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제국’과 싸우는 ‘반올림’, 9년의 기록

전자산업 노동자 직업병, 제보된 피해자만 300명 이상….

삼성은 여전히 묵묵부답

 

 

비어 있는 삼성전자의 자리
비어 있는 삼성전자의 자리

 

“우리의 장기는?” “장기전!”

4월 22일 강남역 8번 출구 앞, 우비를 입은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이하 ‘반올림’] 노숙농성이 벌써 200일에 접어들었다. 농성장은 예쁘고 아늑했다. 문화연대 신유아 활동가의 아이디어였다는 솟대와 고무신 꽃밭이 대로변을 향해 있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종종 파는 꽃이냐며 농성장 지킴이들에게 꽃의 가격을 묻기도 한다고 했다. 농성장 주변에는 삼성에서 세운 철골 구조물이 바리케이드처럼 솟아 있었다. 그곳에서 이종란 상임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이 기괴한 철골 구조물에 달린 CCTV는 우리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삼성은 스스로 일류 회사라 하면서 어떻게 입만 열었다 하면 거짓말입니까”

2007년 3월 6일,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故 황유미 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故황유미 씨는 입사 후 1년 8개월째가 되던 2005년 6월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故 이숙영 씨 역시 2006년 7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은 한 달 후 사망했다. 당시 삼성전자 측은 잘못을 극구 부인하며 그들의 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의 노력으로 2007년 11월 20일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가 소집되었다. 2010년 1월 황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직업병 피해자 4명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인정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 측은 대형 로펌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했으나 2011년 6월 23일 서울 행정법원에서 故 황유미 씨와 故 이숙영 씨는 산재 사망을 ‘인정’받았다. 노동자가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사망했는데 산업재해를 인정받아야 하는 사실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러나 삼성은 반성의 기미조차 없었다. 노동자이기 이전에 ‘사람’이 죽었는데, 오히려 당당하게 기자들을 공장에 초청하여 프레스 투어를 갖고 피해자와 피해자 유가족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가 의뢰한 미국 인바이런(산업안전 컨설팅 전문 업체)의 작업환경 측정 연구는 철저하게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진행됐다. 인바이런은 “발암물질 노출과 백혈병 발병 사이의 상관이 없다”고 발표했고 삼성전자는 “객관성과 투명성이 보장된 조사”라고 강조하며 대응했으나 정작 연구 자료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2012년 2월 6일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발표한 ‘반도체 제조 사업장 정밀환경평가 연구’는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백혈병 유발 발암 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등이 극미량 제2 부산물로 발생하고 폐암 유발인자로 알려진 비소도 노출 기준을 초과해 발생”한다는 것을 입증시켰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위해 일해야 할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는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이름뿐인 산업 재해 보험

 

황상기 씨와 삼성의 CCTV
황상기 씨와 삼성의 CCTV

 

반올림에 따르면 전년도 기준 전자산업 분야 직업병 피해 제보자는 362명에 달한다. 삼성(전자산업)계열사는 총 293명(106명 사망), 하이닉스·QTS·LG전자·아남반도체 등 비 삼성 계열사 총 69명(24명 사망)으로 총 362명(130명 사망)이다. 그러나 이들 중 산업 재해[이하 “산재”]로 인정을 받은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산재 인정은 제도적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만들어졌다. 피해자가 업무환경의 유해성, 업무상 질병과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겨우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 1996년부터 기흥 공장에서 근무했던 한혜경 씨는 현재까지 뇌종양 투병 중이나 “납 등 유해 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뇌종양을 재직 중 업무로 인한 것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런 억지 판결로 1997년 입사해 2004년부터 백혈병 투병, 2005년 사망한 故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씨,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고 백혈병 투병 중인 김은경 씨,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고 악성림프종 투병 중인 송창호 씨 등 수많은 피해자 역시 재판부로부터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로 패소했다. 의학 전공자도 아니고 일반인이 과연 “업무상 질병과의 의학적 인과관계”를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입증하더라도 재판부 측에서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다.

 

“사과는 진심으로, 보상은 투명하게, 예방은 제대로”

현재 반올림에서 요구하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 그러나 가해자 측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언론을 장악하고 마치 사과와 보상이 순조롭게 이뤄졌다며 피해자와 피해유가족을 보상금에 눈먼 사람들로 둔갑시켜 놓았다. 삼성의 ‘반올림 물어뜯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이것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대하는 정부의 모습과 놀랍게도 닮아 있다.  포털 사이트만 해도 여전히 피해자와 피해자유가족, 반올림 활동가들을 거짓 근거로 비난하는 기사가 난무하다.

