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5년 6월 3일

우리 애가 여성혐오 좀 할 수도 있지

2015년 상반기에 살펴보는 여성혐오

 

상반기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 2014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인구 50,424,000명 중 25,204,000명이 여성으로, 여성인구는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또, 2013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68.1% 수준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74.5%로 남학생(67.4%)보다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은 여성이다. 그러나 2012년 강렬범죄(흉악) 피해자의 85.6%는 여성이었고, 2013년 남성 대비 여성 임금비의 격차는 68.1%였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인권을 위해 싸워야하는 입장이다. 지난 몇 달 간 각종 언론과 대중매체에서 다뤄진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인 비하 발언과 태도는 인권문제의 심각성과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Misogyny(여성혐오) 철자는 어려워도 실천하는 건 쉬워요

Misogyny(여성혐오) 철자는 어려워도 쉽게 실천되는 것

 

 

여성은 투명인간?

 

<비정상회담>은 ‘국경없는 청년회’라는 부제를 단 제이티비씨(JTBC) 방송국의 토론 프로그램이다. 12개국 출신의 외국인 남성 패널들과 아나운서 전현무, 개그맨 유세윤, 가수 성시경이 의장단으로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은 “국제 청년들의 평화와 행복한 미래를 위해 각국 세계 청년들이 뭉쳤다”는 기획의도를 갖고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우는 ‘세계 청년들’ 중 의장은 물론 패널 중에도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게 열다섯 명의 남자들은 수트를 빼어입고 ‘세계 평화’를 위해 토론한다. 여성 게스트가 초대되면 그들은 초청 게스트의 아름다움을 찬사를 보내기에 바쁘다. 하지만 그건 게스트가 미스코리아(2회 게스트 제54회 미스코리아 진 정소라)거나 가녀린 몸매에 ‘동안’인 여자 배우(39회 게스트 배우 김소연)일 때의 얘기다. 성희롱에 가깝다고 여겨질 만큼 과도한 ‘찬사’를 보내던 패널들은 40대 여성 개그우먼들(45회 게스트 개그우먼 송은이, 김숙)을 대할 때는 완연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유세윤이 출연 중인 또다른 JTBC의 프로그램 <마녀사냥> 역시 그간 방송에서 쉬쉬해왔던 성에 관한 대화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은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여자 이야기’이다. 메인 출연진 또한 모두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성은 게스트 혹은 ‘고정 게스트’의 자리에만 앉게 되어 있었다. ‘고정 게스트’였던 모델 한혜진은 지난 4월 3일 방영된 ‘마녀사냥’에서 장동민으로부터 “제가 싫어하는 것들을 모두 갖췄다”는 말을 들었다. 장동민은 본인이 싫어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모든 걸 갖췄다”라고 말했다. 관상용 식물도 아니고 말하고 생각하는 게 싫다니, 아무리 농담이어도 그저 농담으로 지나쳐서는 안 될 문제였다. 하지만 이날 방송에 관한 와이티엔(YTN)의 온라인 기사는 ‘장동민 “한혜진 설치고 떠들어 싫어” 웃음 폭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JTBC 방송뉴스팀에서도 마찬가지로 “대세 개그맨 장동민과 모델 한혜진이 서로를 두고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라고 기사를 내보냈다.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해서 한혜진이 싫다고 말한 장동민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해서 한혜진이 싫다고 말한 장동민 (출처: JTBC <마녀사냥>)

 

 

멍청하니까 안 살게요

 

