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가 힘이다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참가 후기

 

지난 6월 학기말에는 에너지드링크와 함께 과제에 허덕이며, 방학이 얼른 오길 바랐다. 다음 학기면 졸업이라 마지막 여름방학이라 기대도 컸다. 하지만 4학년의 4자는 사춘기의 ‘사’자랬던가, 막상 방학이 되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력감에 축 쳐진 채 방에 박혀있기 일수였다. 그러다가 청개구리 제작소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어둠의 시장”을 같이 여는데 혹시 같이 하지 않겠냐고. 거절하지 못할 제안이었다.

 

이름은 인터넷 야미이치(Yami-ich), 우리말로 하면 인터넷 암시장이다. 인터넷에 있는 비물질적인 개념을 현실 세계로 가져와 판매하는 자리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터넷 비밀결사조직 IDPW가 지난 2012년부터 열어왔단다. 지난 행사 영상을 보니 참가자들이 해쉬태그 모양 빵, 페이스북 좋아요 버튼을 그린 풍선, 유투브 박스를 무대로 구현한 가라오케 등을 팔아왔다. 말하자면 인터넷에 있는 인터페이스들을 껍데기만, 그러니까 터무니만 현실세계에서 파는 자리다.

 

한편, 행사가 열릴 통의동 보안여관은 지금은 폐허가 된 여관으로, 2006년 재건축이 결정된 이래 전시장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터만 남은 공간이자 이름만 유지하고 다르게 기능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터무니상조회’라는 이름의 콜렉티브를 만들었다. 터무니만 남은 곳에서 터무니만 남은 것을 팔아보잔 요량이었다. 회원은 폐물과 폐인이 살아가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그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는 박고운, 이것저것 기웃거리기 좋아하는 디자이너 지망생 이지은을 비롯하여 양한슬, 안가람, 이진아, 강슬미, 이주현이 함께 잉여를 탐구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여지’, 그리고 윤고고와 내가 소속된 디자인 액티비스트 콜렉티브 ‘디디고고’로 꾸려졌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 빼고) 모두 미술원 디자인과 학생들이다.

 

우리는 널널한 마음을 갖고 몇 번의 사전 모임을 가졌다. 소위 ‘개드립’에 가까운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요새 게임들이 강제하는 캐쉬템(현금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을 야미이치에서 팔아보는 건 어떨까? 예컨대 속도증가 아이템을 사용하면, 정말 빨라질 순 없으니, 나머지 사람들이 느리게 움직여줘 착시효과를 준다거나. 혹은 아직 여름이니 마우스 모양의 얼음을 팔자거나. 많은 이야기가 나온 만큼 많은 것들이 묻혔다. 살아남아 행사날에 정말 구현한 건 다음과 같다.

 

터무니상조회의 '오! 나의 조상님' 터무니상조회의 '오! 나의 조상님'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터무니상조회의 ‘오! 나의 조상님’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오! 나의 조상님

세상을 떠난 디지털 디바이스를 추모하는 제사상이다. 와이파이에게 살해당한 전선, LCD 모니터에 살해당한 CRT 모니터 등을 제단에 두었다. 입장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잠시 와이파이를 꺼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단어는 죽어 껍데기를 남긴다. 인터넷에서 금칙어로 설정되어 죽은 단어와 이미지를 책자로 만들었다. 예컨대 승부조작으로 물의를 일으킨 프로게이머 마재윤의 채팅방에서 ‘조작’에서 뿌리를 내린 40여 종의 금칙어를 계보화하였다.

 

터무니상조회의 '미디어아귀'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터무니상조회의 ‘미디어아귀’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터무니상조회의 '미디어아귀'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터무니상조회의 ‘미디어아귀’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미디어 아귀와 천사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들을 인쇄하여 옷으로 만들었다. 아침에 눈뜨고 밤에 눈 감기까지 미디어에 둘러쌓여 비만이 되었다는 걸 형상화했다. 옆에선 백의의 천사들이 뱃지를 팔았다.

 

픽셀 영정 사진관

영정을 픽셀아트로 그려주는 사진기계를 특별제작했다. 사람이 들어가 직접 그려주었다는 건 영업비밀이다. 해상도가 높을수록 당신은 더 빛날 것이고, 조문객도 더욱 예를 갖출 거라고 홍보했다.

 

디지털 디바이스 박제

행사가 열리기 며칠 전 세운상가에 위치한 공간 개방회로에서 레진이란 재료를 이용해 칩을 박제하는 워크샵을 열었다. 이날 제작된 공예품을 행사장에서 팔았다. 저승에는 인플레가 심해 웬만한 노잣돈으로 라디오 사기도 힘드니 저승사자 몰래 칩만 박제해가시라고 알리고 다녔다.

 

행사는 후니다 김(프로토룸)과 신원정(다이애나 밴드)의 퍼포먼스 ‘일렉트로닉 굿’으로 시작되었다. 장이 열리자 정말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자체 추산으로 1,000명 쯤 될랑가?

 

우리는 보안여관 2층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슥 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신기한지 몇 번이고 오며가다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있다. 뭔가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깔깔깔 웃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작업에 대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종종 판매대를 교대로 비워가며, 우리는 다른 참가자의 알콩달콩하고 신묘한 물건들을 구경하러 갔다. 더이상 자유롭지 않은 인터넷을 비꼬며 풍자해내거나 성찰한 작품들이 많았다. 아래는 다른 참가자의 상품들이다. 지면의 관계상 다 소개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2015년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에서 판매된 상품들은 추후 블랙 마켓 서울 홈페이지에 아카이빙될 예정이란다.

 

김미영팀장님의 '정보는 힘이다'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김미영팀장님의 ‘정보는 힘이다’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김미영 팀장님(이상미, 윤혜정, 윤창환) : 정보는 힘이다

이 팀은 고객들이 많이 찾으면 찾을 수록 손해를 봤다. 부스에 찾아가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주면 맥주 1캔을 거저 준다. 공짜라고 좋아할 게 아니다. 팀이름에서 눈치를 챘을 수도 있겠다만, 그들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사 간 것이다. 부스 뒤에는 몰래 카메라가 있어 우리의 얼굴을 찍고 있었다. 개인정보의 소중함을 알리는 매우 건전한 퍼포먼스.

문승용이 만든 포스터들
문승용이 만든 포스터들

 

문승용 : Hacked

100종의 폰트 파일에서 카피라이트와 트레이드마크를 지우고 USB메모리에 담아 재배포하는 다소 과격한 시도를 했다. 포스터 파일도 담겨있는데, 다음의 메시지가 담겨있어 소유권과 문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다.

“WHY DO WE SHARE OUR CULTURE? BECAUSE WE IMITATE EACH OTHER”

 

차재의 '셀피'. 오줌이지만 예쁘다.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차재의 ‘셀피’. 오줌이지만 예쁘다. (사진 제공 《인터넷 야미이치 서울》 및 유상준)

 

차재 : #selpee

셀피(selfie)를 유쾌하게 비튼 작업이다. 사진 대신 오줌(pee) 샘플을 판다. 더럽다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예쁘게 생겼다. 그날 마신 음료, 피운 담배, 느낀 기분 등을 기록해뒀다.

 

박디디(터무니 상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