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5년 12월 8일

통섭 대신 간섭, ‘맞춤형’ 정권 예술의 역사

6년 전 “통섭 금지령”…좌절된 U-AT 사업

학내 융합예술센터 신설, 앞으로의 행보 주목

 

2008년 황지우 전 총장과 심광현 교수(영상원 영상이론과), 진중권 전 객원교수(전 협동과정 서사창작과) 등을 주축으로 진행된 <U-AT(Ubiquitous and Art Technology) 통섭교육> 사업은 당시 새 정권의 ‘진보 인사 죽이기’로 인한 ‘한예종 사태’와 맞물리며 중단되었다. 당시 게재된 <미래교육준비단 LAB 연구원 채용공고>에 따르면 <U-AT 통섭교육> 사업(이하 U-AT)은 “유비쿼터스 시대로 진입함에 따라 크게 증가된 예술과 과학·기술의 접속 기회를 예술 교육의 차원에서 적극 활용하려는 기획”으로 “문화콘텐츠가 한 나라의 강력한 자본이자 경쟁력이 되고 있”는 “급변하는 컨버전스(통합ㆍ융합)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교육준비단 내 9개의 LAB를 설치”, “장르 횡단적인 통섭교육 과정 모델 개발 및 핵심 콘텐츠 기획ㆍ창작 전문인력을 양성”하고자 기획됐다. 당시 △AT미디어교육 △알고리즘특수음향 △AT클리닉 △디지털미디어모션그래픽스 △예술과 놀이 △VAT(몰입경험문화디자인) △디지털악가무 △스마트시티(아트 키네틱스) △디지털 아카이빙 등 총 9가지 분야의 LAB 연구원을 채용했다. 당시 심광현 교수가 단장으로 미래교육준비단을 구성했고, 2008년 3월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전개해 나갔다. 해당 프로젝트 예산은 1년에 40억 원씩 4년간 투입될 예정이었으며 초기 180여 억 원으로 기획되었다. 당시 해당 프로젝트는 광운대학교와 포항공과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및 MIT Media Lab(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연구소)와 교류하며 교류 학생들로 하여금 좋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U-AT 사업의 최종 목표는 9개의 LAB에서 기초 연구를 통해 2010년 ‘통섭원’ 과정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통섭원’은 당시 정부에서 문제 삼은 ‘협동과정’을 대체할 수 있는 원이었으나 정부는 이 프로젝트 역시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몇몇 보수 언론에서는 “[우리 학교의] 학생이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에 익명으로 ‘U-AT’ 교육과정이 사업자금에 비해 결과물이 부실하다는 제보를 했”고 “사업의 결과물인 <청소년영상창작워크숍> 홈페이지와 출판물 부실” 및 “진중권 전 객원교수의 출판 프로젝트에 예결산 보고서가 없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해당 사업에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진중권 전 객원교수는 이에 대해 “확정된 예산 40억 원이 아니라 30억 원만 지급되었”으며 “[U-AT가] 연구원 80여 명을 기용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인건비와 장비로 사용한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협동과정 폐지 및 U-AT 사업 중단 시도를 이어 나갔다. 이어 우리 학교의 U-AT 사업은 전면 중단됐다. 문체부 측은 당시 사업 중단에 대해 “2007년 카이스트 CT 대학원 건립을 검토하며 통섭 교육이 중복될 수 있으니 [U-AT 사업을] 우선 중단 시킨 것”이라고 답변했다. 문체부의 감사와 더불어 ‘한예종 사태’가 시작된 것이다.

 

2006년 뉴라이트 계열의 우파 인사들로 구성된 문체부 산하 사단법인 ‘문화미래포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가 “좌파 정권이 문화예술계를 장악하기 위해 급조한 체제”라며 “좌파 예술인에게 지난 정권이 편파적으로 권력을 주었기에 [지적한 단체들이] 반정부 활동의 근거지”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문화예술분야 좌파 엘리트 집단의 온상”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문화미래포럼’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문화예술현상 및 정책개발에 주안점을 둠으로써 순수한 문화예술 창작 및 향유를 위한 토양 조성을 목표로 한다”는 설립 취지와는 다소 상이한 입장을 밝히며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는 최근 국정화 교과서 지지 발언을 한 바 있으며 장미진 전 사무처장은 당시 유인촌 문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이기도 했다. 이처럼 극우 성향의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문화미래포럼’은 ‘문화예술계 현안과 과제’라는 자료를 제출했는데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전면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며 우리 학교의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문화미래포럼’은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예종의 분리 해체’를 요구하기도 하는 등, 유독 우리 학교에 끈질긴 관심을 보였다. 이는 ‘좌파 인사 척살’을 목적으로 정부와 문화 단체, 언론 사이에서 이뤄진 일종의 협력이었다.

