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phaGo는 이론가가 될 수 있을까?

 레프 마노비치의 ‘민주적인 예술사를 위한 선언’을 읽고

 

지금 여기 변하고 있는 것들은 전 세계적인 거시적 흐름의 인가? 아니면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인가? 신문, 방송, SNS등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지만 정말 이것으로 충분한가? 익숙한 ‘한국어 사용권’ 밖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특히 우리의 관심사인 ‘예술’주변에서 어떤 것들이 논의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으로서 시작한 이 기획은 최근에 생산된 한국어권 밖의 작가, 비평가, 학자의 글을 전문 번역하거나, 일부 번역하고 코멘터리를 붙이는 형식으로 연재된다. 첫 주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예술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지금부터 비로소 우리는 엄청난 수의 이미지를 가로지르며 나타나는 다양한 패턴들과, 또 그 속에서 수백만의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더 작은 패턴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비로소 우리는 콘텐츠와, 스타일 그리고 문화적 감수성의 환경이 얼마나 짧은 주기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비로소 우리는 전 세계의 수많은 시각적 하위문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비로소 우리는 차입과 순환, 복사와 변이, 동일성과 차이의 패턴들에 대해 믿을만한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의 전문가적 직관에 의해 진행되던 연구와 달리, 지금부터 비로소 우리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거나 반박하는 것이 가능해 졌다. 말하자면, 지금부터 비로소 예술의 역사, 사진의 역사, 디자인의 역사 그리고 다른 모든 이미지의 역사가 진정 가능해졌다. _ Lev Manovich, Manifesto for Democratic Art

History

 

마노비치가 자신의 글과 함께 올린 이미지. 베를린 박물관.
마노비치가 자신의 글과 함께 올린 이미지. 베를린 박물관.

 

미디어 이론가이자 소프트웨어 이론가인 레프 마노비치는 지난 2월 16일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인 소프트웨어 연구 계획(Software studies initiative)에 ‘민주적인 예술사를 위한 선언문’을 업로드했다. 마노비치는 그의 글에서 기존의 예술사 연구 방법을 “행성의 나머지는 모르고, 오직 자기 주변의 사소한 샘플만 가지고 이론을 발전시키는 생물학자”에 비유하며 한계를 지적한다. 수많은 수집가들이 ‘모던하다고 생각해’ 모은 사진 아카이브들은 너무 많이 남아있어 이제는 평범해 보이는 반면, 수집가들이 ‘평범하다’는 이유로 소장하지 않았던 일상의 사진들은 이제 모두 사라져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수백 수천의 기록되지 않은 예술가들이 무엇을 그렸는지 전혀 알 수 없고, 세계 곳곳에서 찍힌 사진들의 지역적 차이를 분간하기도 어려우며, 특정 시기에 발간된 세계의 모든 잡지나 신문 삽화에 일정한 양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또한 알 수 없다. 이처럼 기존의 예술사는 결국 선택된 소수의 승자만을 기록한 역사이고, 시대를 대변하는 ‘평범함’에서 벗어난 아웃라이어들만의 역사라는 것이다.

마노비치는 기존의 예술사 연구 방법의 한계를 극복할 개념으로 ‘민주적인 예술사’를 제안한다, 아니 글의 제목 그대로 선언한다. 2005년 이후 민중이 만들고 공유한 이미지 ‘전체를’ 연구대상으로 다루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에 적합한 ‘민주적인 미술사’를 연구해야할 시기라고 선언한 것이다.  마노비치의 말을 빌려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수없이 연구되고, 전시되고, 출판된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들 뒤로 잘려나간 수많은 “긴 꼬리”들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된 이미지를 1차 자료로 활용하여 복권시키는 것이 ‘민주적인 예술사’의 기획이다.

가능한 기획이다.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어서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첫째, 만약 ‘민주적인 예술사’ 개념을 받아들여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고자 했을 때 그 결과물은 어떤 형태일 것인가? 지금과 같은 출판물의 형태일 것인가? 아니면 다른 형태도 가능한가? 둘째, 이 작업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단적으로 말해 인공지능이 할 수 있을까?

 

On Broadway Project 홈페이지 캡쳐
On Broadway Project 홈페이지 캡쳐

 

마노비치가 직접 ‘민주적인 예술사’의 구현 방식까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가 이미 답을 내려줬다고생각한다. 아니면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민주적인 예술사’는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구현될 것이다. 왜냐하면 ‘민주적인 예술사’의 개념 자체가 APIs의 환경 아래에서 필터를 설정해 긁어모은 이미지를 1차 자료 형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가 본문에서 ‘민주적인 예술사’의 초기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한 On Broadway ProjectPHOTOTRAILS 모두 소프트웨어 형태로 구현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를 소프트웨어적인 공정을 통해 분류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민주적인 예술사’에서는 이 작업 자체가 개념을 도출하는 이론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결과를 발표할 때, 소프트웨어 형태의 구현은 어차피 자료 수집과 개념 창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 결과물이 나오므로, 그것을 굳이 종이에 인쇄된 출판물의 형태로 전환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수용자는 소프트웨어에 구현된 인터페이스를 통해 감각적으로 개념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민주적인 예술사’는 소프트웨어 형태로 구현되고 업데이트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넷플릭스처럼 구입하는 것이 아닌 구독하는 재화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예술사’를 하려면 예술 연구자도 프로그래밍을 배워야 하나? 마노비치의 대답은 ‘그렇다’ 또는 ‘협업하라’일 것이다. 나는 여기서 두 번째 질문을 하고 싶다. 꼭 이 작업을 인간이 해야 하나? 인공지능이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나는 지금 소프트웨어의 설계가 아닌 이론적 작업, 즉 “개념 도출 작업을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Phototrails 홈페이지 캡쳐
Phototrails 홈페이지 캡쳐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바둑을 두는 인공지능 AlphaGo 관련 글들을 찾아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 믿었던 직관의 영역을 계산능력으로 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아니 직관조차 사실은 계산능력의 심화된 버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계산을 직관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설계된 알파고의 파이프라인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Convolutional Neural Network(CNN)라고 하는 이미지를 겹겹이 쌓아 바둑의 형세판단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다. 이를 아주 단순하게 마노비치의 ‘민주적인 예술사’ 기획에 대입시킨다면, 바둑판의 가로는 이미지가 생성된 지역별로 분류한 값이고 바둑판의 세로는 젠더와 계급, 나이, 인종과 같은 각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질의 값이다. 소프트웨어에 의해 정렬된 이미지들은 각각의 가로-세로 좌표값 위에 쌓여 일종의 형세를 이루게 된다. 이 형세를 이미지로 파악하여 연산을 시작하고 그 결과로 ‘이론적 개념’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이론적 개념은 언어가 아닌 이미지의 형태가 될 것이다.

 

Phototrails 홈페이지 캡쳐
Phototrails 홈페이지 캡쳐

 

참고

Lev Manovich, Manifesto for Democratic Art History

천관율, 바둑 그 이상의 대국, 시사IN

김범수, AlphaGo : AlphaGo Pipeline 헤집기

http://on-broadway.nyc/

http://phototrails.net/

 

 

영준 기자

yjune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