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둥지들 (2)

서울의 대안적 미술 공간 탐방

 

지난 호에서 다뤘던 ‘커먼센터’와 ‘교역소’(<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제246호 ‘젊은 예술가의 둥지들 (1)’ 참조)에 이어 이번 호에서도 마찬가지로 2014년을 기점으로 생긴 미술공간에 대해 알아본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하기도 하겠지만 아직 이곳들을 모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울 구석구석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이 미술공간들의 큐레이터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3. 시청각

 

시청각에 가기 위해선 먼저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골목 오른쪽엔 어느 집이 있다. 얼핏 보면 평범한 가정집 같은 이곳이 바로 시청각이다. 자세히 보면 대문의 왼편에 ‘시청각’이라고 팻말이 붙어있다. 전시 중엔 대문이 열려있으니 우리는 그냥 들어가서 전시를 보면 된다. 그러니까, 시청각은 디귿자 형태의 한옥인 전시공간이다.

 

시청각은 큐레이터 현시원 씨(미술원 미술이론과 전문사 졸업)와 에디터 안인용 씨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이화여자대학교학보사 동기로 만나 2006년에 ⟪워킹 매거진(Walking Magazine)⟫을 창간하는 등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해왔다. 그러던 중, “‘보고 싶은 것’을 직접 만들어내고, 작가와 기획자의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시각문화의 한 형태를 만들고자 ‘시청각’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큐레이터 현 씨는 말했다.

 

‘커먼센터’나 ‘교역소’와 마찬가지로, 시청각 역시 이름만 들어선 무얼 하는 곳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시청각에선 간혹 이 묘한 이름 때문에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벌어지기도 한다. 시청각 문서 4호 ‘어느 전시장 지킴이의 일일’에선 전시장 지킴이가 “시청각에 해산물 납품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를 받은 일화가 그려져 있다. “‘~각’이란 이름은 중국음식점이나 기와지붕의 한식점으로 예상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시청각’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시각문화 안팎의 ‘현실’을 찾아내고 기록하며 만들고자 하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고 현 씨는 말했다. “시각문화, 시각예술은 비단 미술작가의 그림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음악, 퍼포먼스,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시공간의 예술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청’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지향점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며 “’각’은 시청각이 위치한 한옥이라는 형태를 보여준다”고 했다. “1947년에 지어진 이 건물을 통해 주거 공간으로서의 한옥의 물리적 형태를 유지”하며 “현실과 분리되지 않는 예술 공간으로서 기능하고자 한다”는 취지에서다.

 

잭슨홍 개인전 ⟪체리 블라썸(Cherry Blossom)⟫의 택배기사 모형
잭슨홍 개인전 ⟪체리 블라썸(Cherry Blossom)⟫의 택배기사 모형 (사진 제공: 시청각)

 

이곳은 누구의 집인가

한옥 형태인 시청각은 작은 마당과 세 개의 방, 문간방, 부엌, 세탁실 그리고 옥상으로 구성된 건물이다. 실제로 이 건물은 이전에 주거공간으로 사용된 바 있다. 또, 시청각이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공동운영자인 현시원 씨와 안인용 씨의 주요 동선 안에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이곳을 “찾아오거나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거주하고 있는 공간 안에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 지역에서 두 사람과 교류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현 위치에 정착하는 데에 한 몫 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한옥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주변 공간을 살펴보던 중에 우연히 발견한 곳이 한옥이었고, 처음 이 건물을 보았을 때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있고 이야기가 스며있는 주거공간이라는 점, 그리고 어느 곳 하나 똑바르지 않고 조금씩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잘 맞다고 생각해 바로 이곳을 결정했다고 한다.

 

사람 크기의 인체 조형이 한옥 방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
사람 크기의 인체 조형이 한옥 방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 (사진 제공: 시청각)

 

롤모델은 없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시청각의 시작이 ‘전시공간 운영’이 아닌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거점 만들기’에 있었다는 것이다. 큐레이터 현시원 씨는 “시청각은 전시공간인 동시에 기획자 집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현 씨는 이어서 “전시공간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단 어떤 전시를 할 것인지를 더 많이 고민했기에 다른 전시공간을 롤모델로 삼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기획자 집단으로서도 꼭 롤모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기에 별도의 사례를 참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간의 문을 여는 데 필요한 자금 역시 운영자들의 개인 자금으로 충당했다. 전시에 필요한 자금은 지원 기금 등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시에서 책이나 작은 굿즈(지금 잭슨홍 개인전 <체리 블라썸(Cherry Blossom)>에선 ‘코인’을 판매 중이다) 등을 자체적으로 제작해왔기에 이 부분의 판매 수익은 모두 공간 운영을 위한 자금으로 쓰여진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행동이 묘사된 조각상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행동이 묘사된 조각상 (사진 제공: 시청각)
인형에 눈을 붙이는 노인 모형
인형에 눈을 붙이는 노인 모형 (사진 제공: 시청각)

 

하고 싶은 것을 하기

현재 시청각에서 진행되고 있는 잭슨홍 개인전 <체리 블라썸(Cherry Blossom)>은 아쉽게도 오는 4월 26일에 막을 내린다. 그러니 실제 사람 크기의 인체 조형이 한옥 곳곳에 배치된 이 전시를 되도록이면 빨리 가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5월 14일 경 부터는 베트남인 전시 기획자와 함께하는 대담이 예정되어 있다. 이후 5월 중순부터는 ‘예술가/작가/디자이너에게 가르치기와 배우기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전시가 열리며, 6월에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기획자와 함께하는 전시가 있다. 8월에는 “여름이라는 계절과 밤이라는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탐구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될 예정이며 9월엔 강서경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다. 하반기엔 시청각이 기획하는 또다른 전시가 이어질 것이라니 과연 시청각은 운영자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곳임이 분명하다. 우리도 한번씩 이 한옥집을 찾아가면 계속되는 그들의 탐구와 ‘하고 싶은 것 하기’에 참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시청각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57-6

http://audiovisualpavilion.org

avpavilion@gmail.com

02-730-1010

 

 

4. 케이크갤러리

 

황학동 중고품시장엔 ‘중앙상가’라고도 불리는 ‘솔로몬 빌딩’이란 곳이 있다. 건물의 1층부터 5층까지는 골동품 상점, 가전 제품 수리장, 창고 등이 있고, 6층에 바로 케이크갤러리가 있다. 이곳은 한때 주거 공간이었다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하는 ‘솔로몬 아티스트 스튜디오’였다.

