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낭만주의란 무엇인가

Ⅱ.본론(2)

 

슐레겔에서 포에지(=신화=예술)와 철학은 불가분리적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그의 철학사상을 알아보자. 슐레겔은 무엇보다도 문필가, 즉 예술(문학)분야에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하므로 예술의 측면에서 그의 철학사상에 접근해 보자.

 

1)예술과 철학이 지니는 공통의 아포리아

 

예술가는 근대들어 고대의 시인, 즉 신의 사제이자 대리인의 위치로 격상된다. 예술은 신적인 것(=절대적인 것)의 표현(=전달)이 된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어떻게 유한한 인간이 절대자(=절대적인 것)를 표 현해 낼 수 있는가?

낭만주의자가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절대자를 표현할 수 있으려면 ‘절대자가 과연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절대자란 무엇이며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의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물론 이 문제들이 해결된다 해도 그것이 예술과 같은 감각적 형식으로 표현가능한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 고르기아스는 절대자(=절대적인 진리)와 관련한 아포리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적이라 할) “아무 것도 있지 않다. 있더라도 알 수 없다. 알더라도 전달할 수 없다.”

이 아포리아에 대한 슐레겔의 답변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철학은 절대자를 추구한다. 그러나 과연 유한한 인간의 의식이 절대자를 알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의식을 지닌 인간은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자에 대한 추구는 무한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의식을 지닌 인간의 운명 혹은 본능이다.”

헤겔은 절대자를 개념을 통해, 개념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개념적 파악을 뜻하는 독일어 ‘베그라이펜(Begreifen)’은 ‘움켜쥐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즉 어떤 것에 대한 개념적 파악은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을 소유한다는 뜻이다.

슐레겔은 절대자에 대한 헤겔식의 파악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은 절대자를 추구할 뿐, 그것을 완전히 내 소유로 움켜쥘 수는 없다. 이로부터 낭만주의자의 철학관(진리관, 지식관)의 일단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철학은 절대자를 추구한다’는 명제로부터 다음과 같은 철학적 입장이 나온다.

첫째, 절대자에 대한 무한한 접근만 가능할 뿐 완전한 파악은 불가능하다.

둘째, 절대자에 대한 접근방식에서 이성과 개념적 파악은 하나의 접근방법일 뿐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다.(앞서보았듯 헤겔은, 절대자는 개념을 통해, 개념을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본다.)

 

2)절대자는 무엇인가

 

예술과 철학이 처한 아포리아를 넘어서기 위해 슐레겔은 절대자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그는 우선 절대자가 무한히 추구되지 않을 수 없다면 절대자를 차라리 ‘무한자(무한한 것, 무한히 추구되는 것)’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소유(=파악)할 수 없고 무한히 추구될 수밖에 없다면 절대자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인간의 노력들, 즉 토대, 체계, 개념 등은 모두 허구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낭만주의자는 ‘그렇다’고 한다. 절대자를 ‘무한자’로 이해하는 자신의 철학체계도 같은 처지임을 인정한다. “무한자 자체가 허구이다.”(슐레겔)

그러나 인간이 절대자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이것들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아니 인간에게는 이것들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 없다. 절대자와 관련하여 인간이 세운 모든 가치체계들, 철학·예술·도덕·종교 등은 허구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에게 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낭만주의자의 절대자에 대한 접근방식은 의외로 단순하다. 절대자는 절대적이지 않은 것의 추상에서 구하지 않을 수 없다. 추상은 제거의 의미를 지닌다. 즉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제거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절대적이지 않은 것, 즉 유한한 것(=유한자) 뿐이다. 그러므로 절대자이지 않은 것의 추상은 무한히 이루어진다. 따라서 절대자는 ‘무한자’이다.

그런데 추상을 하기 위해서는 ‘추상을 하는 주체’, ‘추상하는 자’가 필요하다. 추상은 인간의 의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의식은 추상할 수 없다. 결국 그에게 절대자는 ‘무한자’와 ‘의식’의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즉 절대자는 무한자와 의식의 관계를 통해서 성립한다.

의식의 역사, 혹은 철학사는 각각의 시대의 한계 속에서 의식된 무한자에 대한 서술이다. 그렇다면 무한자와 의식은 현실적으로, 혹은 실재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가? 슐레겔은 인간에게 실재하는 무한자는 ‘우주자연’이며, 의식은 ‘반성(능력)’이라고 한다. 즉 의식의 역사는 ‘실재성(현실성;Realität)’에서 파악하면 ‘우주자연에 대한 반성의 역사’이다.

