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노래 / 밤의 노래

공연 및 전시 <밖의 노래 / 안의 노래> 리뷰

 

김보라와 개방회로
김보라와 개방회로

 

작년 11월, 벌써 추위가 매서워진 계절에 나는 세운상가에서 전통노래 공연 하나를 봤다. 한복을 입은 한 여자가 밝은 방 안에서 장구를 치며 노래를 이어 불렀고, 우리 관객들은 창 밖 마당에서 그걸 지켜봤다. 지켜보며 들었다. 그녀의 육성으로 불리우는 ‘닐리리야’와 ‘군밤타령’ 같은 귀에 익는 민요를, 마이크나 앰프라거나 스피커 같은 아무 전자장비 없이. 우리 사이에는 유리창이 하나 있었다. 창은 주고받는 눈빛을 막진 못하나, 소리 만은 집요히 가로막는다. 가끔은 주변 소음이 여자의 목소리를 먹어삼켰다. 그래도 창(唱)은 어떻게든 창(窓)을 뚫고 나와 우리 귀에 닿는다. 닿아서, 얼씨구 절씨구.

 

2부에서 그녀는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다. 조명기를 든 남자가 그녀를 살포시 비추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동작도 거의 않는다. 노래는 창 앞에 설치된 스피커의 몫이다. 거기서 이름 모를 할머니가 제목 모를 노래를 부른다, “별 하나 내 하나, 별 둘 내 둘”. 아니, 노래인지 모를 소리를 낸다, “에헤야 디 거어어어어그으으”. 그 광경을 창 앞에 설치된 캠코더와 레코더가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우리는 그 소리의 풍경을 지긋이 듣고 있다.

 

공연 이름이 뭐였더라? “낮의 노래 / 밤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착각했다. 2부에서 조명을 든 개방회로 김세현이 태양처럼,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의 위상이 변하는 김보라가 달처럼 보였다. 스피커를 따라 불리우는 노래들이 잊혀진 유령들의 곡성처럼 들렸다. 그래서 2부는 밤, 김보라는 강령술사로 거기 앉아있고.

 

페이지를 뒤져보니 제목이 <밖의 노래 / 안의 노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 이수자 ‘김보라’와 세운상가에 둥지를 튼 기획자 콜렉티브 ‘개방회로’의 이 협업 퍼포먼스 제목은 <밖의 노래 / 안의 노래>였다.

 

개방회로와 김보라는 안과 밖으로 경계 지어진 ‘노래들’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노래는 제도 안에 편입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전승된다. 전문소리꾼의 육성은 녹음되고, 악보로 채보되며, 한자 한자 또박또박 가사가 받아쓰여진다. 이런 기록들을 거쳐, 부르는 사람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자리에 따라 다른 모냥으로 불리웠을 노래들은 하나의 이상형으로 고정되고 박제된다. 그들의 이름은 통속민요와 신민요, 여기서는 ‘안의 노래’.

 

한편 어떤 노래들은 제도 밖에 있다. 바깥에 버려져있다. 정박으로만 흐르지 않는 우리네 삶의 흐름과 동기화되어, 육아의 노동의 기원의 장례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던 노래들은 이제 세월이 흐르며 색이 바랜다. 부르던 이들이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함에 따라 그 노래들은 더 이상 불리워지지 않는다. 어떤 노래는 죽는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밖에서 덜덜 떨며 고독하게. 이들의 이름은 토속민요, 여기선 ‘밖의 노래’.

 

그런데 밖의 노래가 처한 기구한 운명을, 안의 노래 역시 마주하고 있는듯 보인다. 당신이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군밤타령을 음악 교과서 밖에서 불러본 경험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안의 노래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기록은 되고 있으나, 일상에서 아주 드물게 불리우기에 어떤 죽음을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노래는 죽는다, 밖으로 숨통을 내지 못하기에 안에서 숨이 막혀, 외롭게.

 

1부에서는 음원이 김보라의 목 즉 개방회로 안에 있다면 2부에선 음원이 스피커 즉 개방회로 밖에 있다. 그러니까 김보라와 개방회로는 제도 안과 제도 밖을 개방회로라는 공간 안과 밖으로 병치해둠으로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 플랫폼에 기록된 텍스트를 따라, “노래의 순수성이란 무엇인지, 제도화되고 무대화된 ‘전통’ 민요가 전통예술로서 우리 사회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삶 속에서 태어났지만 현재의 삶에선 배제된 ‘토속’ 민요가 동시대에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내가 공연 이름이 뭐라고 착각했더라? 그래, 낮의 노래 / 밤의 노래. 나는 내가 주목한 경계에 ‘안과 밖’이 아니라 ‘낮과 밤’이란 이름을 붙여보았다. 앞서 말했듯 하나의 울타리는 공연장의 밝기를 경계로 놓여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울타리가 음성 기록 즉 기록물과 기록술을 따라 쳐져있다. 1부는 노래가 어떠한 전자매체도 거치지 않고 육성으로 전달된다. 이를 위해서 음성은 악보로 시각화되어야하며 텍스트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반복’(repeat)될 수 있다. 반면 2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토속민요는 음성 기록을 전제하고서야 우리에게 닿을 수 있다. 그러고서야 우리 앞에 ‘재현’(representation)될 수 있다. 이들 제도와 기록은 안과 밖을 나눠 전통노래를 고사시키는 독소지만 한편 그들의 비료 같은 것이 아닐까?

 

개방회로는 김세현, 조근하, 이현인, 이예슬로 구성된 기획자 콜렉티브의 이름이자 세운상가 가열 327호에 자리를 튼 그들의 공간 이름이기도 하다. <밖의 노래/ 안의 노래>는 경계를 구분 짓지 않은 확장된 형태의 협업을 실험하기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 X>의 첫 번째 꼭지란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박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