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신임교원인터뷰(3) – 하승우 교수(영상원 영상이론과)

– 신임교원인터뷰 목록

신임교원인터뷰(1) 조충연(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

신임교원인터뷰(2) 조현(미술원 디자인과)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이런 당위를 말하며 감동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는 것은 교육 시스템에서 중요한 지향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현상을 똑바로 바라보면 학교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언제나 학생이 아니었다. 학생은 4년이 지나면 학교를 떠나지만 교원들은 은퇴 전까지 10년, 20년 이상 학교에 남는다. 어쩌면 학교를 이끌어 가는 데에 학생보다 더 중요한 책임이 부여되는 쪽은 교원이기도 하다. 지난 학기, 우리학교는 8명의 교원을 새롭게 임용했다. 이들의 생각과 계획, 의지를 통해 학교의 환경은 상당히 변할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우리신문은 ‘신임교원인터뷰’를 기획하면서 그들과 직접 만나, 특별히 학내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중점적으로 들어보기로 했다. 그들이 그리는 청사진에 주목해보면, 우리학교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현상이 쏟아지면 언어는 이를 명료화한다. 이론은 매번 한 발 늦게 도착한다. 모두가 현상에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갈 때, 이론은 전사(前史)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이것은 이론이 갖는 한계이지만, 이러한 ‘뒤쳐짐’은 지나간 사건들에서 보이지 않던 연결망을 발견하고, 과거를 다시 잠재적인 것으로바꾸어 놓는다. 지나간 줄로만 알았던 현상들은 끊임없이 현재화되어 우리에게 복귀한다. 신임교원인터뷰는 세번째로 하승우(영상원 영상이론과) 교수를 찾았다. 그는 “이론은 스스로의 무능력을 과감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말하며 “불가능성은 가능성을 만드는 출발선상”이라고 전했다. 나아가 “요새는 이론적 논쟁을 공론화하는 장이 줄어든다는 데에 위기감을 느낀다”며 최근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호탕한 웃음소리로 이미 학내의 큰 화젯거리인 영상이론과의 하승우 교수가 그리는 학교의 청사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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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론이란 무엇인가?

처음부터 엄청 무거운 질문이다! (폭소) 이론이라는 건 역사와 같이 변증법적으로 생각을 해야한다. 영화연구에 좀 범위를 좁히면, 6, 70년대는 영화연구에서 이론이 굉장히 강했던 시대이다. <카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éma)>를 필두로 논의들이 팽배했던 시대, 라캉과 알튀세르가 많이 통용이 되는 시대였다. 그리고 6, 70년대가 지나가면서 크게 보면 ‘이론’에서 ‘역사’의 패러디임으로 넘어갔다. 6, 70년대 이론의 약점은 하나의 이론을 정립한 다음 모든 현상과 영화에 그 이론으로 적용하려고 하는 욕망과 야심이었다. 역사를 강조하는 흐름이 등장했던 원인은 [이론이] 서구 중심적(Eurocentric)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나의 이론을 갖고 모든 영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인데, 예컨대 헐리웃 영화, 인도 영화, 한국 영화가 서로 다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서 역사에 대한 강조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강조가 너무 많아지다보니,이론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해지고, [문제제기는] 지역으로만 함몰되는 경향이 생겼다. 이론이라는 것은 역사 속에서, 역사와 같이, 관련성을 가지면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또 다른 차원의 이론을 어떻게 생산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생각했던 것은 ‘이론의 무능력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었다. 가령 역사화 되지 못 했던 부분이 있는데, 이론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한다기보다는 되려 이론 자체가 하지 못 하는 부분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앞서말한 작업도 분명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이기 때문에 설명하고 판단하고 개입해야한다. 그 부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즉 이론의 불가능성 혹은 이론의 무능력을 드러내면서도, 이론이라는 전제 하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좀 더 과감하게 밀고 들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Q. 최근 한국의 동향은 어떤가.

