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낭만주의란 무엇인가

Ⅱ.본론(1)

 

사상의 이해는 그 사상 출현의 시공간적 배경, 당시의 쟁점들, 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자 하는 사상은 어떤 답변을 내놓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1부 서론의 서술을 통해 독일낭만주의 태동의 시공간적 배경을 다루었다. 이제 2부 Ⅱ.본론(1)과 3부 Ⅱ.본론(2)를 통해서는 당시의 쟁점들과 이에 대한 독일낭만주의자(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답을 알아보자.

 

1)영원한 과제-자연과 자유(정신)의 종합

 

성경 창세기는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는 사건을 다룬다. 이는 인간(하와와 아담)이 뱀에게 속아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낙원을 상실(‘실낙원’)한다. 반면 인간은 “눈이 밝아진다.” 자신이 알몸임을 깨닫고 신의 부름에 몸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한다. 인간은 낙원을 잃었지만 이성과 자기의식을 지니게 된다. 실낙원 이후 낙원으로의 복귀(‘복낙원’)는 인간의 영원한 과제가 된다.

실낙원으로부터 복낙원으로의 진행은 인류의 역사를 규정하는 역사철학적 전형으로 간주된다. 신이 제공한 낙원은 인간의 자연 상태, 즉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여 소박하게 안주함으로써 정신과 자연이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말한다. 근대인들은 고대 그리스에서 그 역사적 전형을 발견한다.1 요컨대 이 단계, 즉 인류 역사의 최초의 단계에서는 ‘자연’이 지배적 우위를 점한다.

제2단계인 근대에서는 ‘(정신의) 자유’가 주도권을 갖게 된다. 기독교의 발흥과 근대정신의 발생으로 말미암아 자연과의 조화는 깨진다. 기독교와 근대정신은 공히 정신(=영)을 절대성과 무한성으로 이해한다. 즉 근대는 기독교 신학적으로는 영의 지배시기(=성령의 시대, 즉 신=절대자=무한자=성령)이며 근대정신 역시 자신의 영성(=정신성)을 최고의 원리로 삼는다. 다시 말해 성장한 인간 정신은 자신의 무구속성을 깨닫고 자연과 대립하게 된다.2 유념할 것은 이때까지도 우리가 흔히 ‘중세’라고 하는 시기구분이 아직은 완전히 정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근대’는 오늘날의 구분으로는 중세와 근대를 포괄하는 시기이다.

마지막 단계인 3단계는 ‘자연과 자유의 종합’이 특징이다. 고대가 ‘과거’이고 근대가 ‘현재’라면 이 3단계는 ‘당시의 과제’이자 ‘미래’를 나타낸다. 즉 자연과 자유의 종합 내지 통일은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세기전환기, 독일관념론과 독일낭만주의의 공통적인 과제이다. 아니 이는 양자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인류 공통의 영원한 과제이기도 하다. 즉 사상의 영역에서 복낙원의 과제는 자연과 자유(정신)의 종합이 된다.

 

2)종합에 이르는 여러 가지 길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며, 인간 정신이 추구하는 가치는 ‘진·선·미’로 표현된다. 이 각각에 해당하는 영역은 ‘학문, 도덕과 종교, 예술’이다. 즉 학문은 진리를 추구하며, 도덕과 종교는 선을, 예술은 미를 추구한다.

우리의 논의맥락에서 자연과 자유의 종합의 과제는 칸트로부터 제기된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의 3대비판서는 각각 진리와 선, 미의 문제를 다룬다. 이를 다시 인간의 의식능력과 관련하여 보면 각각 사유, 의지, 판단을 주제로 다루는 것이 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학문적 진리(=이론)가 필연성과 보편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룬다. 즉 ‘자연’이 지니는 것으로 이해되어 온 필연성(=법칙성)의 인식론적 근거를 해명한다. 실천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의 의지에 따른 행위(=실천)가 보편적 도덕법칙의 수립으로 나아가야 하는 당위를 규명한다. 인간은 이 당위, 즉 도덕적 실천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고 본다.

노년의 칸트는 ‘자연(필연성)에 기초한 이론의 영역’(순수이성비판)과 ‘자유에 기초한 실천의 영역’(실천이성비판) 간의 괴리를 깨닫는다. 즉 그는 자연과 자유를 종합(=매개)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판단력비판이다. 판단력비판은 자연필연성과 자유의 종합 가능성을 ‘미감적 판단력(취미판단과 숭고판단)’과 ‘목적론적 판단력’을 통해 규명한다.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좌)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우)
판단력비판Kritik der Urteilskraft(좌)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우)

 

그러나 칸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판단력비판을 통한 이론과 실천 간의 종합은 물리적 결합일 뿐 화학적 결합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냐하면 이어지는 칸트의 후예들 특히 독일 관념론자들은, 철학은 ‘하나의’ 절대적인 기초에 놓여야 한다는 믿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3

칸트의 체계는 이론적 기초로서의 자연(필연성), 실천적 기초로서의 자유, 양자의 매개의 기초로서 미감적·목적론적 판단력이라는 세 개의 주춧돌이 떠받치고 있는 삼자정립의 체계이다. 칸트 자신도 이를 부인하지 않으며 그의 철학적 신념에 따라 이를 부인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튼 이후의 철학적 작업들의 과제는 칸트 철학을 하나의 기초 위에 세우는 것이 된다. 즉 자연과 자유의 종합의 과제는 칸트의 3대 체계를 하나로 종합하는 것이 된다.

