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부터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듣고 쓴 것들

한예종 비정규직 노조 출범 세 돌에 부쳐

 

지난 9월 11일 우리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출범 세 돌 기념식이 있었다. 나로서는 노조가 출범하는 시작부터 나름대로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에 감회가 깊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은 그 시기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출범 기사 등을 썼던 경험 등을 정리한 글이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한예종 분회는 2012년 9월 3일 출범했다. 그해 9월 5일 작성한 인터뷰 원고가 지금도 남아 있는데, 비정규직 노조가 학교 본부에 아직 정식으로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던 시점, 학내 운동단체 돌곶이포럼에서 활동하던 영상원 영화과 홍명교 씨를 인터뷰한 글이다.

 

“어제 아침부터 (용역업체) 부장이 디자인과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팀장이 한명 한명한테 전화를 해서 조합원 가입 여부를 물었다고 한다. (노동자들을) 다 모아두고는 ‘다음달에 어떡하려고 그러느냐’고 압박을 했다. (…) 처음에 (회사 쪽이 노동자들을) 흔들면 깨질 수도 있고 안 깨질 수도 있는데, 어제는 흔들려고 했다. 어머니들이 용기 있게 잘 대처해서 고비는 넘긴 것 같다.”

 

3년 전의 일을 기억에만 의존해 상세하게 떠올리기란 매우 어려운 것. 지금 남아 있는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그때 노동자들에 대한 팀장과 소장의 인격모독이 특히 심했으며 한명 한명이 담당하는 청소구역도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노조 위원장 추대를 결의한 사람들을 근무태만의 사유로 징계를 내리거나 해고를 시도했다는 내용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조는 결성됐고 원청업체인 한예종도 법적으로나 정당성으로나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혹은 언제였던지, 단체로 총장 면담을 요구하던 노동자들을 피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막고 관용차에 탑승해 학교를 급히 빠져나가던 박종원 전 총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2012년의 나는 학보사 기자로서 우리 학교에 비정규직 노조가 탄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쓰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아직 1학년이었던 그해 10월 내가 속한 영상원 영상이론과 일동 명의의 지지성명서를 쓰기도 했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스물한 살 신입생의 치기가 느껴지는 이 성명서의 제목은 지금 찾아보니 ‘우리는 청소노동자 노조의 활동에 연대합니다.’ 나는 이 글에서 노조 설립의 힘겨운 과정들을 열거하고 나서, “이번 노조 설립이, 교내의 다른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들 또한 그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보장받고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마무리했다. 마지막 문장은, “우리는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 한국예술종합학교 분회의 활동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2012년 10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바람(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도 그들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은 어느 정도 실현되었다. 미화 부문 청소노동자만으로 시작한 노조는 이후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우리 학교 시설, 미화, 경비, 식당 노동자들까지 추가로 가입했다. 한예종 분회는 꿋꿋하게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우직하게 움직였다. 지금 기억나는 그 일련의 사건들이란 대표적으로 경비노동자 부당해고 건 및 체불임금 사건과 식당노동자 상조회 문제.

 

먼저 경비노동자 부당해고 사건은 2013년 초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근무시간에 술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용역업체가 절차도 없이 노동자를 해고해버린 사건이었다. 나는 이때 몇 명의 학교 경비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노동자들이 연서(連署)로 입장을 표명하는 등의 행동에 나서 결국 해결됐다. 이 사건은 경비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노조에 가입한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4월이고, 그해 7월 체불임금 문제가 터졌다. 그때 내가 쓴 기사의 제목은 ‘시급 2780원의 노동.’ 우리 경비노동자들은 주간근무조, 종일근무조, 비번조의 3교대로 나뉘어 근무했는데 한 달 377.6시간을 일하고도 월급은 109만원이었다. 시급으로 치면 2780원 꼴. 최저임금만 적용해도 이들의 월급은 169만원이 되어야 맞았다. 노조는 용역업체를 고소하고 노동부에 진정을 냈다.

 

그 다음 터진 것이 식당노동자 불법파견 논란. 본래 한국예술종합학교 직원 상조회는 그 이름 뜻대로 직원들의 경조사 부조 등의 명목으로 설립된 사내 단체인데 학생식당 노동자들을 본부 상조회를 통해 고용한 것. 불법파견. 2013년 10월 10일 서울북부고용노동지청은 이들이 사실상 한예종에 직접고용된 상태라는 판단을 내렸다. 그해 가을 국정감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은 김봉렬 총장을 불러다가 국회에서 이 문제를 따지기도 했다.

 

그 다음해 노동자들은 단체교섭 임금협상에서 진전이 없자 2014년 3월 3일 상급노조(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를 통해 총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매번 어떤 현장은 살벌했고 어떤 날은 급박했다. 그들은 언제나 열심히 싸웠다. 그때마다 생각한 것은, 노동자들에겐 늘, 그들의 주장과 권리를 표출할 만한 제도가 현장이나 직장에 마련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싸워야만 한다는 것. 싸우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니깐 점거라든지 파업이라든지 물리력이라든지 동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싸움은 그 자체로 모든 인간을 지치게 만드는 것…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1902년; 우리는 이 시기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선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