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해프닝이 아니다

‘레진코믹스 유해사이트 차단 사건’은 어디서 왔는가

 

방심위의 차단 조치에 대해 'http://warning.or.kr'를 패러디한 레진코믹스
방심위의 차단 조치에 대해 ‘http://warning.or.kr’를 패러디한 레진코믹스

 

“유해사이트 레진코믹스가 실시간검색어 1위를 기념하여 9900원부터 보너스코인 추가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지난 3월 26일 웹툰 전문 연재 서비스인 ‘레진코믹스’가 SNS와 해당 사이트에 올린 문구다. 이날로부터 하루 전인 3월 25일, 레진코믹스의 웹사이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의해 http://warning.or.kr(불법 유해 정보 사이트에 들어갈 시 리다이렉트되는 차단용 사이트)로 연결되며 접속이 차단되었다. 즉 해당 조치에 대한 자조적인 이벤트인 셈이다.

 

 

레진코믹스는

 

레진코믹스는 웹툰 및 출판만화를 연재·게재하는 한국의 부분유료제 웹툰 전문 서비스다. 2013년 6월 7일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개장을 시작으로 iOS 애플리케이션, 웹사이트를 차례차례 개장하면서 서비스를 운영해 나갔다. ‘네이버 웹툰’, ‘다음 만화속세상’ 등 대형 포털 웹툰 연재처가 폭넓은 연령층의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웹툰을 주로 연재하는 데 반해, 레진코믹스는 ‘성숙한 독자를 위한 어른의 만화 서비스’를 모토로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연재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대형 포털사이트에서 거의 연재하지 않았던 성인만화, BL(Boys’ Love, 남성과 남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 백합물(여성간의 동성애 혹은 연애감정에 가까운 강한 우정을 다루는 장르)이 여러 편 연재되고 있다. 특히 성인만화와 BL 작품 다수가 레진코믹스 요일별 웹툰 인기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이들 웹툰은 유료 혹은 부분 무료로 제공된다. 레진코믹스 측에서 공개한 바에 따르면 현재 서비스 가입자 수는 약 700만명에 달한다.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글로벌 K-스타트업 프로그램 2013’에 선정되었고, 2014년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을 받은 바 있다.

 

 

차단 조치, 납득할 수 있나

 

그런데 지난 3월 25일 앞서 말한 ‘레진코믹스 유해사이트 차단 사건’이 벌어졌다. 남녀의 성기노출 및 성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정보를 제공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제1항제1호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한 방심위가 제22차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시정요구인 ‘접속차단’을 의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진코믹스 운영진은 이 조치에 대해 아무런 사전 통지를 받지 못했다. 급작스러운 차단 조치로 인해 과잉 규제 논란 여론이 일었다. 그리하여 방심위는 2시간 20분 만에 회선 차단을 해제하며 차단 조치를 보류했고, 이틀 뒤인 26일에 진행된 방심위 제23차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방통위는 시정 요구를 철회하기로 의결했다.

 

장낙인 통신심의소위원회 소위원장은 “국내 웹툰작가들의 만화는 문제 삼을 내용이 없지만 일본만화의 경우 음란물 혹은 청소년유해물인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많은 음란정보 건을 처리하던 중 한꺼번에 처리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레진코믹스 사건’은 해프닝처럼 끝났다. 그러나 단순히 격무에 시달리다 벌어진 방심위의 실수라고 말하기엔 많은 문제점이 존재할 따름이다. 레진코믹스는 해외 서버를 이용해 컨텐츠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차단당했다. 그러나 레진코믹스는 국내에 법인을 두고 있는 한국 기업이다. 호스팅 서버로 해외 서버인 구글을 통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contents delivery network)로는 국내 서버인 LG U+를 사용하고 있다.