그런 와중에 개그맨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 3인(이하 ‘옹달샘’)이 진행한 팟캐스트 <옹달샘의 꿈꾸는 라디오>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조롱했던 표현들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장동민은 “여자들은 멍청해서 머리가 남자한테 안 된다”고 했고 유세윤은 “생각해보니까 우리가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등의 발언을 했다. 이러한 발언들에 대해 장동민은 ‘치기어린 마음에’ 한 것이라고 입장을 표했다. 이에 옹달샘의 방송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생겨났다. 또한 옹달샘이 출연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에 협찬 중인 기업, 그리고 이들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도 일어났다. 네티즌들은 웹상에서 추가하고 수정할 수 있는 옹달샘 출연 방송 및 협찬사 목록을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유세윤이 출연하는 JTBC 프로그램 <마녀사냥>을 협찬하던 회장품 회사 ‘시드물’은 지난 4월 29일 “협찬을 즉시 중지하고 앞으로는 신중하게 협찬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표했다. 인터넷 어학원 ‘문정아 중국어’ 또한 <마녀사냥>과 장동민이 출연하는 <크라임씬 2>를 협찬했지만 같은 날 “심사숙고 끝에 옹달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세윤이 출연중인 JTBC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PPL 광고를 했던 조지아 캔커피(코카콜라 컴퍼니) 역시 광고를 종료했다. 여성비하 및 혐오 발언을 한 옹달샘의 프로그램 하차를 요구하는 주장도 많았지만, 옹달샘은 “제작진들의 결정을 따르겠다”고만 했다.

 

네티즌들이 만든 '옹달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협찬 업체 리스트

네티즌들이 만든 ‘옹달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협찬 업체 리스트

 

 

불매운동은 과하다?

 

지난 5월 18일에 방영된 <비정상회담>의 안건은 “혐오주의를 혐오하는 나, 비정상인가요?”였다. 그리고 유세윤은 여전히 의장단 중 ‘사무총장’의 역할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안건을 중심으로 나뉜 두 가지 ‘찬성’과 ‘반대’의 입장은 ‘혐오주의를 혐오하는 사람도 본질적으로는 혐오주의자와 다를 게 없다’와 ‘혐오주의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게 문제지 누군가를 혐오하는 생각은 자유’였다. 본격 토론에 들어가서 의장단은 혐오주의로 인한 불매운동이 ‘그럴 만하다’와 ‘과하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즉석표결을 진행했다.

 

이날 방송의 토론 주제는 ‘혐오주의’였지만 정작 옹달샘이 물의를 일으켰던 여성과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또한 유세윤은 안건에 관한 발언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인종, 지역, 계급을 비롯해 성적지향에 대한 혐오주의만 거론되었을 뿐이다. 게스트로 초청된 진중권 교수 역시 여성혐오 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 여성혐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버젓이 진행자로 두고 ‘혐오주의를 혐오하는 것도 혐오주의다’, ‘혐오주의로 인한 불매운동은 과하다’와 같은 이야기가 벌어졌다. JTBC 밖에선 ‘혐오주의를 대상으로 한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이날 방송에선 그것이 ‘혐오주의로 인한 불매운동’으로 읽혔다. 토론이 종료되고 방송은 평소와는 다르게 출연진들이 서로 손을 잡고 ‘손에 손잡고’를 부르면서 마무리됐다. 노래를 부르는 출연진들의 모습 하단엔 ‘미움과 혐오의 벽을 넘어서’라는 자막이 달렸다. 그들이 말하는 ‘세계 평화’와 그들이 넘는다는 ‘미움과 혐오의 벽’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불매운동에 관한 토론을 진행한 <비정상회담>

불매운동이 시작되자 불매운동에 관한 토론을 진행한 <비정상회담> (출처: JTBC <비정상회담>)

 

 

웹툰, 옹달샘, 그리고 여성시대

 

