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정원사가 될 수 있어요

정원 프로젝트, “사람의 열로 정원을 키우자”

 

© 곽소진
© 곽소진

 

11월 28일, 예술 극장 앞에 미러볼이 달린 작은 집 모양의 구조물이 자리를 잡았다. “집처럼 생겼지만 허술해서 집이 되지 못하고, 무언가를 보호해주는 것 같지만 안에서 하는 일이 다 보이는” 공간은 어느새 대나무, 측백, 동백 나무 같은 식물로 채워졌다. 겨울 날 학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정원에 대해 “그게 정원이야?”부터 “누가 만든거야?”같은 질문이 들려왔다.

 

‘정원 프로젝트’는 곽소진(영상원 영화과) 씨, 이정호(무용원 창작과) 씨, 이정빈(영상원 영상이론과) 씨가 함께 만든 “불안과 그림자” 라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올해 초, 20대인 세 사람이 서울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감각과 고민들을 작업으로 풀어내고자 만들어졌고 “K-Arts 플랫폼 융합창작분야”와 예술교양학부의 융합창작워크숍에서 자금 등을 지원받았다. 곽소진 씨는 “도시 생활에서 저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안감이었고, 허공에서 살고 있는 듯한 이 느낌에서 파생되는 그림자, 어떤 예감 같은 것들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가시화 하고 싶”다고 말했다. 프로젝트 중반에 이정빈 씨가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게 되었지만 세 사람은 지난 1년 간 초고층 빌딩의 건축 현장을 찾아가 녹음을 하고 비디오를 찍거나 방치된 도시의 틈새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모으고,빌딩의 환풍구와 난방 설비가 압도적으로 모여있는 옥상에서 필름 작업을 하는 등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정원’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왜 하필 정원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그냥 ‘우리에겐 정원이 필요해!’라고 일순간 강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마음이 너무 강렬하다 보니까 한 달이 안되는 시간 동안 빠르게 완성하게 됐어요.”

 

정원은 사실 말 그대로 “안과 밖이 투명한, 이동과 조립이 쉬운 공간”이다. 그 안을 식물로 채운 것 뿐이다. 곽소진 씨는 “정원은 사실 빈 공간이고 저희가 이름을 붙인 것 뿐”이라며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곳이 진짜 정원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는 “어떤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안에 있는 사람이 환대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곳은 ‘강의실’이나, ‘병동’과 같은 이름표가 붙여져 있지 않는 곳이에요. 여기서 무엇을 하든지 식물들은 그냥 지켜 봐줘요”라고 말했다. 미러볼을 달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집에 가져와서 걸어보니까 환상적이더라고요. 정원에 들어갔을때 사람들이 좀 다른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 곽소진
© 곽소진

 

이들의 정원 프로젝트에서는 ‘사람들’을 뺄 수 없다. 실제로 이들이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사람의 열로 정원을 키우자”라는 프레이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무언가를 작품으로써 남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희에게 어떤 실질적인 이익을 생산해내는 것도 아닌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저희는 정원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무것도 아닌 곳이면서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곳,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임시적인 공간”이라고 말한다. ‘사람’ 에게 필요한 공간은 곧 식물에게도 필요한 공간이 된다. 겨울에 정원을 어떻게 유지하고 식물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하던 고민은 ‘사람의 열’을 통해 해결되었다. 지난 11월 29일 정원에는 무용수들이 모여 정원을 입고 움직였다. 하지만 이들은 “굳이 무용이 아니어도 그 어떤 것이어도 좋고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다면 누구든 정원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춤을 추세요’라고 했을 때 무용수가 아닌 이상 열에 아홉은 우물쭈물하게 되지만 ‘열을 내세요’라는 말에는 누구든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어요. 아줌마 아저씨들이 약수터에서 많이 하시는 수벽치기를 해도 돼요. 사실 그것도 일종의 춤이잖아요. 그럼에도 ‘춤을 추시오’라는 말고 ‘열을 내시오’라는 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좀 다르다는게 신기해요. 노래를 불러서 열을 낼 수도 있고, 그냥 이 공간 주변을 빙빙 돌아도 되고요. 뭘 하든 열은 나게 되어 있으니까.”

 

정원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은 정원 프로젝트를 꽤 길게 보고 있다. 곽소진 씨는 프로젝트의 미래에 대해 “지금의 정원은 아직 학교 내에서 진정으로 ‘정원’이라는 입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선 정원이 저 자리에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정원을 사용하게 될 때, 그 때 저희의 정원은 비로소 진짜 정원이 되는거죠”라 답했다. 이들은 봄이 되면 정원에서 진짜 경작을 하고자 하는 야심도 있다. 집에서 키울 자신이 없는 화분, 함께 키우고 싶은 상추 모종 등을 가져와서 키우고, 다같이 추수해서 나눠 먹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이 정원이라는 공간에 각기 다른 이유로 얽히는 풍경을 꿈꾸는 것이다.

 

© 곽소진
© 곽소진

 

그렇게 ‘정원 프로젝트’는 프로젝트가 아닌 진짜 정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곽소진 씨는 “저희는 정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일종의 놀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래요.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은 정원에서 춤을 추면 되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은 노래를 부르면 되고. 예술 대학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질 수 밖에 없고, 그것에 대한 인정 여부가 특정 권위 집단에 있다는 것은 때로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정원에 들어오는 사람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다른 규칙이 통용되는 존(zone)이 되길 바래요. 이곳은 순수하게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위한 곳이에요. 정원 안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한 다음 정원을 빠져나오면 돼요. 식물에 해를 가하지 않는 활동이라는 조건만 충족된다면”이라 말했다. 이들의 정원에 참여하고 싶다면 페이스북 페이지를 방문해보자. 움직임, 연주, 시 낭송, 노래 부르기 등 무엇이라도 좋다.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특별한 정원사가 되보는 건 어떨까.

 

문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