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가 형식이 될 때

소셜 네트워크를 시각화한 예술작품들

스몰 월드 / 그래픽 디자이너〉· 〈아트 솔라리스

 

소원영 작가의 〈스몰 월드 - 그래픽 디자이너〉 ⓒ한혜란
소원영 작가의 〈스몰 월드 – 그래픽 디자이너〉 ⓒ한혜란

 

전시장의 한 쪽에 청색 화면의 컴퓨터 모니터 한 대가 30cm가 채 안되는 낮은 단상위에 놓여있다. 컴퓨터 화면에는 하얀색 노드와 링크로 구성된 불규칙 방사형태의 구조가 표현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이름이 각각의 노드 위편에 입력되어 있다. 모니터에서 네 발자국 정도 뒤에 펼쳐진 두 개의 대형 화이트 스크린에는 모니터에 표현된 불규칙 방사형 구조의 일부가 무빙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에서 5월 29일까지 개최되는 그래픽 디자인 2005~2015, 서울전에서 선보이고 있는 소원영 작가의 스몰 월드 / 그래픽 디자이너 작업에 대한 묘사다.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의 〈아트 솔라리스〉 ⓒ한혜란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의 〈아트 솔라리스〉 ⓒ한혜란

 

웹 사이트 주소(www.artsolaris.org)를 입력하고 엔터를 누르자 검은 노트북 화면 한가운데서 하얀 노드들과 노드를 연결한 선들이 점점 확장된다. 이 원형 파열형 구조는 마치 거대한 별자리를 연상시키며 화면 가득 자리 잡는다. 이는 김민선, 최문선 부부가 결성한 미디어 아트 그룹 ‘뮌’의 아트 솔라리스(art solaris)라는 작품이다.

 

노드와 링크 형식의 유래

 

이들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시각적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점(node)과 선(link)들로 구성된 비정형의 방사형태 구조가 그것이다. 이 형태의 모태를 찾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루마니아 출신의 심리학자 제이콥 모레노(Jacob Moreno)의 연구가 나타난다. 의학도 출신인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프로이트와 대립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의 관심은 집단 치료의 힘에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이나 과거보다는 현재 환자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분석을 통해 치료법을 이끌어 내고자 한 것이다. 그는 대인 관계 이론을 더 연구하기 위해 36세에 뉴욕으로 건너갔고, 7년 후 ‘소시오그램’을 의료 학자들이 모인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다. 이 소시오그램은 무형의 네트워크를 측정할 수 있게 만드는 시각적 결과물로 인정받으며 소시오매트리(사회측정법)의 출발점이 된다. 네트워크를 시각화함으로써 측정하고자 하는 사회적 요소에 대해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의 작업이 1933년 “신지리학의 감정 지도 : 인간관계의 심리적 현황을 보여주는 도표”라는 제목의 기사로 뉴욕타임즈에 실리게 되었을 때 뉴욕타임즈의 기자는 모레노의 작업에 심리 지리학이라는 재밌는 명칭을 붙이기까지 한다.

 

모레노의 소시오그램은 네트워크를 시각화하려는 작업들의 스키마가 되었다. 이 형식이 기술의 발전과 넘쳐나는 데이터의 힘을 입게 된다. 이제 종이와 펜이 아닌 Arduino, Processing, Oculus Rift, MaxMSP/Jitter등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알고리즘을 만들어 다양한 분야의 네트워크를 시각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중 Processing은 M.I.T Media Lab의 Casey Reas와 Ben Fry가 만든 무료 오픈소스 프로그래밍 언어다. 수준 높은 코드들이 오픈소스로 공유되고 있고, 프로그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 되어있어 많은 작가들이 사용하고 있다.

 

 

제이콥 모레노의 소시오그램 ⓒNewyork Times
제이콥 모레노의 소시오그램 ⓒNewyork Times

 

형식에 담긴 의미
두 작품은 모두 눈으로 보는 세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이들은 특정 네트워크를 시각화한다. 인터넷 안과 밖에서 공유되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과 그들이 이루고 있는 특정 관계를 시각화하여 드러내는 이 작업에는 작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질문에 담겨있다. 우리가 전시장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시각화한 작품을 마주하거나, 컴퓨터에서 웹사이트 형태로 마주했을 때 작가의 의도는 어떤 데이터를 선별하여 수집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여 노드와 링크에 배치 했는지에서 읽을 수 있다. 또 이것이 시각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양상과 주제와의 연관성이나 전체 구성요소들을 심미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앞서 묘사했던 소원영 작가의 스몰 월드 / 그래픽 디자이너는 지난 10여 년간 서울에서 활동한 일부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주변 협업자들의 네트워크를 그려낸다. 디자이너 홈페이지,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SNS 등에서 끌어온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네트워크 지도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그들의 협업자, 의뢰인, 조력자는 노드(node)로 표현된다. 이 노드들은 디자인 작업을 함께하거나 전시, 행사, 취재 등을 계기로 만난 사실, 또는 같은 곳에서 일한 사실을 매개로 연결(link)된다. 디자이너에게는 인간관계 네트워크가 생존의 조건이 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그 예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몇몇 ‘허브’(hub) 디자이너가 크고 작은 협업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규모가 큰 조직이나 사업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거나 대형 프로젝트에 접근하기 어려운 소규모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들에는 이렇게 비공식적이고 느슨한 인간관계 네트워크가 중요한 생존 조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부부인 최문선, 김민선 작가가 결성한 2인조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뮌의 아트 솔라리스는 임의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술계의 유동적인 일면을 시각화 한다. 작업을 위해 856명의 미술인, 전시 809개가 분석 대상이 됐다. △큐레이터 △작가 △기타 미술계 인사의 3그룹을 각각 붉은색·보라색·초록색 노드로 구분, 배치하였다. 이들 간의 링크는 함께 참여한 전시 유무로 생성된다. 전시 횟수가 많아질수록 선은 굵어지고 짧아진다. 전시는 2010년 이후 공공 자금이 들어간 국공립 미술관 전시와 비엔날레, 사회 공헌적 성격이 있는 기업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 전시로 제한했다. 뮌은 22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사적 영역의 미술이 아닌 공공성에만 주목하고자 했다”며 “공적 자금이 투입되는 전시의 경우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품에서 눈에 띄게 크기가 큰 노드들과 짧고 굵은 선들을 들여다보면 △김선정(큐레이터) △ 김장언(큐레이터) △김홍희(큐레이터) △박찬경(작가) △배영환(작가) △안규철(작가) △임민욱(작가) △정연두(작가) 등의 인물들이 긴밀하게 엮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트솔라리스는 검색 기능도 갖추고 있는데, 우리 학교와 관련된 인물로는 강정석, 김동규, 박보나, 문혜진, 현시원 등 총 40여명이 검색된다. 뮌은 작품에 등장하는 노드에 편견과 오류가 반영될 수 있음을 인정하며 지속적으로 결여와 누락을 개선하고 있다.

 

제이콥 모레노는 소시오그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도표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 네트워크를 파악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구별하고 싶었던 전체의 특정 부분이나 일부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에게 소시오그램은 ‘탐색을 위한 기법’이었다. 그는 이것이 하나의 스키마로써 특정 커뮤니티를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집단의 상호작용을 ‘봄’으로써 기존에 보지 못했을 때와 다른 어떠한 변화가 만들어지고 담론화 될 수 있을까? 노드와 링크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식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Note

New York Times “Emotions Mapped by New Geography”.
Moreno, Who Shall Survive?, 95-96.

 

한혜란 기자
arthr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