여성혐오 및 비하 발언은 텔레비전 방송을 비롯한 연예계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지난 웹툰 연재 서비스인 레진코믹스에 웹툰 <레바툰>을 연재 중인 작가 레바는 5월 1일 업로드된 제13화에서 보인 여성 캐릭터 표현으로 논란을 맞았다. 논란이 된 장면은 남자 외계인(‘읭읭이’) 캐릭터가 머리에 꽃을 단 여자 외계인의 뺨을 때린 뒤 “넌 나랑 가서 썸이나 한번 때리자”라며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는 부분이었다(이 장면은 이후 꽃가마에 여자 외계인을 태우는 모습으로 변경되었다). 헌데 이 논란은 여성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다음 카페 ‘여성시대’로 불씨를 옮겨갔다. 여성시대 유저들이 옹달샘과 <레바툰>에 대한 비방 여론을 조성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 일부 여성시대 회원들이 사진 커뮤니티 사이트인 ‘SLR클럽’의 소모임 게시판 기능을 통해 ‘탑시크릿’ 코너를 만들어 성인 자료를 공유한 것이 발각돼 여성시대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여성시대는 절대악, 사라져야 할 커뮤니티 사이트로 지명되었다. 물론 ‘탑시크릿’ 사건에서 여성시대가 떳떳하지 못한 입장임은 사실이지만, 여성시대를 폐쇄하라는 주장의 근거로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내세우고 있는 저작권법 위반과 음란물 배포 문제에서 자유로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거의 없다. 옹달샘과 <레바툰>의 사례에서 드러난 여성혐오는 유예된 채, ‘여성혐오가 아니라 여성시대 혐오다’라는 명목하에 여성시대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 모든 게 여성가족부 때문’이라는 기존 프레임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여기에 네이버에서 10년째 연재중인 웹툰 <마음의 소리> 5월 22일자 제944화 연재분에서도 여성혐오 논란이 터졌다. 등장인물(이자 작가의 페르소나)인 조석과 애봉이가 소개팅 상대로 서로에게 최악의 지인을 주선하려는 장면인데, 여기서 애봉이가 소개하려는 여자 지인의 특징으로 ‘명품 중독, 끈덕짐, 남 탓, 우울증, 감정기복, 우라늄 같은 위험한 여인’ 등이 거론되는데, 그러한 묘사 중 ‘페미니즘’이 포함된 것이 문제가 되었다(동시에 ‘우울증’ 항목 또한 논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석 캐릭터가 주선하려는 최악의 지인은 ‘마마보이, 폭력적, 욕쟁이, 집착, 스토커, 눈치X, 개념X, 플루토늄 같은 인간 쓰레기’로 소개되고 있다. ‘폭력적’과 ‘스토커’라는 범죄적 항목과, 이른바 ‘된장녀 혐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혐오의 대표항인 ‘명품 중독’을 페미니즘과 동일선상에 둔 것이다. 문제가 된 컷은 현재 ‘페미니즘’ 항목을 삭제했지만, 웹툰작가 조석은 아직 해당 논란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장녀, 여성가족부, 여성시대 논란으로 뒤덮여버린 한국에서의 페미니즘은 공격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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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툰> 제13화 중 (출처: 레진코믹스)

 

 제944화 중

<마음의 소리> 제944화 중 (출처: 네이버 웹툰)

 

 

 

인권교육과 성교육부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모든 것이 옹달샘만의 잘못이 아니고, 이들에 대한 비판과 불매운동 역시 옹달샘 3인의 방송하차만을 목표에 둔 게 아니며, JTBC에서만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4월 2일부터 4일까지 있었던 토이 단독 콘서트 중 가수 유희열은 “내가 공연을 할 때 힘을 받을 수 있게 앞자리에 앉아 계신 여자분들은 다리를 벌려 달라. 다른 뜻이 아니라 마음을 활짝 열고 음악을 들으란 뜻이다. 아시겠냐”라고 말했다. 엠비씨 에브리원(MBC every1)의 ‘결혼 터는 남자들’에서 장동민은 “상대방이 콘돔을 찾는다거나 그러면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든다. 조금 정 떨어질 것 같다”라고 했다.

 

'옹달샘' 방송 퇴출과 성평등한 방송 문화 확산을 요구하는 릴레이 시위

‘옹달샘’ 방송 퇴출과 성평등한 방송 문화 확산을 요구하는 릴레이 시위

 

앞서 거론한 여성비하 발언들은 수많은 사례 중의 일부이다. 그러나 발언 자체보다 문제되는 것은 위와 같은 발언들이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인식이다. 그도 그럴것이 여성을 비하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와 문화 안에서 너무나도 깊게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성희롱 발언들이 대중문화 매체를 거치면 그저 ‘웃음코드’니 ‘섹드립’이니 하는 말들로 심판대를 피해간다. 우리가 생활하는 예술학교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불쾌함을 넘어서서 폭력이 되는 말들이 웃음으로 무마되며 어물쩡하게 넘어갈 때, 과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2015년, 21세기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계몽은 필요하다.

 

신성현·안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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