 

이곳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누군가’가 별도로 있지만 그는 일종의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전시 등의 기획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2014년부터 이 관리자의 요청으로 독립 큐레이터 윤민화 씨가 갤러리 운영과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윤 씨는 “본래 레지던시 프로그램 위주로 운영되던 공간을 2014년부터는 전시공간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전시기획을 제안 받았다”고 말했다. 이런 사연으로 케이크갤러리는 탄생했고, 그 이름은 부채꼴인 건물의 모양새에서 착안되었다.

 

김영은 공연  전경
김영은 공연 <맞춤 벽지 음악> 전경 (사진 제공: 케이크갤러리)
공연 을 보러 온 관람객들
공연 <맞춤 벽지 음악>을 보러 온 관람객들

 

케이크가 상하지 않도록

공간 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가장 큰 부분은 임대료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케이크갤러리는 공간 소유주로부터 제안을 받아 운영을 하게 된 경우라, 임대료가 따로 들지 않는다. 필수적으로 드는 전기세, 가스비, 인터넷 사용료 같은 여러 가지 비용도 관리자가 부담한다. 다만 큐레이터는 전시 운영비를 책임져야 한다. 윤민화 씨는 “주로 연말에 미리 다음 해에 열릴 전시를 기획해서 문예진흥기금, 서울문화재단 등의 공적 자금에 기금을 신청하고 있다”며 “평균 연당 4회 정도의 전시를 지향하는데 공적 기금의 수혜를 받으면 그대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시 비용이 부족하면 전시 자체를 취소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일단 어떤 식으로든 자금을 마련해 전시를 하게되면 전시에 필요한 기타 비용과 아티스트 피(artist fee‘아티스트 피’라는 말을 적절하게 번역한 공식명칭 같은 건 아직 없다. 그러나 작가의 작업과 창작물에 대해 표하는 ‘최소의 성의 표시’를 뜻할 수 있겠다. 전시의 규모나 방식에 따라 그 액수나 지급 방법이 다르다.) 정도는 해결된다. 그러나 “기획자에게 돌아가는 기획비는 따로 책정하기 힘들어 어려움이 있다”며 윤 씨는 “이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박아람 개인전 ⟪자석 올가미 측량⟫ 전경 (사진 제공: 케이크갤러리)
박아람 개인전 ⟪자석 올가미 측량⟫ 전경 (사진 제공: 케이크갤러리)

 

필연적 중앙상가

지난 2014년 11월에 진행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야기가 있는 사진관’은 케이크갤러리가 위치한 황학동의 상인들의 사진을 찍고 인터뷰한 것의 결과물이었다. 윤민화 씨는 “예술이 반드시 지역이나 장소에서 이질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며 “만약 어떤 작가든 장소 기반의 작업을 지향하는 경우에는 타당한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이어 “특정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지역과 반드시 연계되는 예술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작업을 통해서 장소와 작가 사이에 어떤 내적 필연성이 형성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 경우는 개인의 역사와 장소가 갖는 공적 역사가 잘 맞물린 경우였던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케이크갤러리가 위치한 건물은 말 그대로 시장의 ‘중앙상가’ 건물이고, (아마도) 황학동 중고품 시장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고 한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작가들이 드나들기 훨씬 전부터 상인들은 그 건물과 오랜 시간을 함께했단다. 한때 이곳은 “황학동 시장의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황학동은 점점 노후지역이 되었고 시장도 예전처럼 활발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미술을 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하게 됐다. 그런 맥락들 가운데서 프로젝트 ‘팀 황학동’이 진행되었다”고 윤 씨는 케이크갤러리가 가진 특성에 기반한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싹트는 기획자를 위하여

올해 케이크갤러리에선 총 네 번의 개인전과 한 번의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다. 5월엔 조혜진 작가, 9월엔 정기훈 작가, 10월엔 차미혜 작가, 11월엔 이호인 작가 개인전이 있고, 12월엔 큐레이터 노해나 기획전이 열린다.

 

윤민화 씨는 “케이크갤러리가 기획자 중심의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며 “함께 할 기획자는 기관에 속했든 독립적으로 활동하든 아직 학위과정 중이든 상관 없다”고 말했다. 윤 씨는 이어서 “올해엔 큐레이터 노해나 씨와 함께 전시를 만들지만 내년에는 새로운 기획자를 초청해볼 생각”이라고 한다. “한예종 재학생들도 아직 실현되지 않은 채로 간직해온 기획서가 노트북에 저장돼 있다면, 그리고 그 전시가 케이크갤러리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기획서를 보내달라”고 윤 씨는 말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함께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케이크갤러리가 싹을 틔울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른다.

 

케이크갤러리

서울시 중구 마장로 3길 28 솔로몬빌딩 6층

http://cakegallery.kr

cakegallerykr@gmail.com

02-2233-7317

 

(문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