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과 미완성 – 위대한 예술가
깊이를 추구하는 예술은 위대함과 범용함을 판단하는 감각의 정밀한 작용을 필요로 한다. 이 감각에 오류가 생길 경우 그 예술은 인간 혐오적인 탐미주의의 색채를 띠거나, 껍데기뿐인 세련미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인간이란 무엇일까? 한 인간이 인생의 어느 중요한 순간에 우연히 영혼의 위대한 면모를 드러내는 경우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흘러가는 [...]
<젊은 예술가의 생존 방식>
베네팩토리 / 율리안 헤첼
지난 4월 14-15일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프로젝트로 독일의 예술가 겸 사업가인 율리안 헤첼이 <베네팩토리>를 선보였다. 헤첼은 ‘현존’부터 시작해서 ‘선물’, ‘죄책감’, ‘시장’과 ‘자본’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시하며 한 시간 동안 빈틈없이 자신의 예술과 사업에 대해 말하면서 렉처 퍼포먼스라는 장르를 통해 신자유주의 시대 속 예술가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었다.   헤첼이 무대에 등장한 뒤 처음으로 꺼낸 주제는 흥미롭게도 현존(presence)이었다. 그는 [...]
안개의 아이들은 비밀스럽고 안타까운 노래를 부른다
게임 디자이너 우에다 후미토의 세계   게임 디자이너 우에다 후미토는 이상한 방식으로 게임업계에 들어섰다. 물론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가내수공업식으로 어드벤처를 만들기 시작한 시에라 엔터테인먼트의 로베르타 윌리엄즈 정도는 아니겠지만, 학부 시절 그의 전공은 미술이었다. 어느 날 흥미를 느낀 컴퓨터 그래픽스와 CG 렌더링이 그를 게임업계로 인도했다. 워프에서 CG 아티스트로 일하다가 독립해 내놓은 데뷔작 <이코>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3인칭 [...]
<굿타임>
탈출이 불가능한 도시, 뉴욕
*스포일러 있음   사프디 형제가 <굿타임>을 통해 묘사하는 뉴욕은 다른 어떤 영화 속 뉴욕보다 비좁다. 마틴 스콜세지의 걸작 <특근>의 광기어린 맨해튼에 비견될 만한 <굿타임>의 퀸즈는 맹렬한 기세로 인물을 밀폐된 공간 속에 몰아넣는다. 형 코니(로버트 패틴슨)와 동생 닉(베니 사프디)의 절박한 뜀박질은 도주 행위인 동시에, 질식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두 형제에게 뉴욕은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숨 [...]
사랑은 오류 :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사랑은 오류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
“난 그저 사랑에 빠진 소녀일 뿐”     현재 넷플릭스에서 전시즌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중   드라마 <크레이지 엑스 걸프렌드>는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탈을 쓴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찰일기에 가까울 정도로 사랑과 신경증 사이 상관관계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뮤지컬 드라마이다. 뮤지컬 장르로 신경증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결정은 일견 아이러니해 보인다. 하지만 곰곰이 짚어보면 조울증, 경계선 인격장애에 뮤지컬만큼 어울리는 [...]
고대(古代)의 여성 통역관
고대(古代)의 여성 통역관
  언어와 문화·역사가 서로 다른 국가와 민족 간에 정치·경제·문화를 교류하는 장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역관(譯官)이다. 역관은 일반적으로 역인(譯人), 역자(譯者), 설인(舌人), 역설(譯舌), 통사(通事)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이러한 역관을 양성하고 공급하는 학문을 역학(譯學)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고려 말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역원(司譯院)이라는 관청을 두고, 국가에서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에 관한 일을 관장하고 역관을 양성하였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대외 관계가 활발하게 [...]
착각이라고 하기엔 자꾸만 감지되는 것들 19가지
착각이라고 하기엔 자꾸만 감지되는 것들 19가지
1. 돌곶이역 스크린도어에 붙은 릴케의 시. “잎이 떨어진다. 멀리서부터 떨어진다. / 하늘의 먼 정원이 시들었는가.”   2. ‘하늘의 먼 정원’이라면 팍팍 시들어야 합니다. 플라톤이 아닌 니체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거피취차’(去彼取此)라 했습니다.   3. 꿈에서 피카소가 그랬습니다. “내가 가능성을 열어놓은지 백년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갇혀있니?”   4. 인상파가 몰려와 한심하다는 듯 묻습니다. ‘21세기에 있는 넌 왜 [...]
흩어져서 아주 보이지 않아도
흩어져서 아주 보이지 않아도
  “나는 과학자가 될 거야” 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적 ‘암흑물질’이라는 개념을 어디서 처음 주워들었을 때, 나는 막연히 ‘이 암흑물질을 밝혀내서 우주의 마지막 비밀을 푸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었다. 천문학을 전공하면 근사하겠지 싶었다. 노벨상을 받는게 아닐까 헛물을 들이켰다. 고등학교 진학 후 치른 첫 시험에서 처참한 과학 성적을 받아들자마자 산산조각난 꿈이긴 했지만, 어쨌든 꿈은 꿈이었다.   [...]
엘렌 페이지는 꾸러기 부치다?
엘렌 페이지는 꾸러기 부치다?
많은 레즈비언이 엘렌 페이지는 꾸러기 부치[이하 “꾸부”]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다. 한때 트위터에서는 ‘담다디 부치’(담다디를 부르던 시절의 이상은 같은 모습을 한 부치)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영화 <캐롤>의 상영 당시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캐롤(케이트 블란챗)을 ‘여왕팸’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가씨>의 숙희(김태리)에게서 ‘부치’를 읽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최근 트위터의 모 사용자가 개설한 <’샤먼 부치-대통령 팸’ [...]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성평등을 위해 변화해야 하는 태도   양성평등상담실을 성평등상담실로 개칭해야한다 이름은 중요하다. 우리는 사물을 직접 마주하기 전에 그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모양새나 쓰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이름으로 서로를 식별한다.   우리학교 홈페이지의 여성활동연구소 소개글에 따르면, 여성활동연구소의 ‘여성’은 “사회의 약자와 억압받는 자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여성과 남성간의 임금 격차, ‘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