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 못하는 레퍼토리 공연의 문제

연극원에서는 매 학기 레퍼토리라는 이름으로 공연이 한두 편 올라간다. 이 공연들은 수업의 일환으로 연극원 내 각 과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연출을 맡는다. 커다란 프로덕션 안에서 미리 경험을 해보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연기과 학생들은 졸업을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레퍼토리 공연에 참여해야 한다. 연출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으나 지금은 의무사항은 아니다. 레퍼토리 공연에 대한 문제점들은 모두가 알고 있으나 침묵해왔다. 하지만 최근 연극원 공연들에 관한 논쟁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에 교수와 학생이라는 수직적인 구조적 권력에 기인하고 있는 레퍼토리 공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바이다.

 

레퍼토리 공연은 교육적 목적을 첫 번째로 하고 있다. 연극원 학생들은 <공연 A>라는 과목을 통해 레퍼토리 공연에 참여하게 된다. 레퍼토리 공연에서는 연출을 맡은 교수가 모든 권력을 가지게 되고 그가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학생들은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서 학생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진행하는 스튜디오 공연에는 올해 160만 원이 지급된 반면 레퍼토리 공연에는 1,200만 원이 지급됐다(대체로 레퍼토리 공연의 규모가 더 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지나친 차이다). 단지 교수가 주축이 되어 만드는 것이라는 이유로 지원금을 몰아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스튜디오 공연에서는 지원금을 인건비로 지출할 수 없는 반면 레퍼토리 공연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교수들이 레퍼토리 공연에서 졸업생과 외부 스탭들을 돈을 주고 고용한다면 정작 배워야 할 학생들의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학생들은 이 레퍼토리가 정말로 교수와 학생의 협업을 통한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수 자신의 작업을 위해 학생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덧붙여, 만약 연출을 맡은 교수가 공연 이후에까지 자신의 작업으로 이것을 연장한다면 과연 학교에서 받은 지원금을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레퍼토리 공연이 정말로 교육적인 목적이라면 텍스트 선정이나 캐스팅에 있어서도 각 학생들이 균등하게 역할을 맡을 수 있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전적으로 교수의 취향대로 작품이 선정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배우나 스탭이 소모된다. 단적인 예로, 배역 캐스팅에 있어 남녀 비율에 큰 차이가 있는데, 연기과 여성 학생들은 캐스팅이 되지 않아 휴학하는 경우가 많다. 캐스팅이 되더라도 대사 몇 줄 안 되는 소모적인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졸업하기 위한 의무사항으로 만들어 놓고 정작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더군다나 레퍼토리를 맡은 교수가 연극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일 때 우리는 여기서 어떤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최근에는 레퍼토리라는 이름으로 특혜를 받은 일도 있다. 한 레퍼토리 팀이 공연이 끝난 이후, 공연의 일부가 아닌 영화를 촬영할 목적으로 실험무대를 일주일 더 대관한 것이다. 연극원 지하 극장(실험무대, 상자무대)은 공연이 있는 주 월요일에 셋업을 시작해 목~토요일에 공연을 하고, 그 다음 주 월요일 낮 열두 시까지 철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 다음 주에 공연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교수가 공연도 아닌 개인적 목적을 위한 공간으로 극장을 일주일 더 빌리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허용되는 것은 잘못되었다.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야 하며 동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이 학교에서 교수는 확실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교수들 자신은 선생을 친구처럼 여기라고 이야기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작업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 경우 교수/학생의 관계는 더 명확하게 갑/을 관계가 되고 만다. 학교는 일종의 연습장이다. 레퍼토리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교수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학생들이 보호받을 수 없는 현실을 보면 레퍼토리가 과연 정말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에서부터 의구심이 든다. 학생들은 언제까지 피해자가 되어야 하며 왜 학교는 피해자인 학생들조차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인가. 모 교수가 선생과 학생 사이에 권리와 의무가 웬 말이냐고 했지만 선생들이 정말 학생들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근로계약서 쓰는 법부터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챙길 수 있는 방법들을 연습할 수 있게 도와주지도 못할망정 자꾸만 학생들이 최소한의 권리도 주장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를 선생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정혜린

연극원 연출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