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6년 5월 1일

내 생의 가장 불행했던 한 학기

 

“사람들이 여행을 못 가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열정이 부족해서 그래. 열정이 있으면 뭔들 못해? 안 그래?”

아. 탄식이 흘렀다. 이제는 더 이상 수정할 수도 없이 딱 맞게 시간표를 짠 내가 야속했다. 대학 생활 내내 석관동에서 수업을 받은 내가 ‘서초동 캠퍼스 수업 한 번은 들어보고 졸업해야겠다.’고 괜한 의미를 둔 것이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열정’과 ‘노오력’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환상적인 말은, 1박 2일 국내 여행에도 통장 잔고부터 확인하게 되는 나를 참으로 초라하게 만들었다.

유난히 여행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이 강사는 “여자들은 해외 여행 가서 에펠탑 배경으로 셀카 찍어서 단체방에 올리면 여행의 완성”이라는 발언과 “남자들이 그런 짓하면 쌍욕 날아온다.”는 발언으로 세 시간 수업에 지쳐가는 나를 이따금 채찍질하듯 깨워  댔다. 그 강사는 강의 초반부터 내 고개를 자주 갸우뚱거리게 만들더니 학기 중간쯤에 강의 시간에 본인 강의료를 ‘굳이’ 공개하면서 ‘내가 박사학위를 땄는데 너희 한 시간 레슨하는 값보다 못 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난 아직도 이 발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수업의 기말 보고서는 이 강사의 사상을 적극 반영한 결과물임을 차츰 알 수 있었다.

우선 기말 보고서의 주제는 ‘답사’였다. 강의 초반 9월엔 국내와 해외, 답사 장소에 따라 조를 편성한 후 범위에 맞는 공간을 다녀오면 되는 것이었다. 국내 답사 조는 한 학기 동안 조원 모두 5개 범주, 8개 공간을 총 3번에 걸쳐 다녀와야 했다. 1박 2일을 2회로 인정해주긴 했으나 그래도 최소 2번을 6명의 일정에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근 한 달에 걸쳐 일정표를 구성하고 수정해가며 학기 말이 되어서야 어렵게 2회의 답사를 마쳤다. 하지만 해외 답사조의 평가 방식은 사뭇 달랐다. 해외 답사를 선택한 학생들은 그 어떠한 평가의 틀에 구속받지 않고 해외를 다녀온 사실 하나만으로 ‘5개 범주, 8개 공간, 3회의 답사’가 인정되었다. 국내 답사를 다녀온 나는 학기말에 알게 된 평가 방식에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 강사는 기말 보고서 제출 한 주 전에 국내 답사 조에게 1개의 장소 당 한 페이지, 즉 총 8페이지의 답사 소감을 작성해오라고 말했다. 이 역시 해외 답사 조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분량 제시였다. 국내 답사 조에게는 끊임없는 제시와 제안, 강요와 틀이 주어진 반면 해외 답사 조에게는 그것이 모두 ‘자유’라는 단어로 맞바꿈 된 것이다.

의문스러웠던 나는 도대체 ‘왜 국내 답사와 해외 답사의 평가 방식이 이렇게 다르고 그 다른 평가 방식과 보고서 양식을 제출 한 주전에 말해주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강사는 나에게 곡식 한 톨에 영감을 받아 대하소설을 쓴 작가 이야기를 해주며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이 뭐가 어려우냐고 대꾸했고, ‘너의 감수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 ‘나는 쓰는데 너희가 왜 못 쓰느냐’, ‘한예종인데 왜 못 쓰느냐’란 발언으로 나를 한 번 더 경악하게 했다. 또한 다른 학교보다 너희 학교는 분량이 적은 것이라며 딱히 필요 없는 말도 덧붙였다.

아직도 생각하면 몸이 조금 으스스해지는 이유는 그 강사가 강의 초반에 너스레를 떨며 했던 말 때문이다. “너희 대학교 들어가면 꿈꾸던 수업 있지? 이 수업이 너희들이 꿈꿨던 바로 그 수업이야.”

 

장온

졸업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