 

U-AT 사업이 시작된 해인 2008년 3월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은 학교를 방문해 “통섭 같은 거 하지 말라”,”기초 예술만 하라”며 U-AT 사업을 강하게 비난했다. 문체부에서 요구한 감사 최종 처분 요구서에는 “몇 교수들의 전공 불일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관련해 2011년 심광현 교수(영상원 영상이론과)가 공개채용 모집 분야인 영화 이론이 아닌 영상 미학을 전공했다는 점을 빌미로 학교 측에서 배제 조치를 취했는데, 당시 영상이론과 재학생들은 ‘2년 전 한예종 사태’를 언급하며 이를 강하게 반대하기도 했다.

 

황지우 전 총장의 사퇴 직후 석관동캠퍼스 학생들이 그린 벽화

황지우 전 총장의 사퇴 직후 석관동캠퍼스 학생들이 그린 벽화

 

문체부는 감사를 통해 통섭 교육 중지 및 관련 교수 징계 포함 이론과 축소 및 폐지, 서사창작과 폐지 등 총 12건의 주의·개선·징계 처분을 내렸다. 사업 중단 이후 협동과정 폐지와 관련 교수들의 중징계 및 황 전 총장의 사퇴가 줄줄이 이뤄졌다. 황 전 총장은 사퇴 기자회견 당시 “참 이상한 감사였다”고 말문을 떼며 “[해당 감사가] 전형적 표적감사”임을 강조했다. 또한 황 전 총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고 “다시금 우리 사회에 새들도 세상을 뜨는 시간이 도래한 것인가”라며 통탄했다. 이는 황 전 총장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에서 비롯된 것으로, 80년대 독재 정권 아래 사회의 모습을 비판하는 문장이다. U-AT 사업 중단과 협동과정 폐지에 이어 황 전 총장의 사퇴를 끝으로 ‘한예종 사태’는 막을 내렸다.

 

현재 학문 간 ‘융·복합’, ‘통섭원’ 사업은 타 학교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문화기술대학원(CT),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운영되고 있다. 정부의 표적 감사로 인해 우리 학교의 통섭 교육은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융합 사업의 새 조짐이 다시 보이고 있다. 지난 11월 5일 석관동캠퍼스에서 개소식을 개최한 융합예술센터의 설립 목표 역시 U-AT 사업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규정」 제 2조(임무)에 에 따르면 융합예술센터는 “역량을 기반으로 예술, 인문사회, 과학기술을 융합하는 창작, 교육, 연구를 통하여 미래 융합예술의 산실로 기능”하는 기관으로 △예술을 기반으로 인문사회·과학기술을 융합한 예술작품 기획 △융합예술 인력 양성 △융합예술 교육 및 학술적 연구 △아시아·글로벌 예술 융합 창작 교류 및 산학 협력 △기타 융합예술 관련 업무 △센터 운영에 관련된 제반 업무를 담당한다.

 

센터 개설 후 첫 프로젝트인 한중일 3개국 대학 융합예술프로젝트 <AAA(Asia Arts Agroforestry)프로젝트>의 파일럿 워크샵이 지난 달 진행됐다. 해당 사업은 “융합예술센터 국제화 발판 마련 위한 해외 인적 교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것으로 오사카 공업대학교, 훗카이도 대학교, 칭와대학교가 참여했으며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간 석관동캠퍼스, 대안 공간 슬로우슬로우퀵퀵, 세운상가 주변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AAA 프로젝트’의 마지막 A인 Agroforesty(산림농업, 혼농산업)는 농업과 임업, 축산업을 결합시킨 복합 영농을 뜻한다. 융합예술센터 측은 이 단어를 “융합 예술의 상징적 의미로 쓰인 것”이라고 전했다. 융합예술 사업이라는 같은 프레임으로 연구와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것은 U-AT 사업의 행보와 비슷하나 U-AT 사업의 주요 사업이었던 ‘융합예술 교육’에 대해서는 아직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융합예술센터가 설립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센터의 결과물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U-AT 사업이 4년 짜리 프로젝트인 것에 반해 기관으로 운영되는 융합예술센터의 경우 위 업무를 포괄할 수 있는 보다 장기적인 사업을 구상하고, 6년 전 U-AT 사업 중지와 같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학교 기관으로서의 자율성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백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