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 차별, 편견, 그리고 춤

발레 블랑 vs. 블랙 스완

2015년 여름, 미국의 대표적 발레단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최초로 흑인 발레리나가 수석무용수에 올랐다는 사실이 국제적인 뉴스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1940년 창단된, 75년 역사의 미국 발레단에 흑인이 한 번도 수석무용수 자리에 오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춤과 인종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흑인 무용수가 추는 백조를 본 기억이 있는가? 하얀 튜튜를 날리며 춤추는 공기의 요정들이 제 각각의 피부색을 보이며 줄지어 선 것을 본적이 있는가. 클래식 발레의 여성 캐릭터들은 어리고, 가냘프며 사랑으로 구원받는 수동적인 여성성을 보인다. 세계적으로 발레리나들은 백인 여성이 주류이고, 인종적으로 아시안 이거나 히스패닉계라 할지라도, 십대의 백인여성의 신체이미지에 맞춰져 있다. 32살의 나이에 주역으로 승급한 미스티 코프랜드(Misty Copeland)는 “내 자신을 의심하고 그만두려 한 적이 수 차례 있었다. 왜냐면 흑인 여성에게 미래가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회고한다.

 

사실상, 클래식 발레의 여성 캐릭터 대부분이 왕족이나 요정 같은 고귀한 신분의, 만 16세 정도의 백인 여성들이다. 가늘고 긴 목, 작은 두상, 몸통에 비해 길고 가는 팔과 다리가 동양인에게 드문 특징이라면, (흑인과 히스패닉에게 좀 더 특징적인) 가슴과 둔부의 발달은 최소한이다.

 

발레가 지향하는 천상의 이미지는, 로맨틱 발레에서부터 시작된 하얀색 튜튜(얇고 나풀거리는 천을 여러 겹으로 겹쳐 만든 의상)가 상징하듯 눈부시게 하얀색이다. 하얀 옷을 입은 여자 무용수들이 단체로 나와 춤추는 장면이 인상적이라 발레 블랑(ballet blanc; 하얀 발레)이라는 단어가 탄생했을 정도다. 문제는 의상뿐 아니라, 신체 역시 ‘백색’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무용수들은 눈부시게 하얀 튜튜 뿐 아니라, 옅은 핑크색의 토슈즈에 옅은 살굿빛에 가까운 밝은 살색의 타이즈를 입는다. 한국의 발레무용수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팔과 어깨 등에도 매우 밝은 컬러(주로 1호분)의 분을 발라서, 온몸을 창백할 정도로 하얗게 연출한다.

 

코프랜드는 발레리나로는 늦은 나이인 13세 때 정식으로 발레를 시작하였는데, 그녀가 처음 받았던 아카데미의 거절 편지들은 그녀의 신체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미국 스포츠용품 기업인 ‘언더아머’는 지난해 코프랜드를 자사 광고 모델로 발탁하면서 광고에 아카데미의 거절 편지를 인용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당신을 받아줄 수 없습니다. 아킬레스건, 몸통, 가슴, 발이나 턴아웃 동작을 고려하면 당신의 체격은 발레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13세의 나이는 발레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실제로 코프랜드의 체격은 길고 가냘픈 소녀의 이미지에서 멀다. 157cm의 자그마한 키, 단단한 골격에 자리 잡은 근육들은 운동선수처럼 탄력적이다. 구원을 기다리는 연약한 여성보다는,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21세기의 여성 리더의 모습에 더 가깝다. 미국처럼 인종과 경제력, 계급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라에서 코프랜드의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역경이나 성공담 이상을 의미한다.

 

미국의 백인 중산층 가정의 소녀들은 5-6세가 되면 발레를 교양 교육의 하나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재능을 보이는 발레 영재들은 일찍 발레 아카데미에서 전문 수업을 받는다. 코프랜드는 싱글맘인 어머니와 5명의 형제들 사이에서 성장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도 안정적이지도 못했다. 어머니가 4번 결혼하는 동안 주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도시를 전전했다. 13세에 발레를 시작해 인정받기 시작했으나, 16세가 되자 어머니는 발레 수업을 받는 것을 막았다. 집이 없어 모텔을 전전하며 생활하고 어머니의 친권을 파기하는 소송을 치르고서야 발레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코프랜드는 자서전 Life In Motion에서 “내가 두려운 것은 또 다른 흑인 여성이 엘리트 발레단에서 내가 오른 위치까지 오르는 데 다시 20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썼다. 코프랜드의 트위터를 보면, 그녀를 존경하는 흑인 소녀들이 발레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연결되어 있다. 검은 튜튜를 입은 한 흑인 소녀가 “백조가 되기 위해 창백할 필요는 없다”고 쓴 글도 눈에 띈다.

 

Dance Theater of Harlem
Dance Theater of Harlem

 

할렘에 세워진 예술학교

코프랜드가 ABT의 첫 흑인 무용수인 반면, 뉴욕시티발레단 (NYCB)에는 일찍이 1956년에 아서 미첼(Arthur Mitchell)이라는 흑인 주역 무용수가 존재했다. 1934년 생인 그는 뉴욕의 할렘 출신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많은 빚을 남기고 감옥에 가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구두닦이, 신문 배달, 청소 등을 하였으며, 10대 시절에는 동네 갱스터들과 나쁜 일에 연루되기도 했다. 카운셀러의 격려로 그는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발레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고, 1955년 흑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발레단에 입단 후 1년 만에 주역으로 승격되었다.