이 종합을 피히테는 이론과 실천의 관계 틀에서 이해하고, 실천에 우위를 부여함으로써 이루려 한다. 헤겔은 자연과 정신의 관계 틀에서 정신에 주목함으로써 종합을 이루려 한다. 슐레겔은 미감적인 것(das Ästhetische), 특히 숭고의 감정을 통해 종합에 이르려 한다.

 

3)모든 학의 종합-헤겔의 길과 슐레겔의 길

 

이론과 실천의 종합이든 자연과 자유의 종합이든 그것이 성공적으로 종합될 수 있다면 근대 들어 나타난 분과학문들은 하나의 학으로 통합될 수 있다. 인간의 지식은 이론적인 지이거나 실천적인 지일 것이다. 혹은 자연에 관한 것이거나 인간 자신에 관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일관념론과 독일낭만주의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헤겔과 슐레겔은 공히 모든 학을 통합한 백과전서적 학문체계를 기획한다. 그러나 그에 이르는 길은 전혀 다르다.

헤겔은 자연을 정신의 외화로 본다. 즉 그에게서 삼라만상의 역사는 정신의 자기분열로부터 분열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 즉 정신으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학문의 관점에서는 자연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이 절대적인 정신의 영역인 예술(미), 종교(선), 철학(진)으로 발전·통일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예술과 종교 역시 철학으로 고양됨을 통해 통일될 것으로 본다. 철학을 통한 만학의 통일은 헤겔이 이성중심의 개념적 파악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슐레겔도 도덕과 종교, 예술과 철학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도덕을 인간의 외적 삶의 원리로, 종교를 내적 삶의 원리로 본다. 예술과 철학은 인간의 외적인 삶과 내적인 삶이 종합되는 최고의 지점들이다. 예술과 철학은 헤겔과 마찬가지로 전자가 절대자(절대적인 것)의 감각적 표현이라면 후자는 절대자의 개념적 표현이다. 그러나 헤겔과는 달리 양자 사이에 우열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양자는 모두 절대자의 표현이며, 인간에 의한 창작(Dichtung)일 뿐이기 때문이다. 즉 슐레겔에서 모든 학의 종합은 학문 영역 간의 내적인 연관관계에 대한 규명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도덕과 종교의 철학과의 관계 혹은 도덕과 종교가 예술과 맺는 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전체 학문 간의 내적 연관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인 철학사에서는 서양철학의 진정한 출발자인 플라톤에서부터 시(포에지;Poesie)4와 철학은 불화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서술한다. 양자는 모두 절대적인 것을 나타내지만 전자가 감성과 판타지에 의존한다면 후자는 이성과 개념적 숙고의 산물이다. 기존의 철학사는 플라톤이 전자를 배격하고 후자의 편에 서는 것으로 본다. 헤겔이 근대적인 의미의 예술을 절대정신의 한 계기로 보면서도 결국 철학의 손을 들어준 것도 플라톤을 따른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는 포에지와 철학의 관계에 대한 플라톤의 입장과 관련하여 전혀 다른 평가를 내놓는다. 슐레겔은 플라톤에서 신화(=포에지)와 철학은 불가분리적이라는 입장에 선다. 즉 플라톤에서 철학적 진리는 이성을 통해 포착되지만 그것은 신화를 통해서 전달된다.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이론을 신화적 이미지에 의해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신화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신화는 플라톤의 철학체계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다.

플라톤(고대 그리스어- Πλάτων, Plátōn, , 영어- Plato).JPG
플라톤(고대 그리스어- Πλάτων, Plátōn, , 영어- Plato).JPG

 

1.서양사상의 두 축을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자연은 신학적으로 신(=영=정신)의 피조물일 뿐이다. 관념론 철학도 자연(=객관적인 것)을 인간 정신(=주관적인 것)의 산물로 이해한다.

3.그러나 하나의 절대적인 기초에서 출발하여 그 위에 철학을 수립하려는 시도는 피히테에 국한된다. 헤겔과 슐레겔은 철학이 하나의 절대적인 기초에서 출발할 수 없다고 본다. 헤겔은 이 절대적인 기초가 출발이 아니라 철학체계의 전개의 최후에서나 드러날 수 있다고 본다. 즉 헤겔은 ‘최종(최후)정초’의 방식을 택한다. 반면 슐레겔은 헤겔과 유사한 입장을 보이면서도 하나의 절대적인 기초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4.여기서 ‘시’는 근대문학의 한 장르인 ‘시’와는 구분되므로 이 글은 앞으로 ‘포에지’라는 표현을 쓴다. 또한 이 글에서 ‘포에지’는 고대적 의미의 신화 및 근대적 의미의 문학과 예술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포에지(시;詩)는 본래 열광(Enthusiasmus;접신상태)에 휩싸인 시인이 망아(忘我)적 상태에서 신의 말씀을 대신하여 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포에지는 예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발견됨으로써, 포에지는 르네상스 이후 격상된 예술의 한 장르가 된다. 즉 역사적으로는 포에지가 예술에 속하게 되는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오히려 사회적 평가의 면에서는 예술이 포에지의 반열에 속하게 됨(=격상됨)을 알 수 있다.

 

 

이관형(서울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