상대적으로 이론화 하는 힘이 떨어졌다. 우리학교는 나름대로 이론적인 차원에서의 문제제기를 많이 해왔는데, 이것이 타학교와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못 하다보니 고립된 측면이 있다. 외롭게 문제제기를 해왔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논의할 장이 줄어들고 있다. 그에 대한 위기감이 있다. 이를 테면 요즘은 융합이나 통섭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러한 상황에 이론이 발맞추어 가면서도 동시에 좀 더 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개입할 지점을 찾아야 한다. 그걸 놓치게 된다면 긴장이 풀리면서 주어진 현상을 묘사하는 것에만 이론이 치우쳐진다. 그건 이론이 아니라 설명이다. 현상에 대한 묘사로만 국한될 위험이 강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한국에는 이론적으로 개입할 공간이 많지는 않았다. 이제 움츠러들기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Q. 전문사 석사 논문을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라는 주제로 쓴 것은, 적극적인 개입의 일환인가? (웃음)

[하 교수는 부끄러워 하며 폭소했다.] 사실 처음엔 큰 뜻은 없었다. 뭐라고 할까, 포르노그래피는 우리 시대의 시각문화에서 통용되고 있는데, 이것을 이론화하는 작업이 왜 없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다. 여태껏 담론화 과정이 적었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범주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라는 프레임을 넘어서, 다른 각도로도 포르노그래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결과물을 평가해보면, 그 작업이 성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문제를 던지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위안한다. (웃음) 내가 이 논문을 쓰던 때는 2003년이고,그 시기는 영상이론과가 서서히 부상(Emerging)하고 있는 단계였다. 그래서 과감하게 논문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생긴 듯하다. 논문을 잘 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웃음)

 

Q. 논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아주 간단하게만 얘기한다면, 우선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논문을 쓰기 전에, 린다 윌리암스(Linda Williams)가 『하드코어』라는 책을 냈었다. 워낙 유명한 책인데 윌리암스가 ‘바디(Body) 장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수업 때도 얘기를 좀 하지만, ‘멜로드라마’, ‘호러’, ‘포르노그래피’를 ‘바디 장르’로묶은 것이다. 관람성을 얘기할 때 ‘육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얘기하면서 포르노그래피로 들어간다. 논문을 쓰기 전에 어떻게 이론화 할지에 대해서는 꽤나 막연했는데, 린다 윌리암스의 글을 보면서 방향이 많이 잡혔었다.

 

기본적인 논점은 하나는 포르노그래피는 “성과학의 일종”(미셸 푸코)이라고 점이다. ‘육체적인 고백’을 통해서 드러나는 현상을 목격하고 가시화하는 일련의 흐름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단지 포르노그래피만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대의 시각 체계 안에서 우리가 보지 못 했던 것들을 더 자세히 보려는 시각적인 욕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다시 말해 포르노그래피는 우리가 보지 못 했던 것을 바라보는 욕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들어가다보면, 조나단 크래리(Jonathan Crary)의 『관찰자의 기술』과도 연결이 되고 더 확장되는 부분이 있다. 즉 포르노그래피는 근대적인 시각문화의 특수한 부분이고 오늘날의 시각문화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인데, 다만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다. 가령 이데올로기라든지, 성과학의 일종이라든지. 논문을 쓰면서는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선용하면서 “[포르노그래피를]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에서의 ‘가처분시간’을 확보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사용을 한다, 못 한다’의 문제라기보다는,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검증되지 않은 이론적인 가설 및 투쟁이었다.