 

전설적인 발레안무가이자 NYCB의 예술감독인 조지 발란신은 그를 위해 발레리나와의 이인무를 안무하기도 하였다. 세계를 돌며 파트너와 공연을 하였지만, 1965년이 될 때까지 미첼의 공연은 TV에서 방송되지 못했다. 광고주들과 방송국들이 흑인 남성 무용수와 백인 여성 무용수의 이인무를 방영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의 죽음 이후, 미첼은 NYCB를 떠나 고향인 할렘가로 돌아온다. 그는 한 교회의 지하실에서 30여 명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지역 아이들을 위한 발레 교실을 열었다. 몇 년 후, 미첼은 흑인 무용수들이 주축이 된 전문무용단인 할렘무용단(Dance Theater of Harlem)을 창단했다(코프랜드도 할렘무용단에서 워크샵을 받기도 했다). 여전히 미첼의 학교에서는 음악, 무용, 무대연출이나 의상 등 공연예술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있고, 가난한 흑인 지역이라는 할렘의 과거 모습을 지우며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에일리 캠프의 유산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 무용가로 전설적인 명성을 남긴 엘빈 에일리(Alvin Ailey)의 예술적 유산 역시 인종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그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17세에 불과했고, 생후 6개월 만에 아버지가 가족을 떠났다. 미국 대공황 시절과 인종차별이 당연시 되었던 시절, 에일리는 지독한 인종차별과 소외감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에일리는 어머니가 백인 남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을 때, 경찰조차 도와주지 않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한 에일리는 극심한 인종차별로 무대에 설 수 없었던 다양한 인종의 무용수들에게 춤출 기회를 주었다. 그는 발레나 현대무용의 움직임 테크닉과 함께, 아프리카 춤의 유산들을 작품들에 반영하였다. 에일리는 무용수들에게 (발레의 영향인) 곧고, 길고, 섬세한 하체의 움직임과, 드라마틱하게 표현적이고 율동적인 (아프리카 춤과 현대무용의 영향인) 상체의 움직임을 요구했다.

 

1989년에 그는 ‘엘빈 에일리 캠프’를 설립해 캔자스, 뉴욕, 필라델피아, 마이에미, 시카고 등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 캠프는 예술을 접할 기회가 없는 저소득층 학생에게 무용기회를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2천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리는 Ailey Camp 의 선발 기준은 다음과 같다.

 

  • 그 지역사회의 학생
  • 편부, 편모 혹은 부모가 없음
  • 학교 점심 프로그램에서 제외됨
  • 학교 중퇴/퇴학생
  • 전통적인 학교 구조 내에서 적응의 어려움이 있다는 교사의 추천
  • 무용, 운동, 창작에 대해 관심 있는 학생
  • 낮은 자아 존중감

 

이 선발 기준은, 코프랜드가 거절당한 엘리트 무용캠프와는 사뭇 다르다. 에일리는 예술 영재를 뽑아 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배우거나 극장에 갈 기회가 없는 아이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춤과 예술 교육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아이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캠프에는 에일리 무용단의 최고의 강사진들과 예술가들, 무용수들이 파견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캠프가 가르치는 내용이다.

 

기본적으로 현대무용이나 재즈, 아프리카-캐러비안 테크닉, 발레 등이 포함되지만 이밖에도 공연과 평가, 창의적인 글쓰기, 영양, 약물·알콜 중독, 성, 의사결정에 대한 개인상담, 예절과 매너 교육이 강조된다. 프로그램은 무료이지만, 아이들의 노력까지 공짜인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정시에 도착하여 성실히 참여하는 것은 물론, 스쿨버스 청소나 물건 정리 등, 각각의 역할을 맡고 완수해야 한다.

 

물론, 캠프에 아이들이 쉽게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부담으로 대부분 처음 캠프활동에 참가한 데다, 문제 행동으로 단체 활동 적응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상당수인 까닭이다. 특히 성취의 기회가 거의 없었던 아이들은 낮은 자존감, 두려움, 의지와 인내심의 부족으로 처음엔 단 오 분의 집중도 어려워한다고 한다.

 

하지만 움직임의 반복을 통해 인내심을 키우고, 자신의 몸을 조절하는 힘을 깨닫고, 매너 교육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배우고, 전문가들과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은 변화한다. 약 2주 뒤에는 상당수의 아이들이 활기참, 자기 동기화, 자아인식, 자존감, 자기 확신이 놀라울 만큼 향상 되는 결과를 보인다. 이는 캠프가 추구하는 열 가지 약속과도 무관하지 않다.

 

  1. 나는 하루를 내 마음 속 사랑으로 맞이한다.
  2. 나는 승리자다.
  3. 나는 나를 조절할 수 있다.
  4. 나는 행동하기 전에 생각한다.
  5. 나는 배우기 위해 귀 기울일 것이다.
  6. 나는 마음과 몸과 영혼을 다해 집중한다.
  7. 나는 다른 사람을 항상 사람과 예의로 대할 것이다. (후략)

 

극심한 인종차별이 시스템화 되었던 시기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다름과 차별은 예술 내에도 존재한다. “여전히 많은 춤들이 젊음과 아름다움, 날씬한 몸에 대한 것이다. 마치 미인대회처럼”이라고 꼬집은 안무가 로이드 뉴슨의 말처럼, 다수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멋진 스타일의 구사는 무용가들에게는 항상 치명적인 유혹이다.

 

예술은, 당대의 사회문화적 시점 속에서 개개인을 드러낸다. 특히 춤은, 몸이 가지는 정치적, 위계적 의미와 권력관계에 도전한다. 때로는 불평등한 몸의 권력관계를 비판하거나 도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묵묵히 동의하고, 아름다운 포장으로 강화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이 추구하는 진실은 제각각이다. 스타일에 희생되지 않고 어려운 문제와 정면대결하기 위해서는 노력도, 정직함도 처절하게 필요하다.

 

제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