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비평
2015년 4월 6일

‘거의 모든’ 한글 서체를 디자인한 사람

한글 서체 이야기 (2)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

 

사람들에게 디자이너 최정호를 아느냐고 물었다. 몇몇 디자인 전공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그를 모른다고 답했다. 디자인 전공자 중에도 그를 모른다고 한 이들이 더러 있었다. 물론 국내에서 그래픽디자이너가 유명을 떨치는 일이 흔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곳곳에서 그의 유산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탕체, 고딕체, 굴림체. 이것이 그가 남긴 유산의 이름이다.

 

이 서체들은 타이포그래피나 그래픽디자인에 문외한인 이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서체이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서체들이다. 출판물 대부분이 바탕체 또는 바탕체의 형태를 근간으로 한 명조체를 본문용 서체로 사용하고 있다. 고딕체도 바탕체와 마찬가지로 널리 쓰이는 서체다. 고딕체는 주로 포스터나 프레젠테이션용 슬라이드 그리고 간판 신문과 잡지 등에 사용된다.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공문서에는 대부분 굴림체가 쓰인다. 그러므로 최정호가 남긴 유산들이 읽는 행위와 시각 매체의 표면을 대부분 점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그는 시각 문황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는 않았다.

 

최정호가 디자인한 고딕체 구조도

최정호가 디자인한 고딕체 구조도

 

 

글씨 잘 쓰는 소년, 서체디자이너를 꿈꾸다

최정호는 1916년 11월 30일 충북 영동군 추풍령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 할머니, 삼촌 등 집안사람들이 모두 서예에 능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최정호는 자연스럽게 서예를 접할 수 있었고, 이것은 후에 그가 서체 디자이너로서 성장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은행원이었던 최정호의 아버지는 출근 전 그에게 글자 쓰는 것을 숙제로 내주고 퇴근 후 그 성과를 검사할 정도로 아들의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처음에 최정호는 이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곧 재미를 느낀 뒤 정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공립보통학교에 다닐 때는 글씨를 너무 잘 쓴 탓에 글씨 쓰기 숙제를 부모가 대신 해주었다는 오해를 받고 담임선생에게 뺨을 맞았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최정호는 어릴 적부터 상당한 달필이었던 것 같다.

 

1934년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까지 그는 대구의 인쇄소에서 미술부 도안사로 일했다. 그때 최정호는 주로 석판 인쇄용 문자를 그리는 일을 했다. 이후 그는 인쇄소 사장의 추천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의 나이 스물 여덟 때였다. 최정호는 낮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밤에는 요도바시 미술학원에서 수학하며 유학생활을 보냈다. 그는 인쇄소에서는 석판 인쇄, 오프셋 인쇄, 그라비아 인쇄 등의 기술을 배웠고, 석판 인쇄 전문업체였던 풍문관 인쇄소부터, 고쿠라 인쇄소 등 여러 인쇄소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인쇄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글자의 형태가 아름답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그는 일본 유명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 광고의 완성도 높은 활자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때 그는 한글을 시세이도 광고 활자만큼이나 아름답게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최정호가 디자인한 명조체 구조도

최정호가 디자인한 명조체 구조도

 

귀국, 그리고 민간 최초의 한글 원도활자 동아출판사체 제작

1940년 귀국한 최정호는 1942년 대구에서 ‘삼협미술사’를 차린다. 손글씨가 뛰어났기 때문에 학교 교재나 입학시험 문제지 등을 등사해 주는 일을 맡기도 했다. 1949년에는 ‘삼협정판인쇄사’라는 종합인쇄소를 차린다. 이 인쇄소는 프린트, 석판, 옵셋, 동력 인쇄기 등이 설치된 상당히 규모 있는 인쇄소였다. 그러나 이듬해 발발한 6∙25전쟁으로 인해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대구로 돌아오게 된다. 전쟁 후에도 그는 제목용 문자를 도안하는 등 서체 디자인에 관련된 일에 종사했다.

 

최정호활자서체연구소. 동아출판사체를 개발할 때 서체를 연구했던 곳이다.

최정호활자서체연구소. 동아출판사체를 개발할 때 서체를 연구했던 곳이다.

 

1955년 최정호는 서체 디자이너로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가 디자인한 최초의 원도 활자이자 민간 최초의 한글 원도활자인 동아 출판사체 제작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당시 동아출판사의 김상문 사장은 기존 활자를 개혁하는 것이 인쇄 시장에서 성공을 담보한다고 여겼다. 그는 동아출판사에 벤턴자모조각기(자모조각기: 원도를 바탕으로 서체를 깎아주는 기구)를 들여오면서 최정호에게 한글 원도 제작을 의뢰했다. 1956년에는 종로구 내수동에 ‘최정호 활자서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원도 개발을 지원했다. 최정호는 이러한 지원 아래 1957년 3월 동아출판사체를 완성한다. 이 서체는 높은 완성도와 서체 자체가 가진 미감 덕분에 인쇄업계의 호평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동아출판사는 동아출판사체 덕택에 국내 굴지의 출판사로 부상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은 당시 인쇄기술에 상당한 혁신을 가져왔고, 당시 출판사들이 활자 개혁과 서체 개량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활자 개혁은 민중서관, 대한교과서, 삼화, 광명, 평화 등 여러 업체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는 60년대 초 왕성한 전집물을 제작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동아출판사체로 인쇄된 사전

최정호가 디자인한 동아출판사체로 쓰여진 사전. 사전은 제목 부분이 고딕체로, 본문이 바탕체로 쓰였다.

