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 접어서 나빌레라—승무에 관하여

승무

승무를 추는 광대들

조지훈의 시 ‘승무’로 유명한 전통 춤 ‘승무’의 원류는 광대들이다. 그 중에서 판소리 꾼들이 추었던 춤을 승무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승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20세기 초 활동했던 전설적인 국악인 한성준(1874~1942) 이후로 나타난다. 한성준은 그 때까지 무작위적 즉흥형식으로 추던 춤의 사위와 가락을 1934년 조선음악무용연구소(朝鮮音樂舞踊硏究所:1937년에 한성준이 경기도와 충청도 출신 무용가와 음악가들을 규합하여 만든 무용 전문 단체 )의 창립과, 1936년 제1회 무용발표회를 계기로 집대성하고 체계화시켰다. 한성준류 승무는 손녀인 한영숙에게 이어진다. 한영숙류 승무는 1969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한성준이 활동하던 일제 강점기 당시, 전통 예술의 명맥은 권번(기생조합)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다. 승무 또한 그 명맥이 기생들의 공연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당시 승무 권위자로 이름을 떨친 기생 김백옥은 또 다른 승무 명인을 키워냈는데 그가 바로 조택원이다.

 

조택원은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휘문고보와 보성전문(고려대 전신)의 법대를 졸업한 당대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우연히 본 춤의 매력에 빠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바쿠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극단 토월단과 협업하여 꾸준히 새로운 레파토리를 만들었다. 그는 ‘전통의 현대화’라는 슬로건 아래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여 작품을 발표하고, 기존에 있던 춤을 조택원 식으로 해석했다.

 

조택원이 기생 김백옥에게 승무를 사사받은 이후 발표한 작품이 바로 <승무의 인상>이다. 이는 그의 문우 정지용 시인이 <가사호접>으로 개명해 준 것이기도 하다. 이는 조택원이 별 뜻 없이 추어온 김백옥의 <승무>에 구도자의 인간적인 고뇌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서사를 가미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조택원이 특히 좋아하던 서양의 낭만주의 음악가의 곡을 무용화 한 이전의 작품과 달리, 우리의 근대 음악가 김준영에게 새로 위촉해서 붙이는 등 그가 이 작품에 특별한 애정이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다.

 

승무 춤꾼이라면 이매방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경극배우 매란방을 흠모해 예명을 이매방으로 지은 그는, 192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그는 옆집에 살던 목포 권번(기생조합)의 권번장 함국향의 권유로 7세에 권번학교에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찍이 무가(巫家)의 후예였던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승무를 배웠던 이매방은 6년간 권번 기생들 틈에 끼어 전통 춤의 기본을 익히고, 광주 권번의 박영구·이창조로부터 승무와 북놀이 등 본격적으로 전통무용을 배웠다. 이매방류 승무는 1969년 무형문화제 제 27호로 제정되어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이매방류 승무의 특징은 “여덟 팔 자로 발이 벌어지며 (比丁比八) 전신에는 곡선이 들어간다(兩雨線). 뿌리가 올라가면 끝이 처지고 끝이 올라가면 뿌리가 처지고······. 겉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뼛심으로 뿌리고 제치고 뒤엎는 장삼의 춤사위가 훈화(渾和)를 이뤄 가며 신음하듯, 번민하듯 움틀거린다”1라는 표현으로 찬사받았다. 그 예술성이 가히 정점을 찍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매방류 승무를 배운 사람은 현재 1000명이 넘었고, 그 중에는 일반인, 대학교수, 중고교 무용교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있다.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

‘승무’는 정확히 어떤 춤일까. 승무는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독무(獨舞)로, 한국무용 특유의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정수가 잘 표현되어 민속무용 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원(舞員)의 복장은 대개 날렵하게 걷어올린 남색 치마에 흰 저고리·흰 장삼을 걸쳤고, 머리에는 흰 고깔을, 어깨에는 붉은 가사를 입었으며 양손에는 북채를 든다. 북을 향하여 관객을 등진다는 점이라든지 머리에 고깔을 써서 얼굴을 확연히 볼 수 없게 한 점 등은 관객에게 아첨하지 않으려는 예술 본연의 내면적인 멋을 자아내는 춤이다.

 

자진모리와 당악(堂樂) 장단에 맞추어 시작하는 북의 연타는 주술적(呪術的) 힘을 발하여 관객을 몰아지경(沒我之境)으로 이끈다. 이 북소리가 멎으면 다시 긴 장삼이 허공에 뿌려지고 연풍대(筵風臺)가 있은 후 어깨춤에 사뿐한 걸음이 곁들여지고 합장하면서 춤은 끝난다. 반주하는 악기는 삼현육각(三絃六角), 곧 피리 2, 대금 1, 해금 1, 장구 1, 북 1의 편성이며, 악곡은 염불·타령·자진모리·굿거리·당악 등이다. 승무는 지역마다 조금씩 특징을 달리하며 전승되어 왔으며, 앞서 말한대로 1900년 이후 한성준(韓成俊)의 노력으로 예술무용화한 경기·충청 지방의 승무와 이대조(李大祚)에 의하여 발전된 호남 지방의 승무이다. 한성준의 승무는 한영숙에게, 이대조의 승무는 이매방에게 전승되어 한영숙류와 이매방류로 나뉜다.

 

승무를 출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장삼이다. 장삼은 길이가 길고 품과 소매가 넓은 승려의 겉옷을 따서 만든 무용복이다. 장삼은 전통적인 원단인 숙고사로 짓는데, 숙고사란 누에고치에서 실을 만들어 한 번 삶은 원단이기 때문에 ‘숙고사’라 이름 붙여졌다. 반면 삶지 않은 누에고치에서 실을 만든 원단은 ‘생고사’라고 불린다. 생고사보다 공정이 한 번 더 들어가기 때문에 고급 원단으로 불리며 그 재질 또한 더욱 부드럽다. 승무는 전통예술의 뿌리가 그러하듯 실제로의 발생기원은 찾기 어렵지만 20세기 이후 고도로 다듬어져 고급 예술이 되었다.

 

 

무대 위의, 혹은 프레임 안의 ‘승무’

안타깝게도 현재 서울 시내에서 전통 공연이 꾸준하게 공연되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승무를 배우는 수요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지난 8월 승무의 권위자 이매방이 타계하면서 교육의 장도 줄어들었다. 다행히 이매방의 제자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서 당분간 승무의 명맥이 끊어질 것 같지는 않다.

 

승무는 국립국악원에서 매 분기마다 열리는 국악원 소속 무용단들의 발표회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국악원 공연이 무료이므로 관심이 있다면 홈페이지 확인 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영상으로 승무에 대한 자료를 찾고 싶다면 윤용훈 감독의 1997년작 단편영화 <승무>에 간략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11분간의 짧은 러닝타임이므로 부담없이 볼 수 있다.

 

권라임 기자

 



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현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