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015년 11월 18일

생활협동조합, 사상누각으로 남을 것인가

사라진 호박벌연합, 끝나지 않은 생협 논의

 

우리 학교 생협 타임라인

우리 학교 생협 타임라인

 

작년 4월, 우리 학교 협동조합 ‘호박벌 연합’은 사업을 정리하고 해산했다. 2013년 6월 창립 이후 약 10개월 만이다. 호박벌 연합은 학내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 설립 추진이 학교와의 입장 차이로 난항을 겪자 학생 단위에서 만든 소비자 협동조합이다. 위 단체는 학생, 교수, 교직원들로부터 조합원 신청을 받고 출자금을 모금하여 학내자치사업을 운영했다. 그러나 운영에 차질이 생겼고, 장기적 목표였던 생협 설립도 흐지부지되었다. 총학생회는 모금했던 출자금을 조합원들에게 환불했다.

 

대학 생활협동조합은 대학 구성원(학생, 교수, 교직원 등)들이 보다 합리적인 소비 생활과 쾌활한 면학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하는 비영리 단체다. 생협의 이점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학생들이 직접 학내 정책 운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출자금을 지불하고 조합원이 되면, 이용자이면서 정책을 결정하는 운영자의 자격을 얻는다. 식당 메뉴, 물품 구비, 시설 설치 등에 있어 학생의 의견을 직접 반영할 수 있다. 둘째, 사업 시설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잉여금)은 도로 학교사업에 재투자된다. 장학금, 문화 활동, 복지 사업 등 여러 학내 사업에 지원이 가능하다. 셋째, 저렴한 소비활동이 이루어진다. 생협은 영리사업체가 아닌 비영리 단체이며, 타 대학 생협과 공동구매로 물품을 사들이기 때문에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사업을 운영한다. 매점, 식당, 카페 등에서 학생들의 경제상황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대학 생협은 학내 구성원인 학생, 교수, 교직원의 충분한 참여와 협의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처음엔 10인 이내의 설립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생협에 대한 교육과 타 대학 생협 답사 등의 업무를 통해 생협 설립의 기반을 닦는다. 이후 법적 효력을 갖는 조직으로 발기할 시, ‘30인 이상의 조합원 희망자’가 조건으로 명시돼 있다. 또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6조 1항 시행령 3조에 따르면, 300인 이상의 설립동의자와 3000만원 이상의 출자금이 준비돼야 한다. 이처럼 충분한 절차를 밟아야 생협이 만들어 질 수 있다.

 

현재 전국 33개의 학교가 생협을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재학생인 박 모씨는 생협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었던 까닭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물건값이 외부보다 저렴”하고, “캠퍼스 내 여러 곳에 적절하게 분포되어 있는 점”을 꼽았다. 또한 “아르바이트생을 학생으로 고용하기 때문에 교내 근로로 인정”되는 점을 강조했으며 운영 비용 면에서는 “학교 예산안에 생협 예산도 포함되어 학생들이 생협 학생회비를 따로 납부”한다고 전했다.

 

생협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가지각색이다. 경희대 생협의 경우에는 조합원인 대의원을 대상으로 우산 대여, 콘도 예약 우대, 장학금 가산점 부여, 명절 귀향버스 운행, 이삿짐 트럭 대여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비교적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연세대 생협에서는 식품, 서적, 기념품, 도자기, 가방, 노트, 음반, 시계류를 비롯해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도 판매하고 있으며 사진 인화 서비스까지 운영 중이다.

 

일찍이 우리 학교에서도 생협 설립이 추진된 적이 있다. 처음 생협의 필요성이 제기된 건 2010년 여름이었다. 당시 총무과 직원 박영호 씨가 학교 측에 생협 추진을 제안했고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학생회와 총무과의 회의가 이뤄졌고, 식당 운영에 관해 논의했다. 학교 측에선 외주업체의 운영을 주장했고, 학생회와 학생들은 생협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생협 운영의 현실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양측이 타협하여 우선 ‘학교 직영’으로 결론이 났다.

 

생협 추진 논의는 계속되었다. 2011년, 윤상정 제15대 총학생회장이 생협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로써 학내에 생협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타대학 답사 및 대특위 설립 면담을 진행하였다. 그 다음해인 2012년엔 학생회가 교학협의회를 통해 협동조합 ‘K’ARTS Coop’ 기획안을 제출하는 등 학교 측에 생협 설립을 안건으로 제시하였다. 이에 따라 총무과, 교학부처장과의 면담도 진행되었다. 하지만 학교 측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생협 논의는 발전되지 못했다. 그러던 2012년 12월에 국회에서 보다 간소해진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되었고, 학생 단위에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2013년 6월 11일, 호박벌연합 창립총회가 영상원 1층 계단강의실에서 이뤄졌다. 위 단체는 졸업앨범 제작 및 각종 시설사업(극장카페, 영감다방, 대공분실 등)을 진행하였다. 재작년만 해도 학생회관에는 영감다방, 학우들의 휴식을 위한 태평양홀이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내외적으로 동력이 부족했고, 이후 지지부진한 운영으로 결국 해산되었다.

