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둥지들 (1)

서울의 대안적 미술 공간 탐방

 

2014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미술 공간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곳들을 섣불리 ‘대안공간’이라 부르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90년대에 생겨난, 대안공간이라 불렸던 곳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지점은 명확하기도 하고 모호하기도 하다. 대부분 문을 연 지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공간들이 어떻다고 단정하기엔 아직 이를 것이다. 그런데 문을 연 이래 계속 뭔가를 보여주고 있는 이곳들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늦추기가 어렵다. 이번호부터 다음호까지 문화면에선 서울의 대안 미술공간 네 곳을 살펴본다. 이제 이 젊은 공간들을 하나씩 알아보자.

 

 

1. 커먼센터

 

‘커먼센터’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다면 ‘여기가 과연 뭘 하는 곳일까?’ 하는 질문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예술’, ‘창작’, 또는 ‘갤러리’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으니, 이름만 들으면 미술 공간이라고 짐작하긴 쉽지 않다. 웹사이트 소개 글엔 “우리나라 미술계의 현재를 생각해보면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공간에 미술관이나 갤러리(혹은 대안공간)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워지고자 ‘센터’라는 명칭을 달았다”고 씌어있다. 하지만 커먼센터 큐레이터 권순우 씨는 “(커먼센터가) ‘대안공간’이라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며 어떤 한 방향으로 규정되기를 거부할 뿐, 이곳이 가진 다양한 특성을 모두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커먼센터를 운영하는 관계자들과 이곳을 많이 찾는 사람들은 ‘커먼센터’라는 고유명칭 대신, ‘회사’나 ‘학교’처럼 ‘센터’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커먼센터 옥상에서 바라본 영등포 풍경
커먼센터 옥상에서 바라본 영등포 풍경

 

먼저, 이곳이 위치한 영등포엔 묘한 분위기가 있다. 롯데백화점과 연결된 영등포역에서 나오면 영등포 우체국과 함께 고시원, 직업소개소, 다방, 그리고 심지어 ‘뼈 접골원’이라고 나무 문패가 붙은 곳을 볼 수 있다. 커먼센터 옥상에 올라가면 그 주변 환경이 훤히 보인다. 이 ‘센터’를 중심으로, 오른편엔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멀티플렉스 영화관인 씨지브이가 있으며, 복합쇼핑몰 타임스 스퀘어와 신세계 백화점이 붙어있다. 그리고 마치 그들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들을 등진 판자건물과 빨간색 지붕을 단 성매매 업소들도 보인다. ‘센터’의 왼편엔 고층 아파트 건물이 줄지어져 있는데, 그 앞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와 컨테이너들이 보인다.

 

지난 3월 18일에 찾아간 커먼센터는 전시는 없었지만 무언가를 준비하는 분위기 때문에 예상했던 것만큼 조용하지 않았다. 관계자들은 미팅과 내부 정리 등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큐레이터 권순우 씨는 1층부터 2층, 3층, 4층 그리고 옥상까지 한 곳 한 곳 보여주었다. 마치 여관을 연상시키는 커먼센터 건물은 원래 상가였다고 한다. 공간이 필요하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는 이 ‘폐허’는 디렉터 함영준 씨,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 씨와 김형재 씨, 그리고 미술가 이은우 씨가 주축이 되어 ‘커먼센터’가 되었다.

 

 

오늘의 미술, 오늘의 미술가들

개관전 《오늘의 살롱》 이후, 커먼센터라는 물리적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늘의 살롱》은 69명의 작가가 참여해 150여 점의 회화작품을 선보인 전시였다. 큐레이터 권순우 씨는 “공간의 특성을 살리려는 의도가 없었던 건 아닌데 그림보다 공간이 더 두드러진 점이 없지 않아 그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 공간이 워낙 인상적이다 보니 이곳을 찾아오는 관객들이 작품만큼이나 공간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가 언제 벽지 대용으로 붙여졌던 것 같은 신문지의 흔적 옆에 걸린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개관전 이후에 열린 전시로는 우리나라 사진가 19명의 사진을 보여준 《스트레이트》, 큐레이터 집단 유능사의 기획으로 안규철에서 이자혜까지 기성작가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은 《청춘과 잉여》 등이 있었다.