최정호의 동아출판사체

동아출판사체로 쓰여진 책

 

사진식자용 서체를 개발하다

1950년대 초 사진식자기가 도입되면서 인쇄업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사진식자는 사진기와 타자기의 원리를 응용한 인쇄 도구로, 네거티브 필름과 유리 글자판을 만든 다음 렌즈를 통해 글자를 확대 혹은 축소하여 인화하는 방식이다. 서체 변형이 비교적 자유로워 활판 인쇄보다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사진식자기 도입 초기에는 한글 글자판이 없어 사용도가 낮았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 일본 사진회사인 모라사와는 최정호에게 사진식자 전용 한글 원도 개발을 의뢰하게 되면서 국내에서도 사진식자기를 활용한 인쇄가 가능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모라사와의 경쟁사였던 샤켄에서도 최정호에게 원도 제작을 의뢰했다.

 

최정호는 활판인쇄를 위한 원도 제작에는 익숙했지만, 사진 식자용 원도를 제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때문에 사진식자용 원도 제작을 다시 익혀야 했다. 사진식자 인쇄는 이전과는 달리 잉크의 번짐이 적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했다. 최정호는 1971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에 있던 모리사와에 가서 사진식자 관련 기술을 배우고 한글 원도를 제작했다. 1972년부터 최정호는 모리사와 명조체와 고딕체를 세, 중, 태, 견출의 네 가지 굵기로 설계했다. 샤켄 역시 최정호를 통해 명조체, 고딕체, 굴림체, 그래픽체, 공작체 등 많은 종류의 글꼴을 제작했다. 특히 모리사와와 샤켄에서 제작된 명조체와 고딕체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명조체와 고딕체의 형태적 뿌리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또한, 이 시기 샤켄에서 발매된 나루체는 훗날 한글에 맞게 제작되는데 이것이 바로 굴림체다.

 

나루체

나루체

 

굴림체.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각종 공문서에 사용된다. 보통 일본의 샤켄 사에서 디자인한 나루체를 본떠 만들었다고 하여 몇몇 디자이너들이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으나, 샤켄 사의 나루체는 최정호가 디자인한 것이다.

굴림체. 주민등록등본을 비롯한 각종 공문서에 사용된다. 보통 일본의 샤켄 사에서 디자인한 나루체를 본떠 만들었다고 하여 몇몇 디자이너들이 사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으나, 샤켄 사의 나루체는 최정호가 디자인한 것이다.

 

마지막 작업, 초특대고딕체와 최정호체

최정호는 말년에 견출고딕보다 한 단계 굵은 초특대고딕을 개발했다. 이것은 당시 제목-디스플레이용 서체의 자족을 늘릴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마지막 작업인 최정호체는 디자이너 안상수의 의뢰로 개발되었다. 최정호는 타계하기 직전인 1988년에 서체를 완성하는데, 안상수는 최정호가 죽고 난 뒤에 이 서체에 최정호의 이름을 붙인다. 많은 서체를 디자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최정호가 서체에 그의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최정호체는 기존의 명조체와 비슷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가로 너비가 좁고 글자 줄기는 조금 두껍게 설계되었다.

 

최종호가 말년에 개발한 서체다. 견출고딕보다 굵기가 한 단계 더 굵다.

초특대고딕. 최종호가 말년에 개발한 서체다. 견출고딕보다 굵기가 한 단계 더 굵다.

 

최정호의 마지막 작업인 최정호체

최정호의 마지막 작업인 최정호체

 

최정호가 남긴 유산 아래서

신명시스템즈가 개발한 디지털 글골인 SM명조와 고딕은 최정호의 원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한, SM명조를 형태적 뿌리로 둔 SM신신명조를 개발할 때는 한양시스템즈가 외주 제작사로서 참여하는데, SM서체에 영향을 받게 된다. 최정호 원도가 형태적 기반이 되는 SM명조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곧 최정호 원도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한양시스템즈가 개발한 글꼴과 그들이 마이크로소프트에 공급한 바탕 등도 최정호 원도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애플 고딕과 명조 또한 최정호 원도의 영향을 받았다 한다. 현재 사용하는 대부분의 서체가 최정호가 개발한 원도는 현재 사용하는 대부분의 서체의 기원인 셈이다. 그 밖에도 최정호는 그래픽디자이너 특히 편집디자인에 종사하는 들이라면 누구나 계명처럼 외우고 있는 ‘공기 같은 본문 서체(서체의 형태가 독자의 읽는 행위를 방해하지 않고 글의 내용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서체를 말한다. 이러한 서체는 서체가 지닌 조형적 개성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의 개념을 제시하고 글꼴 복제에 관한 법규 마련을 주창하는 등 중요한 개념과 논의를 남기기도 했다. 이와 같은 최정호의 유산은 많은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현재 활동하는 그래픽디자이너 중 상당수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으며, 그가 남긴 자산을 바탕으로 하여 서체를 디자인하고 있다.

 

애플고딕 또한, 최정호가 만든 고딕체 원도를 형태적 뿌리로 한 서체다.

애플고딕 또한, 최정호가 만든 고딕체 원도를 형태적 뿌리로 한 서체다.

 

바탕체와 한컴바탕체. 최정호가 만든 바탕체를 형태적 뿌리로 한 서체들이다.

바탕체와 한컴바탕체. 최정호가 만든 바탕체를 형태적 뿌리로 한 서체들이다.

 

(강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