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노벨, 장르의 용광로 속으로

 

타니가와 나가루 작,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제1권
타니가와 나가루 작,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제1권

 

 

 

평범한 인간에게는 흥미가 없습니다. 이 중에 우주인, 미래인, 이세계인, 초능력자가 있다면, 저에게로 오십시오. 이상!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中

 

 

라이트노벨. 흔히 라노벨이라고 부르는 이 장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말이다. 라이트노벨은 영어 단어 Light와 Novel을 조합한 일본식 영어 조어로서 원래는 일본에서만 쓰이던 단어였지만, 세계적으로 흔히 오타쿠라 불리는 일본 만화 팬층에게 크게 호감을 산 후에는 해외의 몇몇 팬덤에서도 꽤 빈번히 쓰이는 말이 되었다. 일본에서 출발한 이 장르는 얇고 작은 판형과 구어체 위주의 서술, 그리고 흥미 위주의 내용을 담는다. 또한 삽화라는 요소를 활용해 애니메이션의 소설화 판본 같은 느낌으로 일본의 오타쿠층에게 크게 어필하였고, 현지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현재에는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도 상당한 규모의 시장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라이트노벨은 일본 출판 시장의 1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추정판매금액은 2004년에만 265억 엔, 2009년 301억 엔으로 같은 시기에 감소한 서적 판매량에 비해서, 라이트노벨 판매량은 오히려 10% 이상 증가했다. 또한, 이 상승세는 단순히 일본 안에서만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나 대만 등을 비롯한 해외까지도 진출한다. 오늘날 3대 대형 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에는 라이트노벨 코너가 없는 매장이 없고,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2015년 전체 도서판매 수를 집계한 결과 라이트노벨 판매 권수는 62만3000권으로 2013년 54만4000권보다 14.7% 늘어, 동기간에 27.5% 감소한 국내 문학 판매권 수와 대조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라이트노벨의 성장세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하다. 출판 시장, 특히 그중에서도 문학 시장이 가파르게 사양길을 걷고 있는 것과는 특히 대조적이다. 혹자는 이를 씁쓸하게 생각하며 사람들이 포르노그래피에, 상업성에 물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라이트노벨의 상업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라이트노벨은 그 어떠한 여타 장르보다도 더 상업적이다. 라이트노벨만큼 캐릭터를 팔아먹는 장르도 없고, 일본의 아키하바라에서는 일명 ‘굿즈’라고 하는 캐릭터 상품들이 도서 판매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낸다. 하지만 라이트노벨은 바로 그렇기에, 상업성이 있었기에 유효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용광로로서의 라이트노벨은 상업적이어야만 했다. 이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중요한 문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이 된다’는 건 때론 정말 마법의 주문처럼, 불가능해 보였던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시장이 커지면 그곳에 돈이 모인다.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관련 업종이 증가한다. 한때 불모지였던 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간다. 골드 러쉬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끌어냈듯 라이트노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은 장르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만들어낸다.

 

미국이 인종의 용광로라면 라이트노벨은 장르의 용광로였다. 라이트노벨은 우선 갈 곳 잃은 수많은 장르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특히 국내에선 대여점의 몰락 이후 기반 시장 자체가 아예 몰락해버린 판타지 장르에서 상당수의 작가들이 라이트노벨 시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라이트노벨화된 판타지’는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기존의 게임 판타지를 생각하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설정의 <소드 아트 온라인>은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를 가뿐히 넘겼다. 상당수의 작가들은 혼자 힘든 길을 걷기보다 라이트노벨의 이름을 빌려 더 나은 시장에서 살아가기를 택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시로 1세대 판타지 소설 작가였던 임경배와 홍정훈은 <이단과 마왕과 리버레이터>, <기신전기 던브링어>를 썼다. 이처럼 망명자들이 몰려들수록 라이트노벨은 거대해졌다. 여기에 ‘넌 라이트노벨이 아니니까 안돼’ 같은 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방종에 가까운 자유는 타 장르에서 불가능했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라이트노벨의 틀 안에서 장르와 장르는 서로 합치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의 평론가인 신조 가즈마는 이를 ‘제로 장르’, 즉 무(無)장르로서의 장르라고 말한다. 즉, 용광로 안에서 융화된 장르의 복합체가 마침내 기존의 장르를 허묾으로써 새로운 장르의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라노벨은 무한한 자유를 통해 장르의 본질을 관통한다. ‘순문학’과는 영원히 친해질 수 없는 이단의 길을 걸으면서, ‘장르’로서의 프라이드를 가진다. 마치 과거의 펄프 픽션이 저질 소설 취급을 당하면서도 필립 K. 딕, H.P. 러브크래프트, 아이작 아시모프와 같은 작가들을 배출해냈듯, 라이트노벨도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아가면서 수많은 장르적 실험들을 시도해 나가고 사회⋅문화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들을 역사에 남기고 있다. “재미있으면 그만이지”라는 말로 가차 없이 모든 재료들을 한데 쏟아붓는 광경은 때론 쿨하기까지 하다. 거기에는 저급 소설이라고 욕을 들어도 상관없다며 책을 읽는 독자와, 저급 소설이어도 좋으니 책을 쓴다는 작가가 있다.

 

자 그럼, 첫 호에서 시작한 질문을 여기서 마무리 짓도록 하자. 장르는 상업적이라는, 오락적이라는 이유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단언컨데, 상업이라는 이름으로 장르를 비난하려는 모든 시도는 옳지 않다. 그 어떤 작품도 상업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성과 상업성은 정확한 대칭점에 존재하지 않는다. 형식미의 극단을 추구해온 장르는 해당 장르의 특성으로써 평가되어야만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방향성은 과거에 펄프 픽션이 그러했고, 오늘날 라이트노벨이 그러하듯 때로는 정말 저질의, 수준 낮은 작품들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이 모든 것이 녹아드는 쓰레기장의 용광로 안에서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펄프 픽션에서 무너졌던 경계가 마블과 DC의 히어로 만화, 아시모프의 SF와 러브크래프트의 코즈믹 호러로 되살아나고 그 갈라진 계통수의 일부는 다시 라이트노벨에서 만나 또 다른 ‘제로 장르’로 나아간다. 라이트노벨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출발일 뿐이다.

 

 

 

 

서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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