 

또, 《We Love to Design in the Sun》이란 제목의 조금 특이한 전시도 있었다. 기존에 활동하는 작가가 아닌, ‘칼 아츠’로 잘 알려진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학생들이 디자인한 포스터를 내건 전시였다. 큐레이터 권순우 씨는 “국내에선 졸업전시회 등에 가면 학생작품을 볼 수가 있지만, 해외 학생작품을 볼 수 있는 경로는 거의 없다. 그런데 마침 국내 대학에 방문하는 칼 아츠 학생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를 하게 됐다”고 전했다.

 

 

내일의 커먼센터

이제 문을 연 지 1년 남짓 된 커먼센터는 그간 여러 차례의 전시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꽤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 때문인지 아직 발전하고 있는 단계임에도 “새롭게 생겨난 다른 대안적 미술 공간을 도와야 하거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인식”도 있는 것 같단다. 큐레이터 권순우 씨는 “사실 외부에서 보이는 것보다 매우 힘든 상황이다. 기금을 신청하면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고 했다. 또, 작품판매를 진행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기를 요구받는 등의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선 꾸준히 새로운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오는 4월 17일부터는 《혼자 사는 법(A Loner’s Guide)》이라는 제목의 ‘1인 가구’를 주제로 한 “전시와 체험과 강연이 결합한 어떤 것”이 열린다고 한다. 1인 가구에 걸맞은 “‘가구’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이 “어떤 것”이 과연 어떨지 기대되지 않는가.

 

 

커먼센터

서울시 영등포구 경인로 823−2, 150−034

WWW.COMMONCENTER.KR

INFO@COMMONCENTER.KR

+82−70−7715−8232

 

 

 

2. 교역소

 

조익정 작가의 영상 및 퍼포먼스 <너네가 너네>
조익정 작가의 영상 및 퍼포먼스 <너네가 너네>

 

트위터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만 홍보하고 있는 ‘교역소’는 상봉동의 한 자전거 및 캠핑용품 가게 2층 건물에 있다. 따로 간판도 없기에, 이곳을 찾아가려면 로드스타 자전거 가게 2층에 교역소가 있다는 걸 ‘믿고’ 올라가야 한다. 트위터 계정(@gyoyokso) 소개말엔 ‘상봉동에 있는 무슨 공간 교역소입니다’라고 씌어 있다. 미술 공간도 대안공간도 아닌 이 “무슨 공간”에서 전시와 퍼포먼스, 상영회 및 좌담회가 다양하게 진행된다.

 

교역소는 김영수 씨, 정시우 씨, 황아람 씨 3인이 운영하고 있다. 공간의 이름은 운영진의 취미생활 중 많이 주고받은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교역소’라는 용어는 온라인 게임과 보드게임 등에서 많이 쓰이는 말로, 역사적으로는 식민사회에서 경제적 침탈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뜻했다. 이 용어가 게임으로 넘어오면서는 시장과는 조금 다르지만,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는 곳을 의미하게 됐고, 그런 뜻에서 공간의 이름이 지어졌다.

 

운영진은 세 사람인데, 하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지는 않다. 운영자 황아람 씨는 시간이 나고 여력이 되는 사람이 알아서 일을 더 맡아 하는 편이라며, 평소에는 자기 생계를 위한 일을 하다가 시간이 나면 다시 합류하는 식으로 유기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모든 행사는 ‘이벤트’라고 불린다. 《상태참조》라는 제목으로 2014년 12월 13일부터 21일까지 열린 첫 이벤트에선 여러 장르의 작품이 선보여졌다. 독립영화와 미술 영상작품, 연극 기반과 무용 기반의 퍼포먼스를 비롯해 강연과 시 낭독 퍼포먼스, 워크숍까지 다룬 이 이벤트는 장르의 범위가 매우 넓었다.

