 다양한 현실의 축소라는 구조적 특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웃음의 서사구조를 비용과 절약의 관점에서 대별하기도 하는데, 농담의 쾌락은 억제비용의 절약에서, 희극의 쾌락은 표상비용의 절약에서, 유머의 쾌락은 감정비용의 절약에서 온다고 판단한다.

웃음거리의 서사성은 분명 일반적인 서사구조와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서사의 보편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전자의 구조는 후자에 의해 의존적이다. 길을 가다 넘어진 사람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근거는 정상적인 보행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연극 속에 구축된 등장인물의 희극적 전망은 보편적인 인간형을 토대로 한다. 그러므로 웃음거리의 조작은 현상과 일상에 대한 보다 심오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웃음이 사회통념과 지속적인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율배반적으로 이완의 효과를 지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Le Rire, Essai sur la signification du comique 프랑스어판
Le Rire, Essai sur la signification du comique 프랑스어판

 

조태준

극작가 겸 연출가, 배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