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에서 여성의 지평을 열기 위해

연극사에 배태된 여성 타자화 기제를 비틀자

 

연극 의 한 장면
연극 <열녀춘향>의 한 장면

 

연극사에서 여성은 오랜 시간 국외자와도 같았다. 남성 극작가에 의해 여성 인물이 대상화되는 것은 물론이었으며, 그마저도 남성 배우에 의해 재현되곤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많은 작품의 등장인물이 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만 배우를 할 수 있었다. 중세 가톨릭 교회는 연극을 신성을 모독하는 비도덕적인 행위로 규정하는 동시에 여성의 몸을 성애적 틀로 규정하였다. 그 때문에 여성의 공연 참여는 일종의 불경한 매춘으로 여겨졌으며, 여성은 오랜 시간 동안 수사학이나 글쓰기 훈련, 목소리 훈련이나 연극, 합창 등 문화 생산의 맥락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물론 10세기 중반에 이르러 흐로츠빗 폰 갠더쉐임이라는 최초의 여성 극작가가 등장하여 여성 연극의 선구자적인 집필을 한 바 있지만, 그 역시 20세기가 되어서야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여성 배제가 연극 본연의 특질은 아니다. 이는 연극사가 서구 문명사의 궤도를 충실히 따라갔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배태된 현상이다. 서구 문명은 오랜 시간 여성의 몸을 성애화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제했으며, 그들의 역할을 가부장적 편견을 그대로 투사하는 것에 머무르게 했다.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코이포로이)>, <자비로운 여신들(에우메니데스)>)은 연극이 여성을 타자화한 방식을 드러낸 전형적 예시라 할 수 있다. 클레테임네스트라는 남편 아가멤논이 전쟁을 위해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고, 전쟁이 끝나자 타국 여자인 카산드라를 전리품으로 데려온 것을 알고 분노하며 아가멤논을 죽인다. 이때 코러스들은 남성 주체인 아가멤논의 관점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아가멤논의 딸 살해나 전리품 여성에 대한 강간 행위에 대해 주목하기보다는, 아가멤논이 단지 일개 여성 때문에 전쟁에 나서야만 했고 끝내 여성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여성에 대한 혐오가 극작가가 의식하지 못한 층위까지 작동한 셈이다.

 

그래도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기원전 458년 고대 그리스에서 발표된 작품이다. 여자는 노예, 외국인과 함께 ‘시민’의 대열에도 끼지 못했던 시대에 발표된 것이다. 문제는 21세기인 지금까지 클레테임네스트라의 유령이 무대를 배회해왔다는 것이다. 극작가 중 여성의 비율은 낮았으며, 여성 배우의 역할 역시 한정적이었다. 게다가 수많은 연극은 여성 혐오뿐 아니라 여성 숭배를 통해서도 타자의 문제를 부각했다. 여성 숭배는 표면적으로는 여성 혐오에 대치되는 개념 같지만, 여성을 극단적으로 타자화한다는 점에서 여성 혐오의 본질을 공유한다.

 

다행히 근대를 기점으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연극들이 조금씩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때 여성 연극은 여성의 이동이 억압받던 상황을 고려하여 귀부인들의 사교 응접실에서 상연되었지만, 여성주의 제2의 물결이 널리 퍼지던 1960년대부터는 연극이 본격적으로 여성주의와 결합한다. 특히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가 여성의 역할을 ‘성애’에 한정시켰던 것에 문제의식을 두고, <여성 연극은 훌륭해>와 같은 극단을 만들어 여성의 몸에 대한 가감 없는 질문을 던졌다. 급진주의 여성 연극인들은 자신의 몸 여러 부분을 직접 만지거나, 강간 경험에 대해 토로하거나, 낙태 권리를 다룬 내용을 무대에 올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김현탁 연출의 <열녀춘향>이 여성 타자화의 문제를 재치있게 비틀며 주목을 받았다. <열녀춘향>은 기존의 ‘열녀(烈女)’라는 단어에 언어유희를 적용해 10명의 여성을 소개한다. 무대에는 차례대로 10명의 ‘춘향이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각각 남성의 판타지를 재현한다. 각각의 춘향은 춤을 추기도 하고, 요리를 하기도 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하고, 가학적인 행위를 견뎌내며 정조를 지키기도 한다.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들은 소녀시대의 안무를 거꾸로 춘 다음 하이힐을 벗어 던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수많은 매체가 여성을 욕망한 방식을 비틀어 풍자한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연극은 여성을 국외자의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수많은 연극영화과에서 단지 ‘외모’만으로 여학생을 합격시키기도 한다는 것은 암암리에 퍼진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클레테임네스트라와 춘향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극 내 여성의 역할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장래 여성 연극의 지평을 여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권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