 

 

주유소 지나서 보이는 자전거 가게

문을 열기 전, 교역소는 현재 위치가 아닌 다른 쪽에서 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벤트 한 달 전쯤에 갑자기 그곳을 못 쓰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미 작가 섭외는 어느 정도 된 상태였기에 운영진은 여기저기 공간을 알아봤다. 운영자 김영수 씨는 “건물주에게 좀 불쌍한 척을 하면서 얘기했다. 자기가 건물이 하나 있고 거기에 자전거랑 캠핑용품을 파는 사업체가 있는데, 다행히 겨울엔 비수기라 별로 사람이 많지 않다며 내부공사 계획을 확립하기 전까지 건물 2층을 쓰게 해줬다”고 설명했다. 사업체 쪽에서 2월쯤이면 나온다고 했던 계획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다행히도 교역소는 이곳에 남아있는 중이다.

 

이벤트와 할머니들

첫 이벤트 《상태참조》엔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홍보만 보고 사람들은 상봉동까지 찾아왔다. 겨울이라 날씨는 너무 추웠고, 난방이 잘 안 되는 공간이라 비닐을 치고 담요로 꽁꽁 싸매고 있어야 했지만 많은 관객이 함께했다.

《상태참조》 이벤트에서 <젖가슴>이란 퍼포먼스를 했던 나경호(연극원 연기과 졸업) 씨는 “연기를 전공해서 조명이나 무대가 갖춰져있는 극장에서 공연하는 게 익숙했다. 그런데 교역소는 빈 공간에서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나 씨는 “또, 교역소 쪽에서 각 팀이 하고 싶은 공연에 대한 제약을 딱히 두지 않아서 온전히 자신이 담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3월 29일에 진행된 미술생산자모임 ‘미생모’ 2차 토론 때 역시 여러 미술인들 이곳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교역소가 북적댔던 건 미술 관련 이벤트가 열린 날뿐만이 아니었다. 평소에 동네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던 건물주가 어느 날 할머니들께 교역소에서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김영수 씨는 “저작권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건물주 사장님이 직접 배급사에 상영료를 내시고 무료급식하는 날에 상영회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공동체 상영’이었다.

 

 

공간을 차리고 싶은 청년 예술가들에게

김영수 씨는 공간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최소한의 운영비로 진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역소의 경우, 공간을 거의 무상으로 쓸 수 있는 여건이 돼 운영할 수 있어졌다. 황아람 씨는 공간 운영을 위해 “구성원들의 생각이 비슷해야 한다”며 “감정노동을 포함해 불필요하게 힘을 쓰는 일을 경계한다”고 했다. “구성원들끼리 서로의 개인적인 활동이나 일상생활 시간을 최대한 존중하고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미래계획

교역소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이벤트는 ‘상태참조’ 하나였고, 좌담회 등의 행사는 다른 단체해서 기획해 공간을 쓰는 식이었다. 그다음 이벤트는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황아람 씨는 “6월에 하려는 이벤트가 있는데 그 이후엔 이 공간을 쓸 수 있을지가 불확실해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황 씨는 “또, 현재 초기 단계지만 가을쯤에 작품 판매가 가능한 플랫폼을 형성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교역소와 비슷한 공간 운영진들과 교류하면서 함께 해보자는 생각에 “아트페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형식으로 새로운 플랫폼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언제까지 이 공간을 쓸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새로운 장이 열릴지 아직 확실하진 않다. 그렇지만 지금껏 이런저런 형태로 일이 진행됐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교역소가 운영되며, 그곳에서 활발한 무언가가 이뤄질 거라고 믿으며 바라게 된다.

 

교역소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109-29

https://www.facebook.com/gyoyokso

gyoyoks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