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얼마 전에 많이 울었다. <또 하나의 약속>(연출 김태윤)을 봤다. 나는 이 영화의 예고편을 아주 얼핏 보았고, 주된 내용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은 여성의 이야기이며,중간에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에서 딸이 죽어가는 장면’이 나온다는 사실만 알고 영화관에 갔었다. 물론 삼성(과 그 일가)의 어떤 악행이랄까 행태에 대해서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누가 출연하는지, 감독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다만 많은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또한 수용자의 감정을 몰아가면서 억지 눈물을 짜내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의외로 괜찮다”는 이야기도 몇 군데서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클리셰덩어리로 시작했다. 강원도 사투리를 쓰며 “무식하고 못배웠”지만 사람 좋은 택시기사 아저씨가 가장으로 나온다. (영화 맨 처음 나오는, 강원도 울산바위의 유래에 대해 손님에게 매우 친절히 설명하는 그의 연기는 조금 어색하다.) 뼈빠지게 일하지만 웃음은 잃지 않는 어머니가 나온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취직한 딸이 나온다. 날라리 같은 남동생도 빠지지 않는다. 이것은 전형적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어떤 가족 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는 이러한가족의 모습을 잠깐씩 비춰주고, 낡은 거실 식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딸의 반도체 공장 취직을 축하하며 아버지가 딸에게 술을 한잔 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즐거움과 웃음으로 가득찬, 화목한 4인 가정. 내가 조금씩 울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 화목한, 슬픔이라고는 한 조각도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 어떻게 변할지 애초에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깐 이 영화는 사실, 시작하면서 동시에 거기서 끝난다. 왜냐하면 그 화목한 가정은 곧바로 무너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딸이 살아 있는 동안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할애되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이미 알고 있다. 딸은 회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었지만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 신청은 난항을 겪을 것이고, 회사는 책임을 부정하거나 가족을 회유하거나 온갖 방해공작을 시도할 것이며, 아버지는 계속해서 싸우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예쁘고 젊은 노무사가 붙는다. 의협심은 있지만 가끔 타협안도 제시하는 노동법 전문 변호사도 등장한다. 어떤 노동자는 회사를 옹호하거나 회사를 위해 거짓말을 하고, 어떤 노동자는 진실을 증언하며, 어떤 노동자는 자신이 이미 다 살아버린 삶 때문에 싸움에 참여하기를 주저한다. 여기엔 사실과 허구가 적절히 뒤섞여 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어쩌면, (연출이나 연기나 캐스팅 등의 영화적 기법을 통한) 전형적 선악 대립구도를 피하고 이렇게 많은 캐릭터가 어떻게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사는지 보여주는 데에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김태윤 감독도 지난 6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실화가 충분히 슬프니―이 말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굳이 무언가 더하려 하진 않았”(첨언은 인용자)으며, “시나리오 작법상 (이런 소재를 다룰 때) 가장 쉬운 건 절대악을 만드는 것”인데 영화가 “손쉽게 결론을 대신 내려주는 걸 경계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들 몇몇은 조금씩 힘을 모아 싸우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이기거나 누군가는 진다. 누군가는 한 번 이겼지만 아직 몇 번 더 이겨야 한다. 누군가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애초에 포기했다. 이미 진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그래도 이겨 보기 위해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나는 이렇게 뻔히 다 알고 있는 얘기가 흘러가는 내내 울었다.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 다시는 그때로, 그러니깐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화목한 가정으로 그들이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계속해서 상기됐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들의 지난한 싸움을 지켜보는 게 뭔가 계속 서글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회사가 책임을 인정한들, 산재보험 신청이 받아들여진다 한들, 어쨌든 병으로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그들을 죽였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삼성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되진 않는다. 아마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투쟁을 재차 다짐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삼성의 악행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에서 희망이란 단어를 찾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냥 그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어떤 이들은 노무사 역할로 나온 배우 김규리의 미모를 상찬할 것이다.

그들의 반응과 내 반응은 어떤 부분에선 같고 어떤 부분에선 갈린다. 모두에겐 각자의 삶과 방식이 있으니, 그 겹치는 부분과 갈리는 부분을 때로 인정하거나 때로 논쟁하며 살아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 하나는, 아마 이 영화는 나에게 다른 어떤 영화로서도 아니고, 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영화로서 기억되리라는 것이다. 1심에서 승소하고 고향에 돌아와 울산바위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이고, 실제인물들의 자료 사진과 진행 상황을 설명하는 몇 줄의 문장이 나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 담담한 결말의 울림은 대단했다고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제작두레에 참여한 사람들의 기나긴 명단이 제일 먼저 나오는 크레딧이 올라간다. 크레딧이 다 올라가는 동안 울음이 멈추질 않았다. 사실 그날 밤은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울어 본 날이었다.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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