 

사전 통보 없는 차단조치가 문제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방심위는 차단조치를 취할 때 통보 혹은 의견 진술을 해야 하지만 ‘음란물 등 불법성이 명백한 정보’는 예외의 경우로 두고 있다. 방심위 청소년보호팀 정혜정 팀장은 3월 26일 공개된 언론사 디지털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레진코믹스를 차단한 이유로 “성행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성기가 등장하는” “일본의 음란만화”를 “미성년자도 본인인증을 하면 성인만화를 볼 수 있도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레진코믹스는 성인만화에서 성기 노출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하고, 성인인증을 분명히 거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레진코믹스가 수입해 게재하는 일본 만화는 한국 법률상 음란물로 취급하지 않으며 정발 및 직수입이 가능한 ‘라이트 에로’에 속하는 성인물이기 때문에 제재 권한이 없다.

 

사건 이후 레진코믹스는 웹사이트에 성인만화 on/off 기능을 달았다. 사진은 on 상태
사건 이후 레진코믹스는 웹사이트에 성인만화 on/off 기능을 달았다. 사진은 on 상태

 

 

음란한 전기통신?

 

그러나 방심위는 4월 9일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레진코믹스의 콘텐츠 중 8개의 만화에 대한 제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재차 밝혔다. 같은 달 28일에 열린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레진코믹스는 심의 대상 만화 8개 중 3개를 자체 판매 금지하는 등 방심위와의 협의를 통해 자율 규제를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런 ‘자율 규제’ 방침은 위원회에서는 꽤나 이례적인 결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방심위가 그동안 받아온 비판, 특히 유해사이트 차단 조치에 대한 비판에 대한 응당한 대안이 될지는 의문스럽다.

 

방심위는 2008년 5월 민간 독립기구를 표방하며 출범하였다. 대통령 직속인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심의를 하지 못하도록 독립기구를 표방한 것이다. 그러나 방심위는 민간기관을 표방하면서도 심의위원 및 심의위원장을 대통령이 위촉한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방심위를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국가행정기관으로 인정한 판례가 있어(2011헌가13,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호 위헌제청) 방심위의 기구 성격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방심위가 기준으로 하는 법률의 모호함이 가장 큰 문제로 남아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 ‘불법정보’의 대상은 총 9가지다. 레진코믹스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 중 첫번째 항목인 ‘음란한 전기통신’이다. 헌데 이 항목의 기준이 불명확한 것이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이 ‘음란함’에 대해 명확히 고지해 둔다. 예를 들어 일본의 법률은 실존하는 현 시점이 아닌 영상물 촬영 당시 18세 미만의 아동을 모델로 성행위를 담은 모든 매체와, 실제 성기를 성적 만족감을 위해 직접 노출할 경우에는 불법적인 음란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이외는 음란물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고시하고 성인여부를 확인한다면 불법 음란물로 처리하지 않는다. 그저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이라고만 적어 둔 한국의 법률과는 대조적이다. 애매모호한 법률로 인해 해석에 따라 적용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위험성을 가지는 것이다.

 

2006년에 있었던 헌법재판소 위헌소원(2006헌바109,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5조 제1항 제2호 위헌소원)에서는 음란이라는 개념은 시대에 따라 유동적이고 상대적이므로 법관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모호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국가기관의 자의적인 검열에 의해 특정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은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의 김광진 의원이 레진코믹스 차단에 대한 법률개정을 제안하며, 여야가 찬성해 김광진 의원 외 10명이 3월 26일 법률개정안을 발의해 현재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심사 중에 있다.

 

 

이 사건은 해프닝이 아니다

 

끝으로, 레진코믹스 사건은 한국에서 1961년부터 90년대 말까지 시행된 ‘만화검열제’를 떠올리게 한다. 이 검열제에는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을 하면 안 된다’, ‘남매가 한방에서 자는 장면을 그리면 안 된다’ 등이 검열 항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만화검열제는 사전에 만화를 검열해 해당 시대의 정권에게 있어서 ‘불량’하다고 여겨지는 만화를 통과시키지 않은 것이고, 레진코믹스는 사전에 검열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두 방향은 매우 다르다. 그러나 (타당하진 않더라도) 구체적인 검열 항목을 가지고 있었던 만화검열제가, 실질적으로 검열의 잣대가 멋대로 적용되었다는 사실은 묘한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극단과 극단은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애매한 법률과 기관의 불분명한 조치 속에서 콘텐츠 제공자와 소비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서 ‘레진코믹스 사건’은 절대 해프닝이 아니다. 해프닝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안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