물론 삼성 측에서는 2014년 실제로 공식 사과를 했다. 2012년 김성희(영상원 애니메이션과 졸업) 만화가의 「먼지 없는 방」, 최아름(영상원 영화과 졸업) 감독의 <영아>, 김수박 만화가의 「사람 냄새」가 각각 출간 및 개봉했고 2014년 <또 하나의 약속>, <탐욕의 제국> 등 삼성전자의 만행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면서, 삼성 측은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듯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백혈병 등 난치병에 걸려 투병하거나 사망한 직원들과 가족의 어려움에 대해 소홀한 부분이 있었으며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권 부회장은 “어려움을 겪은 당사자, 가족 등과 상의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가 구성되도록 중재기구에서 보상기준과 대상 등 필요한 내용을 정하면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조정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삼성은 아예 독자적인 보상위원회를 발족해 임의로 보상을 진행했다. ‘보상금 및 예방, 연구 활동’ 등의 명목으로 쓰일 1000억 원을 회사 측이 아닌 사내 기금으로 조성한다고 밝혔으며, 조정위원회에서 권고안으로 내놓은 보상 질병 12개 항목 중 ‘유산과 불임’ 군은 제외하기도 했다. 또 1996년 1월 1일 전 퇴직한 피해자는 보상에서 제외했고 유방암, 뇌종양,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의 잠복 기간을 조정위원회에서 설정한 14년이 아닌 10년으로 줄였다. 이외에도 사망위로금과 암 발병자 지원금액 등 회사가 이미 지급했다는 금액은 차감했으며 근무 당시와 현재의 임금 인상률, 물가 상승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보상액을 책정했다.

이처럼 공정성도, 투명성도 없이 독자적으로 진행되는 보상 과정에는 ‘피해자’가 배제되어 있었다. ‘선심 쓴다’는 식의 일부 보상은 절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앞으로의 피해를 예방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 없었다.

 

눈 감고 귀 막은 삼성, 변함없는 소나무 행보

올해 3월 31일에 진행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100분 토론회’에도 삼성 측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농성장 지킴이들은 우스갯소리로 “오히려 오는 게 신기한 것”이라며 “대화를 수없이 시도했지만, 메일을 받지 못했다느니 하는 핑계로 꾸준히 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토론회 당시 패널로 참석한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는 제보되지 않은 피해자가 무수하다는 것에 위험성을 제기하며 “삼성 백혈병 사건을 참사나 재난으로 부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한 기업의 살인 행위이자 명백한 인재다. 그런데 기업이나 정부에서 이 인재를 대하는 태도는 이상하기 그지없다.

 

삼성 측과 삼성 출입 언론들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를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으며 삼성에서 참사를 대하는 태도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2013년 불화산소 누출 당시 삼성은 7시간 이상 신고하지 않았다. 이는 재작년 정부의 사후대처와 거울처럼 닮았다. 더 앞서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당시에도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삼성 예인선단은 사건 직후 항해일지부터 조작했으며, 대형기름유출사고 세계 최소 피해보상액 지급을 기록하기도 했다. 토론회에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로 참석했던 방송영상과 전규찬 교수는 이에 대해 “죽음의 현장을 은폐해 온 자본의 오래된 위기관리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강남역 8번 출구 앞’을 지키는 사람들

 

 

농성장 안의 풍경
농성장 안의 풍경

 

강남역은 참 이상한 곳이다. 한 국가의 지하철역 안에 대기업 건물과 이어지는 출입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가해자는 피해자의 얼굴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않고 평화롭게 그들만의 제국을 드나든다. 고작 역 밖으로 나가 건물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길고 춥고 덥고 아까웠나. 그 기나긴 시간 동안 8번 출구 앞에는 반올림이 있었다. 비닐 천막 하나에 의지해 길고 춥고 더운 밤을 지새웠다.

 

투쟁은 6년째에 접어들고, 노숙 농성은 200일이 지나간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강남역 8번 출구 앞은 단순한 농성장이 아니다. 그곳엔 이야기가 있고, 꽃밭이 있고, 영화가 있고, 노래가 있다. 지금의 반올림은 2007년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시작으로 발전해왔다. 반올림의 외침이 삼성전자와의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산업재해 진상규명과 보상 쟁취 △무노조경영으로 신음하는 삼성노동자들의 노동3권 쟁취 △건강권 등 ‘노동기본권’ 쟁취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문제점 폭로 △아시아, 전자산업 노동자, 국제 연대 활동 등 노동자 인권에 대한 다양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종란 상임활동가는 “어려워하지 말고 강남역 8번 출구 앞 반올림 농성장을 찾아주면 고맙겠다.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한 명 두 명 늘어나고, 이 문제를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는 것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주요 방송 매체에서 이런 얘기를 은폐하려고만 하는데, 시민과 학생들이 나서 삼성을 주지시키는 것만이 삼성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힘을 많이 주시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반올림 농성장은 단순히 소리치고, 외치는 시위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외쳐도 못 듣는 삼성을 위해 반올림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농성을 이어간다. 이어 말하기, 토론회, 사진전, 노래와 재즈 공연 등으로 가득한 이 농성장은 언제나 생생하고 힘이 넘친다.

 

삼성이 대화를 받아들일 때까지 반올림의 노숙농성은 이어질 것이다. 삼성전자 엔지니어로 10년을 일하다 그만둔 이상수 씨는 이 긴 투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반올림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이 싸움이 분명히 지는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는 분들 덕에 이제는 가끔은 이기는 싸움이 되었다. 가끔씩 이기는 것은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이렇게 가끔씩 이기다 보면 삼성도 언젠가는 변하지 않을까.”

 

 

백석 기자

novelp1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