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16년 5월 1일

예술가로 살아남기?

모호한 메시지보다는 학교의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

 

취업은 우리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조급한 마음을 가져다 주는 문제다. 학교의 입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학교에선 재학생들의 취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취업 진로 상담을 운영했다. 일반 종합대학교나 전문대학교와는 다르게 대개 이미 예술을 업으로 두고 있는 이들이 수학하고 있는 교육 기관으로서 사실 취업을 장려하게끔 한다는 건 고등교육기관의 존재 근거에 대한 의문점을 가져다 주는 일이기도 할 테다. 왜냐하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설치령에는 “고도의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한”이라든가, “체계적인 예술실기교육을 통한 전문예술인의 양성을 위하여”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하는 학교는 재학생들에게 예술이라는 구체적인 업을 약속하고 있지 않나. 학교와 정부의 견해 차가 생기는 것은 분명 세상에 예술가라는 직업은 있으나 한국에서는 예술가가 제 노동자성을 증명할 길이 없는 이유가 크다. 한국에는 예술가가 일정한 수익을 내며 4대 보험 등 기본적 복지 혜택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증명을 대리해 줄 교섭 단체나 기관이 없다.

 

우리 학교 재학생들은 작업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일을 병행하거나 아예 다른 직종으로 취업하는 것이 현실 대부분이다. 본인은 이 학교에 입학할 당시에 문화 기획을 업으로 삼고자 했다. 그렇지만 업계에서 나름 잘 알려진 사무실에서 비정규직으로 잠시 일했을 때, 정규직의 월급을 듣곤 그것이 하나의 가정을 꾸리기에는 한참 부족한 것이라 낙심했다. 본인은 아마 앞으로도 예술 관련 직종의 반경을 오가며 살지 않을까 짐작한다. 하지만 4년의 재학 기간 여러 강의를 듣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실질적으로 ‘경영학’을 공부하게 되는 예술경영 전공의 수업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재학생들은 높은 생활의 질을 누릴 권리와 원하는 예술 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너무도 상냥하여 우리에게 예술이 아닌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학교는 취업 지원을 위한 근거를 가져오고 토크 콘서트의 이름을 붙이는데 꽤 힘겨워 보인다.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기 싫을 때는 어정쩡한 기획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상냥함은 우리에게 필요치 않다. “동정할 거면 돈을 줘.” 1994년에 방송된 「집 없는 아이」에서 나오는 이 대사는 인터넷에서 2~30대 사이에서 유행어로 쓰이기도 했다.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만큼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열악한 상황이다. 사실 많은 이들이 엄청난 무력감을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생활의 질을 높일 준비가 되어있다.

 

경북대학교 등의 종합대학교에서는 외국어나 자격증 시험의 공부를 위한 스터디 그룹을 위한 지원금을 주고, 각종 공모전과 장학금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외국어 능력 시험의 응시비를 지원하는 예도 있다. 학교의 교양 수업을 다양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재학생들이 생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게끔 자립 교육 예산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손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