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신체를 찾아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생물학적 특성’들은 명징한가?

 

산부인과의 초음파 검사에서 의사가 부모에게 넌지시 아기의 성별을 말해주는 그 시점부터 우리의 신체는 여성 혹은 남성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다. DNA 염기서열의 23번째 자리를 통해 부여된 ‘생물학적 성’은 우리의 신체를 규정했으며 우리는 오랜 기간동안 이것을 바탕으로 ‘자연적 성(Sex)’의 개념을 구축해왔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러한 ‘생물학적 특성’들은 명징한가? 가령 남자가 더 충동적이라 하거나 여자가 더 감성적이라고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신체에 기반한 사실들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흔히 과학이 단순히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그렇기에 한없이 진리에 가깝다고 믿어버리곤 한다.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입증된 사실은 의심의 여지 없이 기정사실화 된다. 하지만 과학은 사실 ‘상대적 진리’만을 포착할 수 있으며, ‘반증 가능성’의 테두리 안에서 끝없이 자기비판적으로 사유하는 탐구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니 정말로 ‘완결된 과학’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실로 무가치한 것이다. 우리는 비판 될 수 없는 것은 학문이 아닌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신앙으로서의 과학은 근대까지도 학계 전체에서 팽배히 존재해왔다. 이는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을 통해 드러난다. 남성주체적 시각의 과학은 오랫동안 신체의 영역에서 남성의 우월성을 주장해왔다. 18세기 후반에는 여성은 두개골 내부가 너무 작아서 강한 뇌를 담을 수 없다고 여겼고, 19세기 후반에는 여성의 뇌가 활발하게 기능하면 난소가 제 역할을 못 한다고 여겼다

 

물론 이러한 오개념은 후대에 본질주의 페미니즘과 주디스 버틀러 등의 이론가를 거치며 어느 정도 정정된다. 또한 최근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등장하고 있는데, 일례로 최근 이스라엘 텔아비브(Tel Aviv)대 다프나 조엘 교수팀은 1,4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뇌 MRI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은 남자의 뇌 또는 여자의 뇌라고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일관성 있게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대과학의 주도 아래에 이루어진 신체에 대한 왜곡된 연구 결과들은 여전히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통념으로서 잔류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남성 주체에 의해 왜곡되어온 신체가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의 섹슈얼리티까지도 왜곡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여기서 리처드 니즈벗과 도브 코언의 연구를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통계에 따르면 “여자가 남자보다는 압도적으로 많이 살인에 연루되어 있”²으며 “여자가 남자를 살해할 가능성에 비해서 남자가 여자를 살해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³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대개 남성의 공격적 성향과 살인행위가 모두 “남성의 생물학적 본성에서 비롯되는 당연한 귀결”⁴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두 연구자는 실제로는 이러한 통계적 사실이 신체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 성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라고 말한다. 특히, 이들은 흔히 ‘타 지역에 비해 사납고 난폭하다’고 알려진 미국 남부의 남자들을 조사한 결과 남부의 제도적인 측면과 법률, 사회 정책들이 ‘자신에 대한 모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밝혔다. 남성의 폭력성이 신체적 배경보다 오히려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원숭이의 공격 성향 분석을 사람의 신체에 적용해온 진화심리학의 예시처럼, 과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져 온 신체에 대한 연구들이 젠더의 영역을 명백히 무시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에 샌드라 하딩은 이것이 궁극적으로는 남성 주체의 주도 하에 발전되어온 과학이 가지는 문제이며 오늘날의 과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하딩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의 과학은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간의 거리를 핵심으로 하는 기존 과학의 객관성을 넘어서 “인식 주체의 위치조차 성찰하는, 즉 이중의 성찰”을 객관성의 요건으로서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의 과학 연구는 남성 주체의 권력적 도구로 사용된 탓에 이러한 젠더적 측면을 모두 무시한 채 왜곡된 신체로 접근하려는 시도만 반복했고 그 결과에서 명백히 한계성을 가지는 결론만을 도출해내게 되었다. 이러한 과오에 의해 근대과학은 ‘여성성’과 관련된 일련의 가치들을 역사의 바깥으로 추방하였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성 불평등을 심화하였다. 론다 쉬빈저의 말대로 우리는 젠더에 대한 과학을 생매장함으로써 과거사의 일부 또한 매장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근대과학이 빚어낸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오늘날 과학이 가지는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해보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언제나 개별 개체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존재한다.

 

¹.조성숙 옮김, 론다 쉬빈저 지음, <두뇌는 평등하다>, 서해문집, 2007, p12

².이한음 외 옮김, 마틴 데일리, 마고 월슨 외 지음, <남자>, 궁리, 1999, p31

³.이한음 외 옮김, 마틴 데일리, 마고 월슨 외 지음, <남자>, 궁리, 1999, p31

⁴.이한음 외 옮김, 마틴 데일리, 마고 월슨 외 지음, <남자>, 궁리, 1999, p31

 

참고 자료

조성숙 옮김, 론다 쉬빈저 지음, <두뇌는 평등하다>, 서해문집, 2007

이한음 외 옮김, 마틴 데일리, 마고 월슨 외 지음, <남자>, 궁리, 1999

박혜경, 「나의 앎에 대하여 나는 누구인가?」, 『한국여성학』 제25권 3호, 2009. 09

 

 

서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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