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
쓰지 않은 산문집에 보내는 작별 인사 라틴어 “vale”는 작별의 인사말이다. 안녕히. 서한을 마무리하거나 죽은 자를 떠나보낼 때 쓴다. 숨결을 부드럽게 토해내며 발음하는 이 말을 나는 앤 카슨을 따라 카툴루스의 비가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시인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유명을 달리한 동생을 애도하며 눈물 젖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다시 볼 수 없는 자를 향한다는 점에서 이 말은 [...]
2010년대의 풍경(7) 방문
지금까지 약 잘 챙겨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해결되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런데도 굳이 얘기한 이유는 어떤 순환 때문이다. 약 잘 챙겨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면 건강해야 하는데 건강해지려면 약 잘 챙겨 먹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 순환을 악순환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은 순환의 과정에서 내 주변에 대한 이해를 [...]
크리스마스 뒷북치기
크리스마스 뒷북치기
크리스마스에 대한 궁금증 해결하기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의 역사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라틴어: Christus)와 ‘모임'(라틴어: massa)에서 온 영어단어다. 기독교에서 율리우스력의 12월 25일을 기준으로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현재는 종교적인 의미를 초월하여 세계적인 행사로 발전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 6월 4일, 이승만 대통령령에 따라 당시 인구의 3%였던 기독교 신자들의 ‘기독탄신일(基督誕辰日)’로 정해졌다.  왜 성탄절 대표 색상은 빨강과 [...]
대안공간에서 신생공간으로
대안공간의 아주 짧은 역사 80년대, 우리나라 작가들은 민중미술의 등장을 기점으로 현실과 호흡하며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구심점이 시대적 상황에 있었기에, 미술계는 여전히 경직되었고 기존의 형식을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 87년 6월 항쟁 이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는 전근대적 잔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변화가 진행되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표현과 형식을 요구하는 예술적 욕망이 점차 커져갔다. 이러한 [...]
2010년대의 출판계 키워드
나를 비롯해, 나와 깊은 친밀감을 나누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대다. 우리에게 2010년대란 미숙하고 단란했던 사춘기를 보낸 시기다. 나는 경북 칠곡군 북삼읍에서 2010년대를 보냈다. 그런 내가 어려서부터 동경하던 커뮤니티가 있다. 문인들의 세계, 출판계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당신께서 알고 지내는 시인은 술자리에서 술 한잔마다 시조 한 수를 읊는다고. 나는 그 고상하고 활기찬 세상의 일원이 되고 [...]
2010년대의 마귀들린 여자들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시즌 2>(2011), <바바둑>(2014), <그레이스>(2017)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마귀들림 사건은 여성들의 반란이기도 하다. 이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여성들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도움이 된 악마의 가면을 쓰고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구마의식에서 자신들의 욕망과 요구사항을 드러낸다. 이들은 두 명의 섭정 여왕, 여성 종교개혁가들, 신비주의적 성녀들의 시대에, 여성의 승리를 노래하고 강인한 여성들의 초상을 보여주는 여성문학의 선구자들 시대에 속한다. (주1) [...]
클래식 음악의 2010년대, 과거와 미래
더 나은 클래식계를 향한 발걸음 과거와의 이별 2010년대엔 마에스트로들이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났다. 2016년 세상을 떠난 피에르 불레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작곡계를 전위적으로 진두지휘했다. 세계 정상급 지휘자이기도 했으며,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립된 문화 공간 ‘시테 드 라 뮈지크’(Cité de la Musique) 건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 음악계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2015년 시테 드 라 뮈지크에 [...]
이제 동해바람은 불지 않는다
故 김정희 선생님을 기리며 지난 13일, 우리학교 전통예술원 전 겸임교수이자 동해안별신굿 전수교육조교인 김정희(58) 선생님께서 사망하셨다. 선생님의 부고에 언론이 시끄럽다. 15일 연합뉴스의 기사를 시작(주1)으로 선생님께서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이 강사법 또는 우리학교에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약 60건 정도 보도되었다.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러하다. “동해안별신굿 전수조교 김정희···”강사법에 해고 뒤 극단 선택””, “’강사법 개정’에 해고통보 받은 전통예술인 김정희 [...]
말씀에 의한, 말씀을 위한, 말씀의
[현대 미술의 상실]을 읽고 1. 그려진 말씀 [현대미술의 상실](톰 울프, 2003)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원제 “The Painted Word”에 다 들어가 있다. ‘그려진 말씀’이란 것이 1945년부터 1975년까지의 미술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이 그려졌다는 게 무엇인가? 일단 여기서 말씀이란 비평가/이론가의 말이다. 그린버그의 평면성, 로젠버그의 어쩌구, 스타인버그의 저쩌구라고 정리할 수 있을 법한 미술 이론이자 그들의 글과 말을 생각하면 [...]
다가가는 박물관: 유물-픽션 낭독회
다가가는 박물관
유물-픽션 낭독회
法古創新(법고창신: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6호선 창신 역을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이 성어는 실학자 박지원의 말이다. 법고창신은 옛 것을 익히고 나아가 새로운 것을 안다는 논어의 온고이지신보다 완강한 의미다. 온고이지신이 옛 것을 알아야 새로운 것을 분별할 능력이 생긴다는 태도의 문제라면, 법고창신은 옛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꽤 싫어했다. [...]