 

Q. ‘포르노그래픽하다’는 말은 많은 경우 부정적인 형용사로 사용된다. 시각문화에서 그것을 선용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조르주 바따이유(Georges Bataille)의 『에로티즘』에서 나온 논의이기도 한데, 이 책에서 바따이유가 ‘섹슈얼리티’와 ‘노동’을 연결한다. 논문을 쓰던 당시에는 과도한 노동시간이나 노동에 대한 강박이 섹슈얼리티를 통해서 브레이크 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웃음) 포르노그래피라는 아주 이데올로기적이고, 아주 성과학적인 장치를 통해서 노동시간에 함몰되지 않고 나름대로의 가처분시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선용이 아닐까. 또 다른 새로운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검증된 것은 아니다. (웃음) 이론적으로 문제를 던져본 것뿐이다. (다시 웃음) 그리고 논문을 쓸 때 섹슈얼리티만 언급했던 것은 아니다. 이 고리를 통해서 다른 영역과 어떻게 매개되고 있는가 드러내보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점이 이론과의 유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크게 웃음)

 

왜냐하면… 끈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현상만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영역과 맺어져 있는 매개의 끈은 비가시적이기만 하다. 이론의 과제라는 것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흐릿하게 연결되어 있는 끈을 다시 엮어내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어떤 영화를 보고나서 ‘옳다, 나쁘다, 좋다, 싫다’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재되어 있는 시각적인 자료 혹은 각각의 요소를 어떻게 연결지을지,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는 어떤 연속성이나 불연속성이 있는지 함께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게 이론과에서 많이 얘기하는 벤야민적인 ‘성운(constellation)’일 것이다. 이를 통해서 지금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성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웃음)

 

Q. 웃음소리가 장안의 화제인데 알고 있는가. 조충연 교수가 높은 수준으로 흉내낸다.

(웃음) 사람들이 저에게 웃음소리 얘기를 많이 하긴 한다. [이후 하승우 교수는 웃음소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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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학부 때는 법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은 영상이론과에 왔다. 영화나 미학이론 등 인문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있었던 것인가.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었다. 특히나 극장 속 어둠으로 인한 익명의 관람은 대단히 편안했다. 지금은 관람 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반드시 극장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웃음) 또 법을 전공했지만 미학이론에도 관심이 많았다. 아주 옛날 용어지만 ‘서사연(서울대 사회과학 연구소)’이나 ‘서문연(서울대 문화과학 연구소)’ 같은 작은 규모의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존재했었다. 지금의 ‘수유너머N(인문학 연구소)’처럼 아주 크진 않았지만, 자기가 의지만 있다면 같이 공부하거나 토론할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졸업 이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깐 오히려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우스갯소리로 ‘회사에 가면 망한다’ 같은 말도 있었는데, 회사라는 자체가 저에게는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일이 주어지면 강박적으로 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지나치게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그게 육체적으로까지 드러났었다. 내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 목말랐고, 내가 이 일을 평생 영위해야 한다는 데에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들어와서 공부하는 일이 매우 기뻤다. 그래서 무모한 행동들, 가령 ‘잠을 안 자고 얼마나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같은 실험을 하기도 했다. 공부에 대한 주이상스(Jouissance)가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동기들 모두가 술을 좋아하고,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어서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참 재미있던 시절이다.

 

Q. 특별히 우리학교 영상이론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전문사에 들어왔던 시기가 2000년이었다. 90년대 중반은 한국영화계에서 제2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에너지가 있었다. 영화를 전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아졌었다. 이건 아주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이제껏 다른 문화 장르들에 뒤쳐져 있던] 영화가 이제는 그것들을 선도하는 것 같은, 일종의 헤게모니의 역전 같은 게 벌어졌던 듯하다. 마침 <씨네21>(1995년 창간)이나 부산영화제(1996년 개막) 등의 흐름도 생기면서, 무언가 정말로 만들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 마치 레이몬드 윌리암스가 ‘지배적인 것(the dominant), 잔여하는 것(the residual), 부상하는 것(the emergent)’으로 나누는 세 가지 중에, 90년대 중후반은 무언가 ‘부상하는’ 시기였다. 물론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며 비가시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을 텐데, 그런 ‘부상하는 것’에 대한 흥미와 ‘영화’에 대한 흥미가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이곳에 들어와버렸다.

