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의 기억

1.
We whine when we don’t have a boyfriend, and we whine when weo d.
― Sex and the City Season 3 Episode 7: “Drama Queens”

 

2.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것 즉,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른 일들은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든 점에서 초심자인 젊은이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을 배워야 하지요. 전존재로서, 전심 전력으로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로 치닫는 마음으로 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

 

3.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 황지우, 「뼈아픈 후회」,『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부분.

 

4.
바빌론의 탑은 무너졌다. ‘있으라’ 하니 ‘있었던’ 창세기의 언어가 가진 종교적/주술적 신비는 사라졌다. 언어는 결국 무능력했고, ‘너’에 대해서 말하려는 시도는 실패가 예정되었다. 이해는 오해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았고, ‘나’의 말과 ‘너’의 말이 다르기에 ‘무언가’를 말하는 것은 하나의 소음을 만들어내는 일에 불과했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무언가’의 언저리만을 지시하는 것 뿐이다. 이 같은 부재의 자리에서 시작한언어의 소음은 ‘너’의 현장부재증명(alibai)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너’가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어딘가’에는 네가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희망으로 역전된다. 이처럼 불투명한 공백에서 ‘너’의 존재를 더듬어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5.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을 것을 사간다
유리와 밀을 절반씩 빻아 만든 빵

 

― 진은영, 「오필리어」, 『훔쳐가는 노래』.

 

6.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역설이 사랑보다 더 분명한 경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 이의를 달기 어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익사하지 않은 채 지속되는 사랑은, 없다. 여기 익사한 사랑의 대변자 오필리아가 있다. “흰 종이배”와 “붉은 물”의 처연한 대비가 모든 사랑에 불가피한 결여의 심연을 드러낸다.
이 시는 사랑의 기대가 영원히 충족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그 쓰라린 결여를 견디는 고통스러운 상태를 보여준다. 사랑의 기억을 안고 익사한 뜨거웠던 심장들은 얼마나 많을까. 바닷가 모래 위의 무수한 구멍에서 시인은 익사한 사랑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 눈물 젖은 점자를 더듬는 “어느 눈먼 자” 역시 무명無明의 사랑 속을 헤매고 있을 터이다.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저 무수한 사람들은 또 누구인가? 사랑을 잃었거나 놓아 보낸 저들 역시 결핍감으로 주린 배를 채우려 한다. 그들이 사 가는 “유리와 밀을 절반씩 빻아 만든 빵”은 상처를 안고 그래도 살아가야만 하는 삶이다. 사랑의허기를 안은 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누구나 오필리아가 내미는 이 쓰라린 빵을 받아먹어야만 한다. 빵에 섞여 고통스럽게 삼켜야 하는 유릿가루는 사랑의 결여, 그 부재의 존재를 끊임 없이 각성시킨다. 유릿가루가 두려워 이 빵을 피해야 할까? 사랑은 우리의 삶에서 빵처럼 불가결한, 일용할 양식인 것을. 오필리아가 내민 빵을 받아든 우리 모두는 사랑의 기억에 목마른 자들이다.”

 

― 이혜원, 「존재의 잔상에 대한 애착」, 『현대문학』, 2009년 6월호.

 

7.
여름이 오고 장마가 시작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너의 집 앞, 하천 둑을 따라 함께 걷고 있었다. 너는 문득말했다. “우리는 모두 스무 살 병을 앓고 있다”고. 그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는 낙엽만 굴러도 웃는다던데, 너와 나는 언제나 불안해 할 뿐이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을 것이다. 다만 그 말을 듣고 나는 담배를 한 대 태웠고, 언제나 담배를 끊으라던 너는 구박 대신 담배는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 강 위에 놓인 철교 위로 KTX 열차가 지나갔다. 너는 열차가 총 열아홉 칸이라 했고, 난 스무 칸이라고 했다. 어쩌면 너는 열일곱 칸이나 스물두 칸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나도 열여덟 칸이라고 했을 수도 있고 스물한 칸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날 네가 센 열차의 칸 수와 내가 센 것 사이에는 딱 하나만큼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그해 겨울은 눈이 참 많이 왔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진 않았지만, 이미 눈은 수북이 쌓여있었다. 너는 대학생이 될 예정이었고, 나는 자퇴서를 내고 왔다. 너와 나는 만나서 트리를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나무를 살 돈은 없었다. 대신 장식만 사서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무를 꾸미기로 했다. 너는 너의 집 앞 나무를 꾸미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다음 날 아침, 망가지고 흉한 몰골로서 있을 트리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너와 난, 옆 단지를 찾아가 개중 사람 키만 하고 가지가 예쁘게 뻗어 있던 침엽수를 골라 문구점에서 사 온 장식품들을 걸었다. 트리 옆에는 쌓인눈을 뭉쳐 조그마한 눈사람도 세웠다. 다음날, 너에게서 온 문자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 아파트 경비실에서, 너와 내가 만든 트리에 감사하다고 팻말을 걸어 놓은 사진이었다.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젠 너도, 그리고 나도 스무 살이 아니다. 너와 나는 인칭대명사 ‘너’를 고유명사 ‘너’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결국, 우리는 ‘우리’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그 사이 너는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너와 내가 다시 만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날 서로 마주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너의 스무 살 병은 끝났는지.”

 

(주동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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