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6년 5월 7일

누구를 위한 미디어콘텐츠센터인가

 

 

‘누구를 위한 미디어콘텐츠센터인가?’라고 묻기 전에, 먼저 ‘누구를 위한 학교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학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학교 구성원은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교내 각 분야의 노동자들을 포함하지만, 일차적으로 학교는 학생을 위한 곳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학생들의 교육과 복지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학생들, 특히 영상원 학생들과 밀접한 교내 부설기관인 미디어콘텐츠센터(이하 ‘미콘’)는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최근엔 미콘과 관련해 실기 조교 재계약 거부 논란뿐만 아니라 센터장의 행보가 독단적이라는 지적, 배급이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등이 우리 학교 신문과 누리집을 통해 언급된 바 있다. 이것만으로도 작금의 미콘 운영 상태가 불안정하며, 미콘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 또한 낮다는 걸 알 수 있다.

 

미콘 홈페이지의 ‘센터소개’란에 보면 ‘비전’이란 제목으로 미콘 설립 목적에 관한 짤막한 글이 있다. “2012년, 국립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기관으로 설립된 미디어콘텐츠센터는 음악, 연극, 영상, 무용, 미술, 전통예술 등 예술의 전 분야를 포괄하는 수준 높은 학내 미디어콘텐츠들을 제작하여 더 많은 이들에게 보급하는 한편 기존 예술영역의 장벽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 융합하는 새로운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 문장이지만 내용은 매우 거창하다. 과연 미콘에서 말하는 “기존 예술영역의 장벽을 넘는”다는 건 무엇이며, 실제로 미콘은 얼마나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융합과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는가?

 

나는 얼마 전, 국내에서 개최되는 한 대표적인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우리 학교 학생들의 작품을 배급할 계획이 없냐는 문의를 미콘에 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편수가 많지 않아서 아직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방송영상과 학생들의 작품 중 대다수가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냐”고 물었는데, 담당 직원은 “방송영상과의 경우 학과 내에서 배급을 따로 진행하는 거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방송영상과 조교실에 문의해보니 학과에서 배급하는 시스템은 없고,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배급을 진행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니까 미콘은 다큐멘터리나 실험 혹은 아방가르드 영화 등, 편의상 ‘극영화’라고 하는 장르 외의 작품들엔 실질적으로 크게 신경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미콘에서 아우르고자 하는 음악과 연극, 무용과 미술까지 가기 전에, ‘영상’이라는 범주 내의 세부 장르는 다양하다. 학생들이 엄연히 교과 과정 내에서 작업한 결과물 중엔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오디오-비주얼 크리틱, 리서치 아트 등, 내러티브 작품들보다 편수가 적을 뿐, 그 다양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작품들이 있다.

하지만 미콘이 제공하는 VOD 서비스 페이지를 보면, ‘카테고리’란은 ‘일반단편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멀티미디어’, 이상 다섯 가지 하위 메뉴로 미콘에 등록된 작품을 분류한다. ‘일반단편영화’는 무엇인가? 단편 애니메이션이나 단편 다큐멘터리는 ‘단편영화’가 아니란 말인가? ‘일반’의 기준은 무엇인가?

 

‘장르별보기’란의 하위 메뉴 역시 ‘카테고리’란과 다를 바 없이 분류의 기준이 불명확하다. 이 란은 작품들을 ‘Experimental’, ‘Melo drama’, ‘Drama’, ‘Comedy’, ‘SF’, ‘Action’, ‘Fantasy’, ‘Horror, thriller’ 등 여덟 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Melo drama’와 ‘Drama’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런 식의 카테고리 분류법은 ‘왓챠’같은 영화 추천 서비스가 영화 장르를 명확한 기준 없이 ‘코미디’, ‘스릴러’,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으로 분류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렇게 무분별한 기준으로 작품을 분류하는 것보다, 미콘에서 말하는 ‘다양성’이라는 것이, 통상적으로 영화 추천 서비스나 포털 사이트의 영화 데이터베이스에서 장르를 구분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실험적이고 ‘융합’을 구현하고자 하는 작품이 있다면, 이러한 ‘좁은’ 의미의 장르 구분법을 기준으로 두는 미콘에 배급을 맡기는 건 무리다. 제대로 배급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 또는 비디오 아트와 같은 작품을 출품할 수 있는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다양한 영화제가 있지만, 미콘에서 주로 배급을 진행하는 영화제의 범위는 해외 유명 영화제나 주로 내러티브 영화를 취급하는 국내 영화제에 국한되어 있다. 우리 학교 신문 제261호에 실린 한대호(영상원 영상이론과)의 칼럼 <우리의 극장은 신기루인가>에서 한 씨는 “2015년 한 영화제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다, 본교 배급하는 작품 리스트를 수급받은 바 있는데, 실험영화와 아방가르드를 주로 다루는 영화제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내러티브 영화들이 배급되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배급이 정말로 효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미콘은 학생들에게 외부 배급사가 아닌 학교 부설기관인 미콘에 작품을 배급하길 종용해왔고, 미콘이 배급업무를 진행하는 건 학생들을 위해서다. 하지만 다양성이 결여된 미콘의 배급 방향은 학생들이 외부 배급사를 찾거나 개별출품을 진행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사실 이런 다양성 결여의 근원적 이유는 미콘이 아니라 영상원 커리큘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영상원 학생들은 예술학교에 다니고 있지, 영상제작전문인력양성소에 다니고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영화과 수업은 대부분 실습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실습의 일환은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워크샵’이다. ‘내러티브 워크샵’이든 ‘졸업작품 워크샵’이든 영화과의 ‘워크샵’ 수업 수강생들은 내러티브 단편영화를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영상원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은 과는 영화과이고, 자연적으로 미콘에 등록되는 작품 중 영화과 학생들의 내러티브 단편영화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이에 미콘 역시 영화과의 내러티브 작품을 중점으로 배급하고 있으며, 미콘 홈페이지의 ‘초청 및 수상’란에 쓰인 영화는 대부분 영화과의 워크샵 과정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이렇게 편향된 성향을 띠는 미콘 홈페이지의 상단엔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경험해보세요!”라는 무력한 문장이 적혀있다.

 

미콘 양승무 센터장은 ‘미디어콘텐츠센터 운영 관련 소명 자료’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첨단 분야와의 융합 콘텐츠 제작에 영상원 학생들의 참여가 점차 활성화 된다면 연구 교육 실습 효과도 기대”된다고 누리 게시판에 쓴 바 있다. 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가. 현재 미콘에서는 다양한 작품을 제대로 분류, 배급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학생으로서 미콘은 물론이고 학교 전반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신뢰도 하기 어렵다. “세계를 품고, 차이를 넘어, 미래를 여는” 예술학교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연지원

영상원 졸업예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