 

또 심광현 교수가 <문화과학>에서 자주 얘기했던 것처럼,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던 시기는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 이행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더 이상 노동과 자본 간의 대결구도로만 사회를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관점을 버리는 것은 아니고, 노동과 자본의 구도를 유지하는 동시에 문화가 어떻게 그 사이에서 매개되고 연결되는지 그 두 가지 끈을 동시에 잡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학교에는 그러한 방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영화면 영화, 정치경제학 비판이면 비판 이런 식이었다. 두 가지가 맞물리는 커리큘럼은 영상이론과에만 있었다. 그에 대한 열망으로 이 학교를 선택했었다.

 

Q. 먼저 인터뷰를 치루었던 두 분은 ‘멀티미디어영상’이나 ‘디자인’을 전공하였다. 매체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전공이다보니 그들이 느끼는 학습환경의 변화는 대단히 클 것으로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런 답을 주었다. 이에 비해 이론 계열은 예전과 지금의 학습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 이런 질문이 유의미하게 느껴질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이론을 공부했던 당시의 환경은 지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론 영역에서 흐름의 변화도 있을 듯하다.

질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두 사람의 분야와 나의 분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아무래도 이론은 현상 뒤에 위치한다. 나왔던 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시대에 편승하여 곧바로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는 늦게 뒤따라가는 느낌도 있다. 어쩌면 이런 것이 이론이 갖고 있는 강점이기도 할 것이다. 차이에 대해서는 내가 요즘 세대들이 공부하는 상황을 완벽하게 알지 못 하니 일반화에 대한 걱정도 된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은 있는 것 같다. 가령 당시에는 영화와 정치경제를 함께 보려고 했었던 흐름이 강했지만 요즘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경향은 적어진 게아닐까 생각한다.

 

Q. 유학을 가게 된 배경과 그곳에서의 교육 환경을 듣고 싶다.

전문사를 마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길이 막혔었다. 한국에서는 영화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외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동기들은 망명을 가네 어쩌네 놀렸었다. (웃음) 런던에서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은, 유럽은 논문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한다. 미국의 경우 ‘코스웍(Coursework;수업활동)’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면, 유럽의 경우 코스웍이 상대적으로 적고 논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한다. 나는 전문사를 졸업하고서 운이 좋게도 곧바로 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됐었다. 그래서 그런지 유학 중에 코스웍보다는 논문을 쓰고 싶은 욕구가 강했고, 그래서 유럽의 시스템이 좀 더 맞았다. 골드스미스 런던대학교는 코스웍이 1년밖에 없었고, 1년 동안 수업을 들으면 이후로는 자유롭게 논문만 쓰면 됐다. 논문을 쓰면서는 크리스 배리 지도교수와 굉장히 많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 경험은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수업시간마다 논문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하려고 하는 편이다. 예전보다 예술사와 전문사 재학생들의 연령이 낮아진 편인데, 논문을 한 번도 써보지 못 한 상황에서 실제로 부딪히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실제적인 교육없이 추상적인 얘기만 듣고, 논문 작업에 들어가기엔 어려운 지점이 많다. 아주 쉬운 부분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논문을 가르치는 게 없는 상황에서 쓰라고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Q. 한국에서의 경험과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논문을 쓴 경험을 비교해본다면, 우선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기존의 지식체계로는 아직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공격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편이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일단 질문한다. 물론 이러한 경향에 약점도 있다.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체계와 일관성을 가져야 함에도, 질문은 신선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데에 자주 비약이 생긴다. 영국의 경우 전체적인 분위기가 과감한 시도를 즐기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정립된 이론에 크게 도전하지는 않는 것이다. 연구대상을 정할 때도 상대적으로 더 형식적인 편이다. 하지만 또 격식과 체계를 갖춰나가는 부분에서는 강하다. 미리 논문을 써놓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데에 치중하기도 한다. 나는 한국에서 다소 급진적인 질문을 던졌다면, 영국에서는 논문의 체계를 준수하고 그 안에서만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었는데,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았던 듯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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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추상적인 질문이 될 수도 있겠으나, 영상원 내에서 영상이론과의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우선 시각문화(Visual Culture)라는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우리는 영화이론과가 아니라 영상이론과다. 영화라는 단위를 넘어서, 시각문화 전반에 대해 연구하는 학과이기도 하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 자체의 문제. 따라서 시각문화 전반에 대한 진단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셀룰로이드 필름(Celluloid Film)에만 기반하는 걸 넘어서 무빙 이미지(Moving Image)로 외연을 넓히고, 동시대의 시각문화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비판적으로’라는 말이 중요하다. 실제로 영상이론과에서 비판이론, 가령 아도르노, 크라카우어, 벤야민 등을 가르치기도 진행하기도 하지만, 영상이론과는 시각적인 문제틀을 개발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학과이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동시대의 시각문화를 어떻게 연결할 것일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너무 클리셰 같은 말이긴 하지만, 일종의 시각문화와 다른 학문의 영역들이 비판적인 차원에서 접합점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시각문화 연구를 넘어서, 시각문화와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이질적인 두 개의 항을 어떻게 함께 연구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 했던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관심사는 그런 부분이다.