 

3)스피노자와 피히테 혹은 자연철학과 반성철학의 종합으로서의 알레고리론

 

슐레겔에서 철학은 절대자의 추구이다. 그는 무한자와 의식을, ‘실재성’을 통해 종합함을 자기 철학의 과제로 삼는다. 무한자와 의식의 관계의 규명이 절대자의 서술이며 이 양자와의 관계에서 얻어진 것만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 즉 ‘실재성’이다.

그런데 그에 의하면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철학은 스피노자와 피히테의 철학이다. 전자가 무한자에 관한 최고의 철학이라면 후자는 의식에 관한 최고의 철학이다. 무한자=우주자연=자연이며 의식=반성이므로 스피노자의 철학은 최고의 자연철학이며, 피히테는 최고의 반성철학자이다. 따라서 그의 철학적 과제는 스피노자와 피히테의 결합이 된다.

슐레겔은 스피노자 철학의 기본관점, ‘신 즉 자연’을 받아들인다. 스피노자는 이를 무한실체의 양태화, 즉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의 관계로 설명한다. 슐레겔은 스피노자의 설명을 ‘신성=자연’으로 변형한다. 또한 ‘무한실체’는 ‘무한자’, ‘양태’는 ‘알레고리’로 이해한다.

슐레겔은 무한자(=스피노자의 무한실체)의 운동을 ‘무한자의 유한자화’, ‘무규정자의 규정자화’, ‘전체의 개체화’, ‘질료의 형식화’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절대자가 무엇인가를 말하지만 낭만주의자가 진정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유한자, 즉 무한히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 세계에 대한 해명이다. 왜 이 세계는 없지 않고 있는 것인가? 왜 이 세계는 이렇게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는가? 슐레겔은 스피노자를 받아들임으로서 그 이유를 ‘신성의 자기현시’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이 세계는 신성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신성(=절대자)의 ‘알레고리’이다.

반면 이 과정을 의식의 관점에서 이해해보자. 의식은 반성이며 반성하는 주체(주관)는 ‘자아’이며 반성되는 객체(객관)는 ‘비아’이다. 의식의 운동은 자아가 비아를 정립·규정하는 운동이다. 즉 피히테에서 비아는 자아의 산물이다. 슐레겔은 이러한 피히테의 자아-비아론을 이렇게 해석한다. “객관세계는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해하기 힘든가? 당시는 프랑스혁명의 영향이 전 유럽을 휩쓸고 있는 때이다. 피히테에 의하면 프랑스혁명은 자유·평등·사랑이라는 이념(=인간의 주관적 의식)이 사회적 실천을 통해 현실화(객관화, 비아화)한 것이다. 피히테는 이를 철학화한 것이다.

의식의 운동은 무한자의 운동과 역으로 이루어진다. 즉 무한자의 운동(=‘신성 즉 자연’=‘신성의 자연사물화’)이 무규정자(신 혹은 신성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가 없으므로)의 규정자화라면 의식의 운동의 궁극목적은 규정자들(하나의 식물, 동물, 인간 등)을 통해 무규정자의 의식에 이르는 것, 즉 규정자의 무규정자화, 다시 말해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통해 절대자를 의식하는 것이다.

의식의 운동, 자아의 비아정립·규정도 무한한 과정이다. 즉 의식의 운동은 절대자에 대한 절대적 의식에 다다를 수는 없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먼저 절대자는 무한자이기 때문이다. 즉 절대자는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자기를 무한히 생성해내는 운동성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의식) 자체가 유한자라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을 통해 의식은 무한자(=절대자)에 대한 나름의 상(像)을 만들어낸다. 무한자에 대한 의식의 결과물, 혹은 상(像)이 개념의 형식으로 나타나면 철학(=학문)이다. 감각의 형식으로 나타나면 예술(작품)이다. 즉 철학적 개념은 무한자의 상징이며, 예술은 무한자의 알레고리이다.

슐레겔은 ‘상징’과 ‘알레고리’를 구분해서 쓰지만 의미상의 차이는 사실상 없다. 무한자의 운동과 의식의 운동은 모두 ‘알레고리’를 낳는다. 이로부터 현대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슐레겔의 테제가 완성된다. “실재하는 것은 ‘알레고리’ 뿐이다.”

 

문학적 절대L'absolu litteraire_ Theorie de la litterature du romantisme allemand
문학적 절대 L’absolu litteraire_ Theorie de la litterature du romantisme allemand
1800년대를 전후로 출간되었던 낭만주의 시기 텍스트를 선별하여 싣고, 낭만주의가 가진 현대성을 다양한 맥락에서 드러내는 책.

 

 

이관형(서울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