 

4년에 이은 생협 설립 추진은 이렇게 좌절되고 말았다. 우리 학교 생협 설립의 난점은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생협에 대한 학교 측의 소극적 대응이다. 교학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회의석상에서 생협 설립 안건을 제기했지만, 학교 측은 거부의사를 밝히며 구체적 이유 없이 ‘여건 불충족’으로 일괄했다. 2013년 총무과에선 “학생들이 직접 매점을 운영하라”며 무성의한 대안을 내놓기도 해 학생회 측은 난감을 표했다. 같은 해 1차 교학협의회에서 학교 측은 “2012년도에 각 대학별 학생회 측과 단가를 비교해 보았으나 [우리 학교가] 생협이 있는 대학보다는 비싸지만 생협이 없는 대학보다는 저렴한 편”이라며 학교 측의 미온한 입장이 드러났다. 생협준비위원회의 일원이었던 모씨는 “학교 측이 생협 추진을 [통해] 원한 건 학생식당의 적자해소였는데, 그걸 학식가격상승(2000→2500)으로 해결하였기 때문에 더이상 생협을 할 필요가 없었”으며, “[학교 측에선 생협 설립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설립되더라도 이익이 생기는 구조도 아닌 데다가 공연히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은 것으로 사료되기에 (…)꺼려한 것”이라고 밝혔다. 생협 추진이 제자리걸음이 된 이유엔 교직원들의 근무 기간도 영향을 주었다. 교직원들의 근무지 이전이 잦아 매번 안건을 새롭게 제기해야 했고 생협 논의는 항상 제자리였다. 학교 측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학생 단위에서 생협 설립의 기반을 충분히 닦고, 설득력 있는 논리로 타협해 신뢰성을 얻어야 한다.

 

둘째는 기존 생협 설립 기준이 우리 학교의 구조적 특성과 들어맞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학교 학생 수는 타 대학 학생 수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적어 생협 설립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연세대의 경우, 설립 당시 조합원 수가 7000명에 달했다. 우리 학교에선 생협 설립의 최저 기준인 300명의 조합원도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조합원의 수효와 지원이 받쳐줘야 설립 이후에도 생협이 순조롭게 운영될 수 있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실현하는 대안 단체가 될 수 있다.  기존의 생협조합법이 우리 학교 실정과 맞게 달라지지 않는 이상, 학생들의 의지와 관심이 더욱 강력히 요구된다. 생협을 추진하기 앞서 교내 학생들에게 생협이 무엇인지 충분히 인식시키고, 관심을 촉구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타 종합대학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적은 집단에 맞게 구성하는 것  또한 중요한 선결 과제가 될 것이다.

 

셋째, 학교 캠퍼스가 다원화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서초동캠퍼스와 석관동캠퍼스로 나누어져 있을 뿐 아니라, 석관동캠퍼스 내부에서도 미술원·전통원과 본부·연극원·영상원이 동떨어져 있다. 따라서 식당과 매점도 분산 돼 있고, 개별적인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황이다. 같은 캠퍼스지만 본부 매점과 미술원 매점의 물품 가격이 다르거나, 자판기마다 커피 가격이 다르기도 하다. 또한 자판기 고장이 잦아 관리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 같은 소비 시설의 분산과 개별적인 운영이 생협 설립과 차후 운영의 걸림돌로 보인다. 다원화, 개별화된 사업 시설들을 연결시키기 위해선 생협 논의가 지엽적인 단위 보다는 각 원, 각 캠퍼스의 교내 구성원들이 협의하여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학교의 생협 설립 여건은 열악하지만 학생들이 제기하는 안건에서 생협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학식 메뉴의 다양성 및 가격 △매점의 상품 가격 및 [미술원·전통원 매점과 연극원·영상원 매점의] 가격 차이 △서초동 카페의 품질 개선과 가격 인하 △교내 자판기의 메뉴 다양성 및 오작동 문제 등을 토로하고 있다. 생협이 만들어지면 이러한 문제를 보다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생협준비위원회 일원이었던 모 씨는 우선적으로 “홍보를 통해 학생들의 지지를 얻”은 후  “[학교 측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교직원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원비(출자금)를 통해 식당 운영에 필요한 여유금을 만들”고 “학생들이 좋아하는 사업을 구상하여 진행”한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대 생협 측은 “[생협 설립에 있어] 구성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며 “학교 구성원들이 (…) 합의하여야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우리 학교 학생회관 1층은 원래 버려진 공간이었다. 2007년 당시 석관동 캠퍼스에 새 건물이 지어지면서 자리를 비운 것이다. 동아리연합회장이었던 유병서 씨를 비롯한 학생들이 동아리 공간 확보를 위해 이곳을 점거했고, 점차 학생들이 모여들어 현재의 학생회관으로 변모했다. 유 씨는 “텅 비어 있던 건물 1층 문을 따고 들어가 열쇠를 바꿔버렸”다고 증언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학내 동아리에 운영비만 지급할 뿐, 별도의 공간은 지급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유 씨는 학교 측에 “돈 대신 공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이는 곧 승인됐다.

 

생협은 단순히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에서 생활하고 공부해야 하는 우리의 삶에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생협을 통해 우리는 직접 우리가 원하는 학내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지금의 학생회관 건물이 일부 학생들의 작은 행동이 이뤄낸 큰 변화인 것처럼 모든 시작은 미미하지만 학생들의 노력과 꾸준한 관심, 학교 측과의 원만한 협의와 학생회의 의지가 밑받침 된다면 생협 문제 역시 실현 가능한 쪽으로 변화할 것이다. 앞으로 구성될 제20대 총학생회의 귀추를 주목해보자.

 

백석·금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