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히도 전망은 전혀 밝지 않다

_영화산업내 젠더 불균형에 관하여…

 

지난 4월 25일 영국의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호주의 매체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헐리우드 배우들의 젠더간 임금격차를 언급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이런 불균형 문제가 다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이지만,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불균형이 가능한지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인터뷰는 영미권을 포함한 전세계 주요 일간지로 퍼져 나가면서 이슈가 되었는데,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영국영화작가협회(Directors UK)는 5월 4일 젠더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는다. 아래 내용은 보고서 〈CUT OUT OF THE PICTURE〉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고 분량에 맞게 다듬은 것이다. 보고서는 무료로 배포되었고 검색을 하면 쉽게 전문을 찾을 수 있다.

 

01_ 보고서 CUT OUT OF THE PICTURE의 요약
01_ 보고서 CUT OUT OF THE PICTURE의 요약

 

보고서에 따르면 일단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젠더 비율은 50:50에 가깝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신뢰를 쌓고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순간부터 이 균형 잡힌 비율에서 여성의 지분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통계를 보며 젠더 불균형의 심각성을 살펴보자.

보고서는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제작된 2591편의 영국 영화를 대상으로 삼는다. 이 10년동안 만들어진 영화중 약 13.6%만이 여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였다. 더 문제적인 것은 10년의 기간 동안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다. 2005년에 11.3%였던 여성 감독 비율은 2014년에 여전히 11.9%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여성감독은 경력을 쌓아 나가는데도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다. 평균적으로 여성 연출자가 첫 작품을 연출한 다음 두 번째 작품을 연출하는 비율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데, 이는 세 번째, 네 번째 작품으로 갈수록 더욱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여성 연출자가 두 번째 영화를 만들게 되는 비율인 12.5%는 남성연출자보다 10%가까이 낮다. 더 나아가 영화를 세 편 이상 연출한 남성 연출자가 네 번째 작품을 맡게 되는 비율은 50%에 가까운데 반해 여성의 경우는 12%에 불과하다. 예산이 많아질수록 여성이 연출을 맡는 비율이 적어지기도 한다. 여성 연출자 다섯 명 중 한 명은 저예산 영화를 연출한다, 그리고 오직 3.3%의 여성 연출자만이 예산이 많이 투입된 영화를 연출한 경험이 있다. 이는 남성에 비해 한참 낮은 비율이다. 그리고 여성 연출자가 연출을 맡는다고 하더라도 다큐멘터리, 음악영화, 로맨스 영화와 같은 장르에 편중되어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상업영화제작이 아닌 공공 제작지원(Public Funding)에서도 여성연출자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선정되는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영국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20%정도는 공공제작지원을 받아 만들어지는데, 공공제작지원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보다 여성 감독이 연출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 비율도 2007년 32.9%에서 2014년 17.0%로 눈에 띄게 줄어들어버린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연출뿐만 아니라 영화산업 관련 종사자나 영화 제작진 안에서도 여성의 비율은 상당히 떨어진다. 주요 창작 관련 직군(Key Creative Role)을 중심으로 보자면, 메이크업-의상 디자이너와 캐스팅 담당자, 오직 이 두 역할에서만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높았고 그 이외의 직군에서 여성의 비율은 6%에서 31%사이에 머물러 있었다. 이 비율은 연출자들 사이의 젠더 불균형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이런 창작 관련 직군에 고용된 여성들은 고참급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줄어드는 양상이 보인다. 영화산업이나 영화제작진 안에서 여성의 비율도 지난 10년 동안 정체되어있는 상태이다. 10년 동안 영화산업은 크게 성장했지만 영화계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이나 경력 개발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 불평등의 원인을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한다. 첫째는 이런 젠더 불균형을 해소할 어떠한 규정도 마련되어있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보호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미 젠더 불균형에 적응해버려서 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초래할 변화의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변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점진적인 개혁이 필요한데, 영화산업은 항상 단기성과주의(short-termism)로 움직이기 때문에 시스템이 고착화 되었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이다. 결과적으로 젠더 불균형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영화산업은 계속 단기성과주의로 굴러가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여성 노동자는 점점 외부로 밀려나게 되면서 고참급에서는 남성들만 남게 되고, 그 남성들이 선입견에 의해 남성 지원자만 고용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고 보고서는 이야기한다.

보고서는 이 악순환을 타개할 구체적인 방안을 세 단계로 나눠 제시한다. 첫 번째는 2020년까지 공공제작지원 프로젝트의 연출자 젠더 비율을 50:50으로 맞출 것을 강제화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출자뿐만 아니라, 주요 창작 직군을 포함한 모든 스태프의 성별을 명시하게 해서 그에 따라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프로젝트는 공모에서 불이익을 주는 시스템까지 제안하고 있다. 두 번째는 영화 세재감면혜택(Film Tax Relief: 이하 FTR)의 전면 개정이다. FTR은 영국 영화산업 전반에 규모와 장르를 불문하고 적용되는 가장 막강한 변화기재이다. 보고서는 FTR규정에 다양성(diversity)항목을 추가하여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다양성 규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영화산업 전체의 젠더 불평등을 조사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위에 제시된 공공제작지원이나 법 개정과 같은 방안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캠페인을 진행하자고 이야기한다.

 

02_ 2012년에 작성된 영화 스태프의 직무별, 성별 현황
02_ 2012년에 작성된 영화 스태프의 직무별, 성별 현황

 

지금까지 영국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에서 2012년에 발간한 〈영화스탭 생계비조사 및 표준임금제 도입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표본으로 조사한 414명의 스태프중 남성은 66% 여성은 34%였다. 부서별로는 의상(85%), 분장(80%)의 여성비율이 가장 높고, 다음으로 미술(56%), 기획(57%)의 순이었다. 반대로 남성의 비율은 조명(90%), 촬영(87%), 녹음(87%)부서에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영국과 마찬가지로 직급으로 보면 가장 높은 퍼스트는 73%, 세컨드는 68%로 남성이 비율이 높은 반면, 하위 직급인 서드와 막내급으로 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높았다. 한국의 경우 영화전공을 포함한 예술대학에서 여성의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영국에 비해서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26일 내놓은 〈2015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보면 한국에선 임금에 있어서도 젠더 간의 격차가 심각하다. 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받는 임금 수준은 남성의 63.8%에 불과하다. 비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제시된 모든 자료를 종합해보면,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은 더 많이 공부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더 적고, 버틸수록 여성은 더 적어지고, 임금까지 더 적게 받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지금이라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연구와 정책 개발이 병행되어야 하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불행히도 전혀 밝지 않다.

 

 

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