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와 나
작가 ‘오정희’ 를 말할 때 내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년이다. 어린 아이부터 중년 여성까지, 오정희는 작가 자신의 나이가 변해감에 따라 여러 여성 화자를 내세운다. 화자와 작가의 나이가 변하면서 소설이 안고 있는 문제의식과 딜레마도 달라진다.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중국인 거리> 와 <유년의 뜰> 에서 오정희가 보여주었던 유년의 모습이다.   유년은 [...]
밥벌이와 예술
나는 책읽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나의 관심사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게임이나 축구에 대해서 말하는 걸 좋아했고, 그런 친구들과 적당히 어울렸다. 그래서 인문학적 유희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고등학교를 절반쯤 다녔을 때 관심은 자연스럽게 예술로 전이되었다. 하지만 이미 인문계 고등학교의 이과로 진학한 상태였고, 예술분야로 진학할 수 있는 경로는 다양하지 않았다. 그저 이과에서 전공을 선택한다면 인문학과 공학, [...]
Into the woods
1933년, 뉴욕 지역에서 미술품 도난사건이 잦아지자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독일 셰퍼드 한 마리를 고용했다. 소정의 박물관 매니지먼트 과정을 마치고 업무에 투입된 경비견 돈(Don)은 낮에는 미술관 뒷마당에서 낮잠을 자고, 오후 6시가 되면 미술관 내부를 활보하며 경계근무를 섰다. 어찌나 경계심이 투철한지 미술관 2층의 마야 조각상을 보고도 짖어댈 정도였다.  한 달이 지났을까, 돈의 역량에 의문을 표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기 [...]
돌곶이에서 추석을 맞다
나는 명절이 싫다.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엮인 사람들이 화목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한데 모이는 모습이 보기 싫다. 지극히 이질적이고 불쾌하다.  그것은 내가 단 한 번도 ‘나’의 가족을 화목한 군상으로 여겨본 적이 없기 때문임에도 있을 테다. 하지만 명절이 더욱 싫은 이유는 내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친가에 내려가지 않기 전까지 군말 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개원 25주년 연주를 마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개원 25주년 연주를 마치고
유학 없이 세계 정상급의 예술가를 양성하겠다는 취지 아래 25년 전 개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 초대 총장은 예산, 건물도 없이 종이(설치령) 달랑 한 장 가지고 학교를 만들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의 셋방살이로 어렵사리 시작했다. 각지에서 능력 있는 교원을 초빙하고 가능성 있는 인재를 발굴하여 현재 6개원 개원, 서초ㆍ석관ㆍ대학로 캠퍼스 운영, 유명한 경연대회에서 약 1,145건의 수상자들을 배출해냈다. 특히 [...]
나는 동의 없이 너의 몸을 먹었다
나는 동의 없이 너의 몸을 먹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시흥 고양이 학대 사건 영상을 공유하며 분노를 표했다. 그리고 지난 3월, 구제역으로 인해 6200마리의 돼지가 살처분 당했다. 몇천 마리의 돼지가 산 채로 땅에 쏟아진 그 날도 나는 누군가가 올린 돼지고기 사진을 보아야 했다. 만약 6200마리의 고양이의 생매장이라면 우리는 그 사건을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약 사람들에게 동물 학대에 [...]
소년은 본인이 네오라고 생각하려다 말았다
우리는 사람. 우리는 오해하고 스쳐 지나간다. 운동하는 세계. 모든 것은 움직이며 시차를 만들어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이해한다. 질 낮은 해상도를 가진 우리의 감각. 우리의 나약한 인식은 오차와 왜곡으로 수렴한다. 종종 우리는 선후 관계와 인과관계 사이에서 길을 헤매기도 한다. 우리는 자주 미워하고 많은 것들을 감춘다. 부끄러운 [...]
내 안의 융합, 나와 너의 융합, 우리와 사회의 융합
내 안의 융합, 나와 너의 융합, 우리와 사회의 융합
  내 안의 융합 초등학교 때 세운상가에 종종 가곤 했다. LED, 저항, IC, 기판 등등 온갖 전자 부품들은 나를 언제나 설레게 했다. (특히 LED는 지금도 그때의 느낌을 상기시킨다) 당시 월간지 “라디오와 모형”이나 “디지털 게임기 제작집” 같은 책이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였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운상가에서 사 온 부품들을 기판에 납땜하여 라디오를 만들거나 게임기를 만드는 일은 나의 [...]
섹스 무비로서의 블랙 팬서
이제는 미남을 죽일 때다.   미인은 반드시 끝에 가서 죽는다. 할리우드 고전기 ‘작가 감독’들이 배태한 영화 대부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악상을 끝맺지 못한 마를렌느 디트리히에게 총살을 가하는 조셉 폰 스턴버그의 <불명예>(1931), 로맨스를 생각하며 마을에 온 미인을 트라우마에 빠뜨리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1963), 마릴린 먼로의 개인성을 사회적으로 말살한 하워드 혹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 등 방식도 아주 [...]
#다시만날수있을까요
사라져 가는 예술영화전용관: 국도예술관   떠올려 보자. 너무나 명백하게 옳은 것이라고 여겨지는 나머지 그것을 고수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에게 죄악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입장이나 태도가 무엇인지를. 내게는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입장이 바로 그러한 것들 중 하나였다.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바람직한 자세라서 누구든 옹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심지어 이 사안에 대해서는 누구도 감히 반대 의견을 내세울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