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인류를 바라보다

과학은 인류에 대해 어떤 성찰을 제공할까?

 

푸른 점 지구 (출처: NASA)
푸른 점 지구 (출처: NASA)

 

지구가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지던 시절, 인류는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도 특별한 신의 축복을 받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시절로부터 아득히 멀어져서,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우주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작은 지구의 역사 중에서도 인류는 아주 찰나의 순간을 살고 있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 시계로 바꾼다면 인류는 고작 1분 전에 등장했다는 유명한 비유도 있다. 그렇지만 당신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비록 이 순간만이라도 우리는 지구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지구의 역사에서 이만큼이나 영향력을 발휘했던 동물은 인간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이 인류를 오만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과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인간은 정말로 우월하고 특별한 종일까?

 

하지만 실제로 과학이 제공하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성찰은 오히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지구는 언제나 박테리아의 시대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인류의 생명력은 어느 환경에서나 번성하는 박테리아의 생명력과 수많은 개체 수에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가 진화적으로 우월한 생명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현존하는 생명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지구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은 ‘성공한’ 진화의 산물이다. 다윈 이전에는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특별한 존재라고 여겨졌다면, 진화론 이후에는 우리 인간들 역시 원숭이, 코끼리, 돌고래, 개미, 심지어 대장균과도 같은 조상을 공유하는 수많은 생물 가지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인 구달
제인 구달

 

누구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가지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는 독특한 동물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인간적이라고 여기는 가치들은 다른 동물들에게도 자주 발견된다.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은 수십 년간 침팬지들과 함께 지내며 침팬지의 사랑, 가족애, 질투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발견한 바 있다. 또한 침팬지가 흰개미 사이에 적당한 굵기와 길이의 나뭇가지를 넣어 흰개미를 낚시하는 모습, 나뭇잎을 씹어서 뱉은 후 일종의 스펀지를 만들어 물을 축여 먹는 모습 등을 관찰하여 보고함으로써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동물이라는 오래된 생각에 종말을 고했다.

 

또한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최근 이루어진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역시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두 마리의 원숭이를 투명한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에 넣은 다음,특정 행동을 하면 먹이를 주는 실험을 반복했던 것이다. 이때 처음에는 똑같이 오이를 나누어 주다가 중간부터 한 원숭이에게만 원숭이들이 더 좋아하는 먹이인 포도를 주었다. 그러자 그것을 투명한 벽을 통해 본 다른 쪽의 원숭이는 더 이상 오이를 받는 것을 거부하고 화를 내며 오이를 실험자에게 내팽개쳤다. 원숭이들 역시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라는 다소 고차원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누구는 또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만이 지구의 환경을 개척하고 많은 건축물과 예술작품 등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가?” 분명 인류가 만들어 낸 현대 문명이 대단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구에 미친 영향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앨런 와이즈먼의 인간 없는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인류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과연 지구에 남은 인간의 흔적들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상상을 과학적 근거를 들어 전개해나간 책이다.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놀랍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인류가 사라진지 천 년도 채 되지 않아 우리의 공산품이나 건축물과 같은 흔적들은 대부분 사라지게 된다. 인류의 활동으로 증가한 이산화탄소 농도와 중금속, 그리고 녹슨 청동기 정도만이 지구가 인류를 기억하는 몇 안 되는 흔적일 것이다. 한때 지구를 점령했던 공룡들도 이제는 화석과 발자국만으로 남아있는 것을 본다면 인류 역시 지구에 그렇게 큰 흔적을 남기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수십만 년이 더 지나면 인간의 흔적은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라디오 전파 외에는 남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 라디오 전파를 따라 지구 밖으로 눈을 돌린다면, 인간이 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고 외로운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본인의 저서 중 한 권에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는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벗어나면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진에는 정작 지구라고는 아주 작고 희미한 점 밖에 보이지 않는다. 보이저 1호의 눈으로 작은 점 지구를 바라보면, 우리가 오늘 고민했던 그 많은 일들이 우주의 관점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연히 들게 된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 대해 말했던 대목을 함께 보자.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이 창백한 푸른 점보다, 우리가 아는 유일한 고향을 소중하게 다루고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우리는 우주의 티끌 만한 행성 위에서 그나마도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연한 진화의 산물로 등장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과학은 인류를 한 발짝 떨어져서 성찰하게 하는 놀라운 시선을 제공해준다. 우리가 우주에서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하더라도, 인류의 가치가 빛을 잃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보다 우월하거나 우주에서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은 아니니까. 지구와 우주를 바라보며 우리의 존재에 대해 성찰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시와 그림을 남기고, 다른 이들을 ‘인간이기에’ 존중하고 사랑하며 살다가 언젠가 과거의 수많은 동식물들이 그랬듯 자연히 찾아올 끝을 맞이한다면, 우주는 희미한 라디오 전파만으로라도 우리를 기억해주지 않을까.

 

김초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