 

Q. 전규찬 교수는 “영상이론과가 지나치게 ‘시네마센트릭(Cinema-Centric)’한 경향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아마 이 말은 영상이론과가 극영화 이외의 영역, 가령 다큐멘터리나 애니메이션 등 영상원 전체를 아우룰 수 있는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 하는 실정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는 동의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영상이론과가 너무 협소한 데에만 치중하는 것은 문제가 있으니 범위를 확장시키고 외연을 넓힐 필요는 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이론이 종속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시각환경의 변화를 쫓아가는 것이 이론의 과제가 된다면, 그 과제는 이론이 달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각문화는 시시각각 변화하고 그에 발맞추어 가는 작업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뒤로 돌아가서 이전의 작업으로 복귀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남들이 보기에는 답답하더라도 오히려 일종의 전사(前史)를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전사로 복귀하는 것은, 전사는 아직도 ‘부상하는(emerging)’ 단계이기 때문에, 일종의 긴장(tension)이 아직 물 밑에서 왔다갔다 왔다갔다 한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전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살고있는 현재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전의 영화이론이나 시각문화에 관련된 자료들을 연구하는 것은 지금의 시각문화에 대한 진단으로 나아가는 데에도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또 다른 영역들과는 과감하게 접속할 수 있지 않을까.

 

Q. 그러니까, 영상이라는 최초의 시각매체가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의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반드시 ‘시네마센트릭’한 것은 아니며, 이는 (현대의 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전사를 탐구하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흔히 역사를 바라볼 때 도드라졌던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역사를 자꾸만 선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하지만 경쟁하는 수많은 요소들은 항상 존재했고, 초기에도 대단히 다양한 세력이 경쟁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힘이 없어서 발언권을 못 얻고, 어떤 것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다. 결국 어떤 기원에서 굉장히 다양한 세력의 갈등 끝에 누가 헤게모니를 장악했는가. 이렇게 바라본다면 문제틀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내가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라봤을 때 새로운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한국영화사도 다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이러면 새롭게 문제틀이 완전히 바뀐다.) 눈에 띄는 것만 바라본다면 천만관객. 양적인 측면에서의 업적주의 발전주의. 코리안 시네마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성장의 이데올로기. 사실 코리안 시네마가 처음부터, 만들어질 때부터, 외국과의 접촉이나 혼종이나 이런 게 이미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셔널 시네마 라는 것도 트렌스내셔널 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영화 초기도 혼종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생긴다. 타자들과 어떤 영향을 맺고 있는지. 그것은 지금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론과의 관계들은, 아까 말했듯, 가시화 시키는 과제에 있다. 그게 가능하다면. 기존에 알고 있었던 한국영화사의 통념들을 다시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을 우리가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Q. 학내의 작가주의적인 경향은 여러차례 비판이 되기도 하는데, 이론계 내부에 있는 일종의 헤게모니나 권위주의 현상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이론계만의 문제는 아니고 인문사회 영역 전반의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선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분위기가 있다. 학생들은 불순할지라도 과감하게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

