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게임과 정치적 올바름

 

 

작년 11월, 유명 비디오게임 시리즈의 최신작 <매스이펙트: 안드로메다>의 예고 영상이 공개된 후 인터넷 상에는 작은 논란이 일었다. 예고영상의 나레이션을 맡은 캐릭터가 주인공 ‘셰퍼드 소령’의 여성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매스이펙트> 시리즈에선 주인공의 성별과 외모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지만 이전까지는 남성 주인공이 표준인 것처럼 다뤄졌다. 각종 광고 영상이나 표지 그림에 남성 주인공을 우선시하여 등장시켰던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페미니스트 비평가인 아니타 사키시안에 의해 ‘표준으로서의 남성’의 사례 중 하나로 비판 받기도 했다. 개발사인 바이오웨어는 이러한 비판을 수용한 듯 차기작의 최신 예고편에선 여성 주인공의 음성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남성 게이머들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일었다. ‘페미니스트들의 간섭이 셰퍼드를 여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응에 대해 개발자 중 한 명은 “원래 셰퍼드는 여자였다”며 개발 초기 샘플 중 하나를 공개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작년 11월 공개된 <폴아웃4>도 예고편에서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의 나레이션을 번갈아 삽입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 캐릭터가 시리즈의 상징적 대사인 “War Never Changes”를 말한다. 많은 팬들에게 배우 론 펄먼의 목소리로 기억되는 이 대사를 여성 캐릭터가 말하게 한 것은 매우 의도적이다. 지난 3월 출시된 <톰 클랜시의 디비전>도 마찬가지로 도입부 나레이션에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의 음성을 함께 삽입했다. 뿐만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로 중국계 여성이나 레즈비언 여성을 등장시켰다. 지난 2015년 9월에는 EA의 유명 축구게임인 FIFA 시리즈의 최신작인 FIFA16이 시리즈 최초로 여성 축구를 도입하고, 북미판 표지모델에 리오넬 메시와 함께 여성 축구선수 알렉스 모건을 기용하기도 했다. 올해 3월에는 종합격투기 게임인 EA UFC의 2편의 표지에 코너 맥그리거와 함께 여성부의 스타 선수인 론다 로우지를 나란히 세웠다우기도 했다. 그간 꾸준히 비디오게임의 남성 중심적인 측면을 비판해온 비평가들의 의견을 업계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움직임이 꾸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디오게임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업계가 그런 요구에 응하는 사례는 갈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제작사들은 단지 비판을 피하기 위한 제스쳐를 취하는 수준에 그치기도 하지만 EA 같은 제작사의 행보는 매우 적극적이다. 특히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스포츠 게임, 그것도 팬들의 마초적 성향이 강한 종합격투기 게임을 내면서 굳이 여성 선수를 표지 모델로 내세운 것은 단순한히 생색내기로서의 제스쳐가 아닌니라 성 평등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 행동에 가깝다. EA는 게임 업계 내에서도 젠더 이슈에 있어서 가장 진보적 태도를 취해왔던 회사로 평가받았다. 이전부터 자사의 게임에 꾸준히 동성연애 선택지를 넣어왔는가 하면, 2014년부터 2년 연속으로 회사 내 LGBT 성평등 지수에 있어서 최고 평가를 받아 LGBT를 위한 최고의 직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비록 1세계에 국한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기만적인 태도라는 평가도 있지만 변화 자체는 긍정적이다. 미국 같은 경우 이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합의된 사회가 되었다. 오랫동안 백인 남성우월주의로 비판 받은 디즈니가 <주토피아>같은 영화를 만들며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 사회의 분위기다. 게임 업계 또한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피로나 반감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치적 올바름을 공공연히 조롱하는 트럼프와 같은 인물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부상한 것도 ‘정치적 올바름’에 부정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2014년경 발생한 ‘게이머게이트’ 논쟁이나 무차별 살인을 소재로 한 게임 <헤이트리드>의 등장은 이러한 반감을 품은가진 사람들이 비디오게임계 내부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은 비디오게임이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당위와 필요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비디오게임에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외부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비디오게임의 문화적 위상 변화를 보여준다. 시장이 커지고 사용자유저층도 넓어지면서 더 이상 하위문화가 아닌 주류문화의 반열에 오른 비디오게임에게 그에 걸맞는 수준의 윤리적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여성 선수를 남성과 나란히 표지모델로 세운 EA의 FIFA16과 UFC2>

 

 

 

김한냐

영상원 졸업. 자유기고가 희망자.

tgman2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