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도서관 자료(책) –『리트, 독일예술가곡 (시와 하나 된 음악)』

 

‘리트’라는 단어는 독일어인데 원래는 단순히 ‘노래, 멜로디’를 가리키지만 특정 음악 장르를 지칭하게 되었지요. 이 장르는 바로 노래와 시의 공통 척도를 찾으려는 바람에 부응하는데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리트는 그 둘의 농밀한 융합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마치 시는 멜로디의 기저를 파고들고 멜로디는 멜로디대로 말 속에 녹아내리는 것 같죠.

롤랑 마뉘엘(Alexis Roland-Manuel, 1891~1966)

 

시대의 변화에 따른 예술 형식의 명멸은 불가피한 일일 것이다.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서구의 대표적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이후 뮤지컬의 등장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우리가 여기서 다룰 가곡 또한 19세기 독일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20세기 이후론 대중가요에 그 자리를 내줬다. 백 년 이백 년 전의 예술을, 오늘날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이러한 예술 장르들을 살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악 예술의 대표격인 오페라와 가곡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와 음악의 관계라는, 예술에 있어 중요한 화두를 문제삼아왔다. 여기서 시는 직접적으론 서정시·서사시 할 때의 특정 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처럼 문학예술의 통칭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결국 시라는, 혹은 ‘내용’ 또는 ‘이야기’(서사)와 음악의 관계에 대한 탐구로 정리될 수 있는 이 두 예술 장르는 2~300년의 시간을 거치며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이러한 문제의식들을 더욱 발전시킨다. 오늘날 TV 드라마 혹은 영화에서 음악이 쓰이는 방식은 이전의 이 예술들이 탐구해온 것들의 적용 내지는 연장선에 있음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극과 음악, 보다 포괄적으론 시와 음악의 관계를 다룸에 있어 이번엔 가곡, 그것도 독일예술가곡에 한정해 얘기해볼까 한다.

백여 페이지를 겨우 넘는 얇은 책이지만 독일가곡의 흐름을 꿰뚫는 이번 저서는 그 글쓴이의 이름 때문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성악에 관심 없는 이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음악은 슈베르트 그리고 독일가곡의 대표격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음악가로서의 면모 외에 또한 저자로서 수많은 음악 관련 저서를 남긴 피셔 디스카우는 그의 리트에 대한 애정 때문에 더욱더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이가 된 것이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Dietrich Fischer-Dieskau (1925~2012)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Dietrich Fischer-Dieskau (1925~2012)

 

16개의 소주제로 20명 이상의, 200년을 넘는 독일 가곡 대표자들을 다루는 이 저서는 그 분량으로 인해 작곡가 한명 한명에 대해 상세한 논의를 이끌어내진 못하지만, 무엇하나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라이하르트와 첼터에서부터 아리베르트 라이만에 이르기까지 작곡가 혹은 주제별로 흥미로운 내용이 눈에 띄는데 가령 파울 힌데미트와 신 빈 악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힌데미트는 개념을 뒷받침하는 역할로부터 음을 해방시켰고, 무엇보다 음악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나(피셔 디스카우) 역시 음반작업을 하면서 작곡가의 이런 의도를 현실화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음을 밀치고 나올 만큼 언어의 힘은 강했기 때문이다. 특히 힌데미트의 노래에서는 언어와 음악이 서로 어긋나는 경향이 짙고, 음은 도리어 시어에 반기를 들고 있다. 다른 작곡가들에게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힌데미트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는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을 작품을 통해 한데 어우러지게 했다.’

 

‘한편 이들(신 빈 악파)보다 앞서 말러는 이미 성악음악에 교향악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씨앗을 심어놓았다. 이를 보며 빈의 12음 기법 작곡가들은 시가 지닌 내적인 맥락이 형식으로 인해 생긴 손실을 메워줄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시의 내용이 전통에서 벗어난 음악 형식을 지탱하고 받쳐준다는 것이다. 이렇듯 언어의 존재는 작곡가들에게 보탬이 되고 중요했다.

쇤베르크는 시의 내용만이 아니라 시가 지닌 리듬과 운율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 시의 내용은 음악의 분위기를 매혹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 시는 전체 음악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이고, 그는 한 걸음 물러나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가사를 선택했다. (…) 이로써 작곡가 쇤베르크와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Stefan George(1868-1933)는 저절로 하나가 되었다.’

 

 이 두 부분은 무엇보다 시와 음악의 관계에 있어 더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리트(Lied)란 큰 틀 안에서 시와 음악이 전혀 다른, 서로가 서로에게 상충되는 힌데미트의 가곡과 조성에서 벗어나려는 흐름 속에 12음 기법과 쇤베르크, 쇤베르크 후계자들이 보여준 시도― 음악적 형식으로 인해 생긴 손실을 시가 지닌 내적인 맥락이 보완해주는―는 시와 음악의 관계에 있어 또 다른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대중가요를 말할 때 가사와 멜로디의 관계에 대해 저마다 다른 견해를 내보인다. ‘가사가 중요하다’거나 ‘무엇보다 멜로디를 먼저 떠올린다’부터 ‘멜로디가 가사를 잘 전달해 준다’ 등 오늘날에도 비슷한 논의와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이러한 물음들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년 전부터 수많은 이들에 의해 논의되어 왔음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백 년 이백 년 전의 예술, 오늘날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이러한 예술 장르(오페라, 가곡)들을 살피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시와 음악의 관계에 대한 물음들, 결국 연극에서 영화에서 그리고 가요에서 여전히 남아 흐르고 있는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답은 어쩌면 지난 오랜 시간 동안의 예술사를 살펴보는 것을 통해 발견될지도 모른다. 이백 년 이상의 가곡 전통에서 시와 음악의 관계의 또 다른 전개를 우리는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가 주는 감동은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리트, 독일예술가곡
리트, 독일예술가곡

<리트, 독일예술가곡 : 시와 하나 된 음악>, 1983

작가 : 피셔-디스카우, 디트리히, 1925-2012

번역 : 홍은정

서울 : 포노, 2015

청구기호:

673.83 피54ㄹ 석관동도서관 4층 자료실

B 673.83 피54ㄹ c.2 서초동도서관

정의현 기자

sungwon7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