 

가령 영국에서 논문을 쓰던 당시 나의 관점이 지도교수였던 크리스 배리와 일치하지 못 했다. 물론 사람이 완전히 동일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불화가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가 동의하지 못 하는 주장을 많이 펼쳤는데, 감사하게도 크리스 배리 선생은 이를 용인해주었다. 물론 용인한다는 것은 주제 설정과 같은 부분에 대한 자유를 준 것이지 논쟁은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논쟁하면서 나의 논지에 도움이 될 만한 텍스트를 끊임없이 공급해주며 이끌어주기도 했다. 나의 관점을 인정해주고, 쓰고 싶은 대로 쓰도록 허락해준 것은 대단히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우리는 다름이 서로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성장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똑같은 것을 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는 ‘공통(common)’이라는 것에 대해 발본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공부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때때로 학생이 선생보다 더 뛰어나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은 반드시 공부의 내용만을 충족하기 위해 오는 곳은 아니다. 선생들은 공부를 대하는 태도에 모범을 보여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러한 태도를 미메시스하도록 해야할 필요도 있다.

 

Q. 지난 두 번의 인터뷰에서 조충연 교수와 조현 교수는 융합 및 통섭적인 교육 시스템을 학내에 구축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 이러한 융합 교육에 대한 견해도 듣고 싶다.

서로 다른 요소들을 묶어나가는 작업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통섭이 중요한 화두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통섭을 바라보는 방식은 개인적으로 다른 신임교원들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나는 통섭에 대해서는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생각을 한다. 데리다적인 개념이기도 한데 무슨 말이냐면, 통섭을 할 때는 우리는 공통적인 것을 생산하려고 한다. ‘나’도 고정이 되어있고 ‘너’도 고정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무언가 공통적인 생산물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여기에서 융합은 각자의 한계나 곤란함, 장애물 때문에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나와 너의 교집합을 만드는 것보다, 서로의 한계, 하지만 그 한계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그 한계.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이와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한계. 이것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우리과는 할 수 없는 한계, 다른 과에서 할 수 없는 한계에 집중하면서, 한계를 텅 빈 기표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가 『공론장과 경험』에서 ‘프롤레타이라 공공 영역(Proletarian Public Sphere)’ 등을 언급한 것과도 닿아 있다. 그가 벤야민적인 경험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것은 관람객의 경험이기도 한데) 하나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때, 이들은 교집합이 아니라 각자의 한계를 바탕으로 하여 묶여나간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쩌면 데리다가 얘기했었던 ‘불가능의 가능성’이 아닐까. 서로가 불가능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가능성을 생산할 수 있는여지가 마련되는 것이 아닐까.

 

사카이 나오키가 쓴 『번역과 주체』라는 책이 있는데, 번역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한다. 가령 한국말을 영어로 번역할 때 혹은 영어를 한국말로 번역할 때, 일반적으로 전제는 서로가 각자의 그 말을 완벽하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카이 나오키가 비판하는 지점은 어떻게 각자가 그 언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냐는 지점이다. 그렇게 완벽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한국어에서도 번역불가능의 문제가 있고, 상대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는 소통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질문한다. 이건 좁게는 학내에서 다른 과와의 관계들, 크게 보자면 인터아시아 같은 것으로도 연결될 수도 있다. 결국에는 배치와 배열의 문제인데, 이런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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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학교에 오랫동안 남아계실 거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다짐을 듣고싶다.

오늘은 인터뷰라서 말을 많이 했지만, 나는 사실 말을 아끼고 싶은 사람이다. 상투적인 것 같지만, 내 말을 많이 아끼고 학생들의 말을 많이 듣고 싶다. 물론 강의할 때도 말을 많이 하지만, 밖에서는 말을 많이 줄이고 싶은 편이 있다. 내가 말을 줄일 때, 나도 학생도 좀 더 많은 걸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서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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